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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Moon Oct 22. 2018

꽃과 할아버지

가끔 꽃을 사세요?


나는 가끔, 비가 내리거나 , 기분이 뒤숭숭하는 날에는 마켓을 들러 꽃을 산다.

그 꽃은 집안 가득히 은은한 향내와 봄빛처럼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해 나를 특별한 공간으로 초대하는 듯

하기에 스스로 꽃 사는 즐거움은, 은근 나 자신을 위한 작은 위로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특별한 날이 아닌 평상시에도 주로 노인들이 꽃을 사는 것을 흔히 본다.

그것도 할아버지들의 꽃을 사는 모습은,  언제나 왜 그렇게 멋져 보이는지.

고르는 것도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모른다. 이 꽃 저 꽃 다 들여다보고 비교하면서,

말이다.

그러고 보면, 시카고는 대도시답지 않게 보수적이고 뭐든지 유행에도 한참 뒤지는 오울드패션의

대표적인 도시다. 그래서인지 꽃을 즐겨 사는 모습을, 젊은이들보다 노인들에게서 훨씬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은, 이들의 오래된 여유로운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고, 시카고의 양반식 무드와는 많이 다르다.  




어느 날 아침, 출근길이었다.

직장동료의 생일 꽃을 사기 위해 마켓에 잠깐 들렀다.


실례지만, 이 꽃 칼라 어때 보여요?"



시간에 쫓기듯이 , 이 꽃 저 꽃을 정신없이 보고 있었는데, 그때, 옆에 있던 어떤 할아버지 한분이 나에게 건넨 말이다.

하얀 백발의 깔끔한 차림의 노신사였다.

이른 아침 그 누군가를 위해 꽃을 선사하기 위해 이곳을 들렀던 것이다.

본인의 감각을 믿을 수 없었던지, 나에게 넌지시 그가 고른 꽃이 괜찮은지 물어본 것이다.

 

화려한 빨간 장미도 아닌, 여러 종류의 색깔이 섞여있는 꽃 한 다발을 들고 있었다.

그의 선택은 훌륭했고 그래서  난, " 어머! 정말 예쁜 꽂을 고르셨네요"라고 빙긋이 웃으며 말해주었다.

꽃과 함께 손에 쥐어진  예쁜 카드가 동시에 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난 "근데, 누구를 위한 꽃인가요?"라고 묻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마음속 상상을 택했다.

이른 아침, 따스한 아침 식사를 준비해 놓고 기다릴 그 누군가를 위해, 아니면 병상에 누워 있을

아내나 친구를 위해, 어쩌면, 사랑하는 가족 중의 한 사람을 위한 꽃일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결국, 마음에 든 꽃을 손에 쥔  할아버지는 이 세상에도 없는 행복을 얻은듯한

크나큰 미소를 인사로 내게 건네고 걸어 나갔다.

그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이른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밤을 지냈을 게다..

꽃을 든 할아버지의 발걸음은 건장한 청년처럼 씩씩해 보였고,

그의 눈빛과 뒷모습은 아침햇살에 멋져 보였다.

새삼, 나는 그 꽃의 주인공이 부러워졌다.


"나도 저 나이가 되었을 때도  소중한 그 누군가를 위해 꽃을 살 수 있는 할머니이었으면"

"저 나이에도 꽃을 받을 수 있는 아름다운 그 주인공이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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