입학 30주년 준비 행사가 끝난 뒤, 동기들 사이에는 여러 소모임이 생겼다. 그중 영실의 눈을 끈 건 자전거 동아리였다. 이름은 Tiger Bike, 줄여서 ‘타바’.
<타바 주말 라이딩 공고문>
따릉이든 MTB든 상관없이 모두 모여 같이 타자
코스 : 반포~팔당대교 왕복 (약 50km)
아침 식탁에서 영실은 슬며시 말을 꺼냈다.
“여보, 나 자전거 한 대 살까?”
아내가 눈을 들었다.
“집에 자전거 있잖아요, 그거 타면 되잖아요.”
“그건 MTB야. 로드 사이클을 사고 싶어. 속도가 다르거든.”
“굳이 새로 사야 해요?”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고. 일단 연습부터 하려고.”
그 말끝엔 묘한 부끄러움이 섞여 있었다. 50살이 넘은 나이에 ‘새로운 도전’이라는 말을 꺼내는 건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주말, 영실은 오래된 MTB를 꺼냈다. 안장을 닦고, 공기를 채웠다. 그는 혼자 자전거를 끌고 공원으로 나갔다.
페달을 밟을 때마다 심장이 조금씩 빨라졌다.
“좋아, 30km는 탈 수 있겠어.”
둘째 주에는 파주 헤이리까지 갔다. 왕복 50km. 점심시간 포함해 네 시간.
온몸은 땀으로 젖었지만, 마음은 오랜만에 맑았다.
셋째 주, 그는 결심했다. “이번엔 임진각이다.” 왕복 90km.
마음 한켠엔 불안이 있었지만, 또 다른 한켠은 설레었다.
‘중간에 힘들면 기차 타고 돌아오면 되지.’
그는 그렇게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페달을 밟았다.길은 점점 낯설어졌다. 파주를 지나면서 사람도, 자전거도 보이지 않았다. 자유로 옆의 좁은 자전거 도로는 삐걱거렸고, 언덕길을 오르내릴 때마다 허벅지가 타는 듯했다. 카카오맵은 배터리를 빨리 잡아먹었다. 그는 몇 번이나 지도를 켰다 껐다 하다가, 결국 길을 잃었다.
한참을 돌아와 다시 제자리에 섰을 때, 그는 웃었다.
“그래, 인생이란 게 다 이런 거지.”
30km쯤 달렸을 때, 그는 드디어 임진각 근처에 들어섰다. 목이 말라 물을 찾았지만, 마트가 보이지 않았다.
입술이 바짝 말라갔다.한참을 더 달린 끝에야 임진각의 인파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풍선, 음악, 모든 게 낯설고도 반가웠다.
그는 김치말이 국수를 시켜 허겁지겁 먹었다. 식당을 나와 편의점 근처 그늘에 앉았다. 그늘은 작았고, 가족 한 팀이 옆에서 서성였다. 영실은 그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햇빛이 내리쬐는 자리로 옮겼다.
그 순간,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아이들이 크니 이런 여유가 생기는구나.’
그는 미소를 지으며 물 한 모금 마셨다. ㅜ돌아가는 길은 훨씬 더 험했다. 어둠이 내리자, 길은 금세 낯설어졌다. 휴대폰 배터리는 이미 꺼졌고, 오직 감으로 길을 찾아야 했다. 언덕은 끝이 없었다. 페달을 멈추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멈추면 자전거는 쓰러졌다.
그는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여기서 포기하면, 앞으로도 포기하게 될 거야. 그런 삶은 싫다.’
그는 다시 페달을 밟았다. 어둠 속에서 바람이 불었다. 땀 냄새, 풀 냄새, 흙냄새가 뒤섞였다.
그 순간, 영실은 이상한 기시감을 느꼈다. 언젠가… 이와 똑같은 감정을 느낀 적이 있었다.
막다른 절망 속에서,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끝이 어딘지도 모른 채, 그저 스스로를 믿어야 했던 그 시절.
‘햇빛촌, 그때도 그랬지. 끝이 안 보였지만, 그래도 나아갔었지.’
밤이 완전히 내려앉을 무렵, 그는 드디어 집 앞 도로에 들어섰다.
다리는 풀렸고, 손끝은 떨렸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그날 영실은 9시간 동안 90킬로미터를 달렸다. 그에게 그것은 단순한 라이딩이 아니었다.
그건, 한평생 그가 걸어온 길이었고, 또다시 나아가야 할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