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실은 병원 정기 검진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왠지 모르게 가벼웠다.
“여보, 자전거를 꾸준히 탔더니 혈압도 내려가고, 혈당도 좋아졌대. 의사 선생님이 조만간 약 끊을 수도 있대.”
“정말요? 그럼 계속 타야겠네요. 자전거 덕 보네요.”
“그래서 말인데… 다음 주부터는 동기들 자전거 모임에 나가보려 해.”
“이젠 체력도 충분하잖아요. 잘할 거예요.”
아내의 말에 영실은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세상이 가볍게 느껴졌다.
며칠 후 저녁. 퇴근한 영실은 거실 한가운데 놓인 커다란 검은 비닐을 발견했다.
“여보, 이거 뭐야?”
“한번 열어봐요.”
“아빠, 엄마가 준비한 선물이래요.”
비닐을 벗기자, 번쩍이는 프레임이 눈앞에 드러났다. 은빛 로드 사이클이었다.
“이거… 비싸 보이는데, 어떻게 샀어?”
“생활비 아껴서 적금 들어놨던 게 만기 돼서요.
이젠 당신도 좀 당신을 위해 살아요. 너무 오래 달려왔잖아요, 쉼도 좀 하고.”
영실은 한참 동안 말을 잃었다.
그저 “고마워”라는 말만 겨우 나왔다. 딸이 옆에서 재촉했다.
“아빠, 한 번 타봐요!”
“그럴까?”
그날 밤, 영실은 새 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차갑지만 부드러운 밤바람이 볼을 스쳤다.
그는 안장을 높이고, 조심스레 페달을 밟았다. 기어가 바뀌자, 바람이 달라졌다. 몸이 허공 위로 뜨는 듯했다.
한강의 물빛이 가로등 아래에서 반짝였다. 멀리서 요란한 차들의 소리가 들려왔지만, 영실의 귓가에는 오직 바람소리와 자신의 심장박동만이 남았다.
그는 천천히 웃었다.
‘로또가 돼야 이런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겠네. 로또가 아니어도, 이미 나는 달리고 있었던 거야. 멈추지 못했던 건 돈이 아니라, 나였어.’
페달을 밟을수록 그의 머릿속은 맑아졌다. 지난 세월의 피로가 바람에 씻겨나갔다. 모든 걱정, 후회, 두려움이 멀어졌다. 영실은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그래, 이제는 가족이 아니라 나를 위해 살아가자. 내가 하고 싶은 일, 내 삶을 향해서.’
그는 한강 다리 위에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이 총총히 떠 있었다.
그리고, 환한 웃음과 함께 힘껏 외쳤다.
“기다려라, 타바— 내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