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와 사진첩 이야기를 하다가 오랜만에 휴대폰 앨범을 열었습니다.
그곳은 명언 캡처, 주차장 위치 확인용, 인증 사진들로 가득했습니다.
정작 내 사진, 아이의 사진, 가족사진, 한때 넘쳐나던 강아지 사진은 한참을 내려가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던 무렵, 스마트폰은 없었습니다. DSLR 카메라가 유행이던 시절이었지요. 저는 먼저 장만했고, 망설이던 동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선임님, 망설이는 사이에 아이의 예쁜 시절은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 동료는 바로 카메라를 샀습니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말은 제게 돌아와 꽂힙니다.
아이의 성장은 순식간입니다.
특히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아이들은 늘 몰라보게 커 있지요. 그 나이마다 고유한 빛이 있는데, 놓치고 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어느 날, 제 아이가 다섯 살이 될 때까지의 사진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스마트폰이 없었던 탓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월화수목금금금’의 시대를 살았기 때문입니다.
잠깐 주어진 주말마저 피곤하다는 이유로 흘려보내곤 했습니다.
한창 예쁠 나이였는데, 사진으로조차 남기지 못했습니다.
그 시절이 두고두고 아쉽습니다.
다섯 살 무렵 외국계 회사로 옮기면서부터는 조금의 여유가 생겼고, 그제야 앨범 속 주말 사진들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사춘기 시절, 아이는 사진 찍기를 거부했습니다. 친구들과는 잘 찍으면서 부모와는 싫다며 고개를 돌리곤 했지요. 하지만 그 시기도 지나니,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이의 모습, 가족의 모습, 지금의 내 모습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눈으로, 마음으로, 그리고 사진으로 담아야 합니다.
단지 어디에 저장된 이미지로 남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떠올릴 수 있는 살아 있는 추억으로 남겨야 합니다.
오늘도 출근 전, 벽에 걸린 사진들을 바라보며 잠시 시간을 거슬러 다녀왔습니다.
사진은 기억을 붙잡아 두는 장치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추억을 다시 불러오는 작은 창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