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삐삐—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아빠 술 마셨어?”
공부하던 딸들이 동시에 고개를 내밀었다.
“엄마, 아빠 또 술 마셨어요.”
“뭐?”
안쪽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고혈압에 당뇨 있는 사람이 또 술이야? 당신 미쳤어요?”
영실은 신발을 벗으며 헛웃음을 지었다.
“박 부장이랑 한잔했어. 여보, 얼음물 좀 줘.”
식탁에 앉은 영실은 얼음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입안에 남은 소주의 알싸한 냄새가 서서히 사라졌다.
그는 잠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불쑥 말을 꺼냈다.
“당신, 로또 당첨되면 뭐 할 거야?”
“뭐예요, 갑자기? 혹시 됐어요?”
“아니, 그냥. 나 말이야, 로또 당첨되면 한강 근처로 이사 가서 자전거 탈 거야. 한강 따라 달리다가 맛집 찾아가고, 저녁엔 단골 선술집에서 사장님이랑 세상 얘기하면서 소주 한잔.”
“당신, 무슨 일 있어요?”
그의 목소리는 낮고 느렸다.
“내년부터 파주로 출근해야 할 것 같아.”
“파주요?”
아내가 얼굴을 굳혔다.
“왜요? 지금 서울로 다니잖아요.”
“인사팀에서 연락 왔어. 이제 나이 많은 직원들은 순환 보직으로 지방 계열사로 보낸대. 그래서 미리 신청하면 경기도 쪽으로 갈 수 있다길래… 파주로 했어.”
식탁 위 공기가 잠시 멎었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 들렸다.
“그래도, 잘리는 건 아니죠?”
둘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너희 대학 갈 때까진 걱정 없어.”
아내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요. 시간이 있으니까, 우리 천천히 준비해요. 당신 자격증 공부도 하고 있잖아요.”
영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정 안 되면 다른 일 찾아보면 되지.”
그때 첫째 다희가 조심스레 말했다.
“아빠, 나 고등학교부터는 학원 안 다닐게. 인강으로 공부할게. 아빠도 옛날에 혼자 공부했잖아.”
“요즘은 공부가 훨씬 어렵다. 괜찮아, 학원은 걱정 말아.”
잠시 뒤, 둘째 하니가 입을 열었다.
“아빠, 나 예고 안 가고 일반고 갈게. 예고 안 가도 작가는 될 수 있어. 그러니까 아빠, 술 마시지 말고 건강 챙겨요.”
그 말에 영실은 고개를 숙였다. 왠지 울컥했다.
“그래. 이제 술 끊을게. 대신 운동 다시 시작해야겠다.”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드디어 우리 집에 봄이 오려나 보네요.”
그 말에 딸들이 킥킥 웃었다.
식탁 위의 얼음컵이 반쯤 녹아 있었다. 그 속에서 둥글게 떠오른 얼음이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영실은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래, 아직은 괜찮다. 넘어지지 않았으니, 페달을 돌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