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단어는 비슷하지만 확연히 다르다. 나의 부족한 이해력으로 설명하자니 어떻게 풀어써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예시를 들어보면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존심
나는 어려서부터 승부욕이 강한 편이었다. 학교에서 늘 1등을 해야 마음이 편했다. 시험이든, 피아노든, 달리기든, 서예 등 기타 활동이든 어느 방면에서나 우수한 학생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모든 일에 1등일 수 없다는 것을 초등학생 고학년쯤 돼서야 깨닫게 되었다.
나보다 피아노를 훨씬 잘 치는 아이를 만난 것이다. 그때만 해도, 내 주위에서 내가 가장 피아노를 잘 치는 학생이었다. 4학년 때 체르니 40 중반까지 진도를 뺀 친구가 주변에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체르니 40을 끝낸 것은 물론, 모차르트와 베토벤 연습곡을 들어갔다. 어린 시절 내 자존심에 1차로 금이 가게 된 계기였다.
고등학생이 되어 대입 준비를 하게 되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중문과에 지원을 했는데, 중국어에는 자신이 있어 원어 면접을 본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 면접 당일, 나와 함께 면접을 본 학생은 나보다 중국어 학습 기간이 반절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나 유창하게 중국어로 면접을 봤고, 나는 어버버 하다가 면접이 끝나고 말았다. 그때 자존심에 큰 스크래치가 났다.
대학 졸업 후, 세상에는 나보다 잘난 사람이 정말 많다는 것을 깨닫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자, 내가 하는 업무에 대해 자신감이 붙었다. 평소 업무에 대한 다른 사람의 평가도 좋은 편이어서 그 자신감에는 근거가 있었다. 하지만 가끔 결과물에 대해 부족한 점을 지적당하면 아직도 자존심이 상하기는 한다.
내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자존심이란 자신감에 근거해 생기는 마음가짐인 것 같다. 내가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 내가 누구보다 우수하다는 자신감이 깨어질 때 자존심이 상하게 된다. 하지만 어떤 일로 자존심이 상했다고 해서, 그것이 내 자존감까지 영향을 끼치게 두지는 말자.
자존감
자존감은 나 스스로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최근 업무 강도도 나쁘지 않고, 워라밸도 어느 정도 보장되어 나만의 시간이 생기면서 나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친구의 질문이 계기가 되어, 자존감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보고 있다.
내 자존감은 나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나에게는 인생의 목표가 있다. 지금은 그 목표와는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지금 하는 일도 미래에 어디에선가 쓸모가 있으리라 막연하게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인생의 목표를 언젠가는 꼭 이루리라는 정말 막연하지만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엔 누가 나한테 뭐라 하든 내 자존감이 크게 흔들릴 일은 없다.
하지만 이렇게 자존감이 세워지게 된 것도 그다지 오래되지는 않았다. 불과 1년 전에 내 자존감이 바닥을 친 적이 있었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나는 자존심이 매우 강한 사람이라, 내가 나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타인에게서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을 때 매우 스트레스를 받는다. 당시 살인적인 야근과 더불어 업무에 대한 성취감이 전무하다 못해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조차 몰라 심리적으로 매우 피곤하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매일같이 야근 후 택시를 타고 퇴근하는 길, 시속 100km 이상으로 빠르게 달리는 택시 뒷좌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택시기사분이 조금의 실수로 사고가 나게 된다면, 이대로 죽어도 상관없겠다. 그렇다면 회사에는 어느 정도의 타격이 갈까. 처음엔 업무적으로 조금 차질이 있더라도 그래도 조금만 지나면 내가 있었냐는 듯 회사는 그대로 잘 굴러가겠지. 하지만 그래도 회사에 큰 충격을 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며 퇴근하기를 한 달여 하니, 정신적으로 너무 피폐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주위 사람들도 다들 내 안색이 안 좋다며 걱정의 한 마디씩을 건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새벽에 퇴근하며 택시를 타고 돌아가는 길, 똑같은 상상을 하다가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만약 지금 사고로 죽는다고 하면, 내 가족들은 어떡하지? 회사는 사원을 한 명 잃는 것뿐이지만, 내 가족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건데. 그럼 내 꿈은 어떡하지? 이대로 죽게 된다면 회사에서 잃는 것은 극히 작은 일부일 뿐이지만, 나와 내 가족들이 잃는 것은 매우 큰 것이며, 내 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게 될 것이다. ’
이 생각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택시 뒷좌석에서 혼자 훌쩍거렸다. 이런 마음가짐을 가져가면서까지 일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힘들게 일하면서 직장생활을 하느니, 차라리 이후의 거취가 정해지지 않았더라도 퇴사하는 것이 백만 번 낫겠다고 생각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이때까지의 힘들었던 것들이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회사에서의 생활보다 나 자신과 내 가족들이 훨씬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자, 순식간에 선택의 기준이 뒤바뀌어버렸다.
그날 이후, 직장에서의 “나”와 퇴근 후의 “나”를 분리하는 연습을 하면서,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개인 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자 훨씬 마음에 부담 없이 직장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나중에는 운 좋게 조직 변동이 되면서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심리학자가 아니다. 자존감에 대한 정확한 정의도 모른다. 그리고 사실 어떻게 해야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지도 잘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자존감은 자신에 대한 신뢰와 사랑에서 비롯한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 믿어주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사랑하고 믿어줄 것인가? 누가 뭐라고 하든 (물론 나에게 득이 되는 쓴소리라면 겸허히 받아들일 줄 아는 태도도 필요하다), 혹은 내 뜻대로 일이 잘 안 풀릴지라도, 내가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면, 자존감은 무럭무럭 자라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