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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Moon Mar 08. 2020

 빵 굽는 마을-Bakersville

   시카고 교포들의 수다방

우리 동네에 베이커스 빌이라는 빵집이 있다. 일명 "빵 굽는 마을"이다. 한인이 주인이다. 언뜻 보기에 쉰이 조금 넘은듯해 보이는 서글서글한 인상의 부인이 사장님이다.


제과점이라는 표현이 좀 더 세련된 말이지만 시카고에서 교민사회란 작은 시골 동네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는 빵집이라는 말이 더 구수하게 들린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교민들은 제과점이라는 말보다 빵집이라는 표현을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베이커스 빌 빵집, 이런 식으로.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시카고에서 30분쯤 떨어진 북서쪽의 한인 밀집 지역이다. 식품점, 식당, 미용실, 닥터 오피스, 은행 등 한인 운영의 상권들이 몰려있다.


18여 년 전 시카고에서 이곳으로 이주했을 무렵에는 한인들이 그다지 많이 살고 있지 않았다. 가게라곤 식품점 한 곳과 겨우 식당 한 두 곳 정도였다.


지리적으로도  다운타운으로 연결되는 하이웨이에 근접해 있어 편리하다. 이런 유리한 입지조건 때문에 시카고의 대부분의 교민들이 이 지역으로 대거 이주했다. 덩달아 많은 가게들이 여기저기 경쟁하듯 생겨났다.

 


베이커스 빌은 내가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생겨난 원조 한인 빵집이다.

 

이전의 시카고에 있던 독일빵집과 같은 흔한 이름과는 차별을 두었다. 이름에서부터 이국적이고, 다소 고급스러운 분위기다.  단번에 사람들의 관심과 발길을 끄는 데 성공했다.


Bakersville-방 굽는 마을


오픈하자마자 다양한 이름이 붙여진 빵과 케이크는 불티나게 팔렸다. 무척 단맛이 나는 미국 케이크와는 달리 우리 입맛에 맞게 만들어져 나온 케이크는 인기가 무척 많다. 커피에서부터 각종 음료, 특히 여름에는 맛난 팥빙수를 먹기 위한  사람들로 득실거린다.

Bakersville -빵 굽는 마을의 인기있는 케익들


실내로 들어서면 독특한 빈티지 포스터들이 나란히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고, 아래로 의자와 테이블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그다지 많은 돈을 들여 장식한듯한 멋들어진 분위기는 아니지만 벽에 걸린 포스터가 주는 유럽풍의 빈티지한 감각이 베이커스 빌을 왠지 편안하고 아늑한 느낌이 들게 한다.  교민 어른들이 베이커스 빌을 즐겨 찾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Bakersville-Vintage Italian Poster (빈티지 이탈리안 포스터)


오픈 당시에는 그 주변으로 갈만한 곳이 없었던 젊은 한인 20대들이 안방처럼 눌러앉아 그들의 아지트로 삼았다. 어른들은 수시로 들러 맛나고 달콤한 빵을 고르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그저 빵만  열심히 사 가는 것으로 끝내야 했다. 여기를 아예 놀이터로  터를 잡은 젊은 세대들에 밀려 "어디, 좀  앉을 데나 있나?" 하고 엉거주춤거리다 그냥 문을 나와야 했다.


사실, 그 당시만 해도 한인 어른들은 이민생활에 쌓인 넋두리를 나눌만한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소위 그들만의 그룹이 즐길 수 있는 수다방이 될만한 곳이 생겨나질 않았다. 교민들이 자주 찾는 맥카페(맥도널드)가 있긴 하지만 고향사람을 찾아가듯 한 민족 사람들 속에  묻혀 같은 말을 듣고 , 같은 공간에 머물면서 어우러지고 싶은 것이 그들의 바람이었다.


그러던 중, 베이커스 빌 빵집이 잘 된다는 소문이 난 것인지, 이 지역의 상권이 좋아서인지 주위에 한국에서 건너온" 뚜레쥬르(Tous Les Jours )"라는 근사한 이름의 제과점이  생겨났다. 젊은 세대들의 놀이터가 될만한 카페도 하나. 둘 오픈하기 시작했다.


새로 생겨난 제과점과 카페의 등장으로 베이커스 빌 빵집은 자리가 텅텅 비어 결국 문을 닫게 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다양한 빵 종류의 맛을 내는 기술적인 면에서도 밀려날 것이라는 말도 많았다.


