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도 좋지만 가끔 떠나는 혼행은 더 좋다!
결혼해서 한동안 정신없이 살다 보니 마흔이 되어있었다. 그때까지는 그 남자(남편)가 좋아하고 가자고 하는 곳만 따라다녔다.
대충, 크루즈 여행만 일곱 차례 다녀왔다. 한번 가보니 편하고 좋긴 하다. 훌륭한 음식은 기본이고, 매일 다른 섬을 돌면서 구경도 하고 재미난 쇼와 오락등 심심할 틈이 없다. 환상적인 오션 뷰를 보면서 즐기는 수영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뭐, 한. 두 번쯤은 해 볼만한 여행이다.
해마다 여행을 갈 시즌이 다가오면 크루즈병에 걸린 그 남자는 죽어라 '크루즈!, 크루즈! 하고 노래를 부른다.
'이번엔 15층규모나되는 세계 최대의 크루즈배가 탄생했어! 어마아~~하데'하며 크루즈 회사에서 나온 판촉직원처럼 선전을 한다.
크루즈여행에 신물이 난 나는 들은 체도 않는다. 몇 번의 크루즈 여행 끝에서야 알았다. 그는 한 곳에 갇혀있는 크루즈여행만을 선호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걷고, 드라이브하는 로드트립은 지긋지긋하게 싫어한다는 것을!
나는 그때 그의 단품여행스타일에 유 턴을 하면서 맛 부딪혔다.
"흥! 이제는 내가 원하는 여행을 할 거야!'라고 선언했다.
어느 날, 어느 순간부터 나는 여행이 절실했다. 홀로 떠나는 여행이여야 했다. 오래된 직장생활과 정신없이 달려온 나의 삶에 브레이크를 거는 순간이었다.
일 년 내내 책 한 권 읽지 않고, 일기 쓰는 일도 없어졌다. 그저 시간이 날 때마다 여기저기 온라인 쇼핑몰을 들락거리고 , 안락함에 길들여져 있는 생활이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전이었는데 무얼 하며 지냈는지.. 앞으로 어떻게 나이 들어갈 것인가?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은 무얼까'라는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언제 해? 한 것이 내 혼행의 출발점이었다. 은근히 겁쟁이지만, 은근히 깡다구도 있는 '나'쟎아? 좋아! 가자고!‘ , 한번 해 보는 거야! 하며 혼행길에 나서기 시작했다.
결혼한 여자의 혼행의 방해꾼은 당연히 그 남자(남편)다. 처음으로 홀로 여행을 떠나려 했을 때, 그 남자는 내가 무슨 죽을 곳을 가는 것처럼 소란(?)을 피웠다.
"산티아고고 오티아고고간에 납치라도 되거나 실쫑이라도 되면 어쩔라고?"
”아~그럼 , 운명이려니 해야지~“
“간덩이가 이만저만 큰 게 아녀 ~이 여자.. “
"그 간덩이 하나만 믿고 이제부터 모험하려고!"
그렇게 나는 '간덩이'와 '모험'이라는 멋진 단어들을 부둥켜안고 , 눈을 째리면서 떠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집시기질도 다분히 있는 것 같다. 이런 걸 보면 피'는 못 속인다고.. 그 옛날, 울 아버지가 그랬다. 툭하면 시골에 있는 큰아버지 별채로 떠났으니까. 이렇듯 딸 셋 중에 희한한 부분은 막내인 내가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
내 인생의 첫 혼행 지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이었다. 낯선 나라고, 첫 혼행이다 보니 깡다구는 그렇다 치고 걱정이 되는 건 당연했다. 떠나오기 전까지 속으로 잘할 수 있을까? 하면서 잠도 설치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순례길에 발을 내딛는 순간, 훨훨 날아오를 듯이 좋았다.
"세상에~이렇게 좋은걸 왜 여태 못했지?"
일단 떠나보고, 부딪히자고 작정하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 나 자신이 더 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여행에는 항상 예상치 못한 일이 꼭 무슨 '벌'처럼 일어난다. 아무래도 여행 상품에는 무슨 방해꾼이 따라다니는 것 같습니다.^
여행 방해꾼에 부딪히고, 문제를 풀어가면서 놀랍게도 스마트해지기도 한다. 중요한 건, 그간 평온히 잠자고 있던 브레인이 난리가 난다. 눈을 크게 뜨고, 심호흡도 하면서 번쩍번쩍 머리가 끓임 없이 작동을 하는 신선함에 도취된다.
낯선 도시, 풍경, 낯선 사람들, 낯선 문화는 그야말로 배울 거리다. 혼자라서 느끼는 외로움과 고독마저도 우아하고 , 신선하다.
홀로 떠나면 그야말로 만물 앞에 숙연해진다고 할까.. 정말 그렇다. 심지어 커피 한잔 앞에도. '와~ 이 향이란~' 하며 감탄한다. 금방 자세를 고치고 앉아 우아하고, 숙연하게 커피를 마시게 된다.
외로움과 벗을 하면서도 바쁘다. 익숙하지 못한 것들에 익숙해지는 법을 배우느라 끓임 없이 내 마음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그렇기도 한다.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끔, 이렇게 만끽하는 자유란 나를 일상의 번아웃에서 벗어나게도 한다. 마치 사춘기 소녀처럼 막 성장하는 맛을 느끼게 해 준다.
그래서 울 아버지도 그렇게 훌쩍훌쩍 떠났나 보다. 뭐, 철학하는 아버지였으니 떠날 만도 했겠다. 그러고 보니 그것도 닮았다. 혼행을 하면서 사색에 빠지는 일이란 또 다른 여행의 맛이다.
그걸 즐기려 홀로 떠난다. 나를 다독거리고, 어루만져주고 , 뒤도 슬쩍 돌아보고 해야 하기 때문에. 아. 중요한 건, 내 꿈도 만지작거리고, 다듬어주기도 해야 하는 일이기에. 은밀하고, 쓰릴 있고, 재미있다.
혼행을 하면서 내가 신경 쓰는 것이 한 가지가 있다..혼자지만 뭐니 뭐니 해도 여행은 즐거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 여행지에서 무엇을 하며 놀 것인가를 고민하며 일정을 짠다. 그것은 마치 도화지에 그린 그림 한 장 같다. 이처럼 놀거리에 대한 충분한 밑거름을 그리고 준비한다.
그런 그림이란, 가령, 내가 애정하는 일 중에 하나인 사진 찍는 일에 몰두하는 일이다. 또는 호텔대신 호스트와 함께 하는 현지인의 집 체험을 한다거나, 좋아하는 미술관에 들러 그림을 감상한다거나, 도시 문화를 경험하는 것, 어느 카페에서 커피를 마셔보는 일, 동네 마켓을 구경하는 일, 또는 운치 있는 거리와 골목길을 걸어보는 일 등등. 좋아하는 것들을 해보는 일이다.
여행은 선명할수록 컬러풀한 추억을 만든다. 길 위에서 얻어지는 경험들은 내 마음속 키를 대범하게 쑥쑥 자라게 한다.
나이는 먹어가고 있지만. 혼행이란 하면 할수록 시간을 거꾸로 되돌아가는 것 같은 착각도 하게 된다. 여행만 한 것도 없다.
아마.. 이쯤이면 내 여행나이는 20대 언저리쯤 되지 않을까?. 아무튼, 나는 혼행의 그 감칠맛에 잔뜩 빠져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