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스턴에서 만나는 대문호들
무라카미 하루키에게는 영웅이자 각별했던 스콧 피츠제럴드 - 프린스턴은 일본의 작가 하루키와 피츠제럴드를 연결시키는 다리의 역할을 했습니다. 이번 편은 프린스턴과의 인연이 있었던 세계적인 대문호들에 대해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매년 가을이 되면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었고 이제는 일본 문학계의 원로가 된 무라카미 하루키. 그는 한국에서도 상당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하루키가 쓴 책과 이야기들은 근래 50여 개국 언어로 번역되고 해외에서도 수 백만 부가 팔리면서 일본에서 뿐 아니라 국제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명성이 높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로는 1982년도 작 '양을 둘러싼 모험'으로부터 '노르웨이의 숲', '태엽 감는 새', '해변의 카프카' 여러 소설 및 에세이 등이 있습니다. 또 미국의 작가 레이먼드 카버에서부터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작품까지 영문 소설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활동도 해왔습니다.
하루키의 소설은 소외와 외로움이라는 반복되는 주제가 카프카적으로 구체적이고도 당혹, 모순되게 표현되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때문에 초현실적이고 우울하며 운명론적인 작품이 많으며 포스트모던 문학에서 중요한 인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1949년에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하루키는 국어교사였던 부모로부터 일본 문학에 관해 배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와세다 대학 문학부 연극과에 입학하여 드라마를 공부했는데, 이 당시에 아내인 요코를 만났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고쿠분지에서 '피터 캣'이라는 커피점이자 재즈바를 개업해서 운영하기 시작하였고 이때부터 작품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는 진지한 마라토너이자 철인 삼종 경기인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수필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그의 마라톤 사랑을 노래하기도 하였습니다.
하루키는 유럽 각국을 돌며 집필 활동을 하던 1987년 그의 대표작 ‘노르웨이의 숲(한국에서는 처음 '상실의 시대'로 출판되다가 원제목으로 바뀜)’이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두어 1990년 유럽 체류를 마치고 귀국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듬해인 1991년 다시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교로 초빙되어 약 4년간 미국 생활을 합니다. 이 시기를 회상하며 쓴 에세이집이 '이윽고 슬픈 외국어'로 번역된 ‘やがて哀しき外国語’입니다. 이 책 첫 장에도 나오지만 그가 프린스턴을 처음 방문한 것은 1986년이었는데 방문의 유일한 이유는 사실 스콧 피츠제럴드의 모교였기 때문일 뿐 다른 이유는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후 1991년 초청으로 다시 방문하여 2년간 초빙교수로서 강의를 맡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인 2008년에 하루키는 프린스턴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도 받았습니다.
하루키의 피츠제럴드에 대한 애정은 남달라 하루키의 대표작이며 자전적 소설 '노르웨이의 숲'에서도 종종 등장합니다. 주인공 와타나베가 좋아하는 작가이며 좋아하는 책으로 '위대한 개츠비'가 나오는데 다음과 같은 이유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 열여덟 살 때 나에게 가장 다가온 책은 존 업다이크의 '캔 타우로스'였지만 몇 번 거듭 읽는 사이에 조금씩 처음의 광채를 잃고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 최고 자리를 넘겨주었다. 그리고 위대한 개츠비는 그 후 계속 내 최고의 소설로 남았다. 불현듯 생각나면 나는 책꽂이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꺼내 아무렇게나 페이지를 펼쳐 그 부분을 집중해서 읽곤 했는데 단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한 페이지도 재미없는 페이지는 없었다. 어떻게 이리도 멋질 수가 있을까 감탄했다. 사람들에게 그게 얼마나 멋진 소설인지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내 주변에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본 인간은 하나도 없었고 읽어보겠다는 생각을 할만한 인간조차 없었다."
피츠제럴드는 이중성의 짐을 지고 있다고 하루키는 생각합니다. 피츠제럴드는 개인적인 콤플렉스를 지님과 동시에 강한 우월감이 동시에 존재했는데 그는 많은 부분에서 내적, 외적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진실성과 야생성, 이상적인 모습과 방탕하는 모습, 온전히 그의 아내 젤다를 사랑하는 모습과 동시에 그녀를 온전히 무시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이중적인 모습이 하루키에게는 상당한 매력으로 작용했다고 합니다 (아래 사진은 젤다와 스콧).
하루키의 영웅 스콧 피츠제럴드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과 함께 미국의 '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입니다. 그의 작품인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는 20세기 최고의 작품의 하나로 꼽히지만 작가 피츠제럴드는 화려한 성공 속에서 결국 불행한 삶을 살다 간 작가였습니다. 피츠제럴드는 1920년대 미국의 황금시대인 재즈 시대의 사교적이고 강한 주체성을 보이는 여성들인 플래퍼(Flapper)를 다룬 소설을 내놓고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대표적인 1925년에 작 ‘위대한 개츠비’는 플래퍼나 재즈 시대를 다룬 작품 중에 최고로 꼽힙니다.
1896년 미국 미네소타의 상류 아일랜드계 가톨릭 가문에서 태어난 피츠제럴드는 미네소타주와 뉴욕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뉴저지에서 고등학교를 졸업, 프린스턴에 진학하게 됩니다. 하루키가 프린스턴을 찾은 것이 피츠제럴드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 재미있는 것은 피츠제럴드가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하지도 못했고 4년 넘게 전전하다가 자퇴해버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린스턴이라는 곳이 피츠제럴드에게 중요한 이유는 그가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둔 첫 소설 '낙원의 이편 (This side of paradise)'의 내용이 자전적이며 프린스턴에서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썼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Amory Blaine 은 아이비리그 프린스턴으로 진학을 한 문학소년으로 학창 시절의 새로운 만남들, 이성교제 속의 소외감과 혼란을 겪습니다. 결국 그는 자책과 외로움과 환멸에 빠져 미궁의 입구에 도달한다는 그런 일종의 성장 소설입니다.
자세한 설명을 더하기는 어렵지만 피츠제럴드의 '낙원의 이편'과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읽어보면 뭔가 영향을 받은 부분이 많이 느껴집니다. 어쩌면 '노르웨이의 숲'은 하루키 버전의 '낙원의 이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하루키와 피츠제럴드 외 프린스턴과 인연이 있는 대문호가 또 있는데 그가 토마스 만입니다. 토마스 만 (아래 사진)은 20세기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로 '마의 산', '베네치아의 죽음' 등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고 192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토마스 만은 1933년 나치 정권에 반대해 독일을 떠나 해외로 망명했는데 프랑스와 스위스를 거쳐 1938년 미국에 이르러 프린스턴에 정착하게 됩니다. 그는 1938년에서 1941년 사이 2년 반 동안 프린스턴 대학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프린스턴의 거주기간 동안에 토마스 만은 그의 작품 '바이마르의 롯데', '요셉과 그의 형제들'을 썼고 프린스턴 대학으로부터 명예 문학박사학위도 받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에도 토마스 만의 작품이 잠깐 나온다는 것인데요. 나오코를 찾아 요양원을 방문하는 장면 전부터 주인공 와타나베가 계속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읽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의 산의 내용이 사실 요양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이기 때문에 하루키는 이 책을 일종의 복선으로 사용하였던 것 같습니다. 토마스 만도 프린스턴에 잠시 거주했었다는 것을 하루키도 알고 있었는지?...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이번 편은 프린스턴에서 만난 세명의 세계적인 문학가들에 대해 소개해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