 " 새로 오픈한 제과점으로 가볼까?"하고 베이커스 빌의 단골고객인 주부나 한인 어른들은 의리 없는 친구처럼 오랜 빵집을 쉽게 등지지 않았다. 예상과는 달리, 어른들은 약간은 구식 스타일의 빵과 그 맛을 즐기기 위해 여전히 베이커스 빌을 열심히 찾았다. 새 제과점은 마음먹고 앉아 빵을 즐길 만큼 장소가 넓지가 않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왠지 새 빵집은 선뜻 자리를 잡고 앉아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라고  말한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어쩌다 다른 빵을 맛 볼순 있지만 그래도 여기가 편해”라며 옛 빵집을 고수했다. 새롭고 신선한 것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들은 그들만의 새 놀이터로 금세 자리를 옮겼다. 


"저 자리에 앉아 언제 수다를 떨 수 있을꼬?" 부러워하며  빵을 사 가던 교민 어른들은 이제야 베이커스 빌을 그들의 수다방으로 차지하게 되었다. 드디어 베이커스 빌의 한인 고객층은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베이커스 빌의 주 고객은 한인 4060세대들이다. 빵뿐만 아니라 고객층의 입맛에 맞게 커피에서부터 홍차, 인삼차, 율무 차등 한국 전통차가 새롭게 등장했다. 마치 오래전 한국의 다방에서 맛볼 수 있었던 메뉴들이다. 오울드 팝송이 흐르고, 80년대 유행했던 물 빠진 청바지의 향수와 뮤직박스가 있었던 다방을 연상시키는 분위기의 빵집으로 변신했다.

새롭게 등장한 한국의 전통차와 호박죽


매번 들릴 때마다 마치 한국에 온 것처럼 마음이 밝아진다. 4060세대가 주 고객이 된 뒤로 가게는 이전보다 더 활기차다. 장사가 잘 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배이커스 빌은 동네 어른들의 수다방이면서도  뜻밖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시카고 이민생활에서 한동안 잊혔거나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려면 빵 굽는 마을, 베이커스 빌로 가면 된다.


언젠가 우연히 베이커스 빌을 들렀다가 10여 년 만에 옛 동료를 만났다. 희한한 일이었다. 매번 한인 대형마켓이나 식당을 가도 만날 수 없었던 사람이었다. 정말 반가운 일이다.


“대체, 다들 시카고에 살고 있기라도 한 거야?" 하며 안부가 역시 궁금한 사람이 많다. 그간 이런 식으로 간혹 들러서 우연찮게 만난 사람들이 꽤 된다. 어린 시절 친구를 만난 듯 손을 마주 잡고 얼싸안는다. 그 기분으로 서로에게 빵을 사주겠다며 봉지를 가득 채운다.


이런 왁자지껄하고 기쁜 일이 모두 4060세대들이 베이커스 빌에서 정식으로 수다방을 턴 이후부터다. 

이들은 주말이면 무리를 지어 옛 친구를 찾아가듯 베이스 커스 빌로  간다. 


달콤한 빵을 입에 배어 물고 차를 홀짝거리며 이민생활의 힘겨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이처럼 빵 굽는 마을은 우리 동네의 최고의 수다방이면서 시카고 교민들이 그리는 고향집의 따스한 아랫목 같은 곳이 되었다.


단 빵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는 간혹, 눈발이 흩날리는 추운 겨울밤이면 괜히 달달한 팥빵이 그리워진다. 고향을 찾아온 사람처럼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정담을 나누는 우리네 사람들도 보고 싶다.


좀 늦은 밤이라도 괜찮다. 당장 기분이 내키면 , 그냥 입은 채 후줄근한 모습으로 차를 몰고 냅다 달려간다.

“ 오늘은 혹 누구를 만나려나? 하는 설렘으로. 마치 고향집을 향해 달려가는 아련한 그리움 한 움큼 안은채. 눈발을 맞으며 가는 그 길이 따스하기만 하다.


 빵 굽는 마을이 그 이름처럼 시카고 교민들의 마음까지 따스하게 구워가는 추억들이 쌓이는 수다방이 되었으면 좋겠다. 변함없는 정다운 이웃처럼, 여전히 오울드 팝이 잔잔히 흐르는 소박한 낭만이 있는 그곳이 되었으면. 오랫동안.


봄날이 저 담벼락 귀퉁이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다. 

봄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어느 이른 아침에는 빵 굽는 마을로 가야겠다. 편안한 지인들을 불러내야겠다. 아침

8시쯤이면 막 구워 나온다는 신선한 빵을 맛보며, 진한 홍차를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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