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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랑 Nov 27. 2024

첫 눈이 이토록 많이 내리다니

어렸을 때 이후로 처음

2024년 첫 눈은 작년보다 늦었다.

설악산에도 눈이 내리지 않아 걱정을 했다.

어젯밤부터 눈이 내리더니, 오늘은 하루종일 눈이 내렸다.

올해 처음으로 내린 눈이 함박눈으로 하염없이 하늘하늘, 나풀나풀 내렸다.


30년도 더 전에, 어릴때는 눈이 진짜 많이 내렸다.

많이 내린 눈이 녹으면서 고드름도 꽝꽝 얼었고, 좁은 골목에 쌓인 눈을 양 옆으로 몰아 놓으면, 엄청나게 커다란 눈 언덕이 생기기도 했다.

살던 집 옥상이 어른 키를 조금 넘기는 높이라서 그 밑에 쌓아놓은 눈에 풀썩, 뛰어내리는 놀이를 몇 번이고 했다.

내 용기를 증명하는 방법. 발 밑에 눈 더미로 뛰어내리기.


또 하나는, 산에서 썰매타기였다.

좁은 산길-여기서 좁은 산길은 정말 좁다. 등산로가 아니라, 산골에서 나무하러 오르내리는 좁은 길- 에서 비료포대 깔고 내려온다.

속도가 어마어마하다. 동네 언니, 오빠들 따라 올라갔다가, 겁이 났지만, 이까짓 것! 하며 발을 굴러 내려오다가 죽는 줄 알았다.

돌부리에 탁, 걸리면서 데굴데굴 굴러서 길 밑에까지 굴러갔는데-구르는 동안 정신이 없어서 잘 기억은 안나지만- 그 모습을 지켜봤던 동생 말로는

‘언니가 죽는 줄 알았다.’고 한다.


시골을 벗어나고부터는, 이렇게 많이 내리는 눈을 본 기억이 없다.

게다가 첫눈이 이렇게 많이 내릴 줄이야.

어렸을 때는 고드름을 따서 깨물어 먹기도 하고(불순물이 얼마나 많았을까), 고드름 칼싸움을 하기도 했다.

워낙 눈이 많이 내리던 곳이라, 고드름도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두껍고 단단하게 얼어붙었던 터라, 상대와 부딪히면 와장창 깨지기도 했지만,

짱짱하게 살아남기도 했던.


눈이 내리면, 어른은 운전 걱정부터 하지만, 어린이들이야 그저 나가 놀 생각 뿐이다.

우리반 어린이들도 아침부터 들썩들썩하는데 짐짓 모른척 하다가, 3교시에 체육을 1교시로 슬그머니 옮겨놓았다.

눈치빠른 녀석들은 “어?!” 하고 아는 체를 하지만 그래도 아무 소리 안 하고 할 일을 하다가,

“눈이 내렸으니까 놀자! 나가자!” 하니 와아, 하는 녀석들.


아침에 문자로 ‘장갑을 챙겨서 보내주세요.’ 했는데, 정작 장갑 챙겨 온 아이는 자기가 알아서 챙겨왔단다. 아침에 출근 준비로 바쁘니 못 보셨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장갑 하나쯤은 챙겨서 보내줄 여유가 있지 않나. 이럴 때면 보호자들도 참 무심하다 싶다. 맨 손으로 놀아도 잘 놀지만, 손이 꽝꽝 얼어붙는다. 새빨갛게 언 손으로 눈사람도 만들고, 눈도 뭉쳐서 던져보고. 이럴 때 핫초코가 있으면 딱인데, 아쉽다.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린 까닭이 뭘까.

아마도 바닷물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서인 듯 싶다. 좀처럼 바닷물 온도가 내려가질 않는데 거기에 북쪽에서는 찬 공기가 내려오니, 눈구름이 많이 만들어졌을 것 같다. 어제 비가 내리다 잠시 그쳤을 때 미친 듯이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을 보았다. 그리고 겨울비 치고는 거세게 내리 쏟기도 했고. 하루 종일 눈이 내리는 것도 심상치 않은 일이기도 하다. 내일까지 눈이 이어진다는데, 어린이들이야 신이 났지만, 어른들은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기후 위기…..가 뼈저리게 느껴지는 날들이다. 어린이들이 살아갈 앞날이 걱정이다. 내 앞날이기도 하지만. 어떤 날들이 이어질지, 과학자들도 짐작을 할 수 없으니, 그저 하루 하루 주어진 날들을 살아내는 수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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