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시리즈 3: 과학이 밝혀낸 속독의 진실
과학적으로 검증된 속독법과 효과 없는 속독법을 피하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독서 시리즈는 밥 먹고 책 읽고 브런치에 글만 쓰는 프로디의 고민과 발견을 담습니다.
책을 10배 빨리 읽으면, 남들보다 10배 똑똑해지면
어떤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지난 2주간 우리가 글을 왜 읽는지, 그리고 글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살펴봤습니다.
이제는 정말로 속독술을 배울 차례입니다.
과연 속독술은 가능할까요?
시중에 있는 70만 원짜리 고액 속독술 강의를 보면, 몇 배씩 빠르게 읽게 해 준다고 장담합니다.
가끔 방송을 보면 책장을 촤라락 넘기면서 속독술을 연습하는 아이들 모습도 있습니다.
정말 효과가 있을까요? 저 아이들은 실제로 뭔가 배우고 있을까요?
객관적인 근거를 찾기 위해서 속독을 연구한 논문을 찾아 읽어봤습니다.
제가 참고한 논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글 말미에도 정리해 놨습니다.)
So Much to Read, So Little Time: How Do We Read, and Can Speed Reading Help?
Does speed-reading training work, and if so, why?
정리한 결과는 이렇습니다.
1. 속독술은 정확도를 많이 희생한다.
2. 독해 속도는 언어처리능력과 안구운동능력에 달렸다.
3. 하지만, 예외적으로 효과 있는 기술이 있다.
이게 전부예요. 이제부터 왜 속독술이라고 알려진 기술들이 무의미한지, 예외적으로 효과 있는 기술은 무엇인지, 장기적으로 글을 빨리 읽는 방법은 무엇인지 차례로 알아볼게요.
흔히 속독술 강의나 책을 보면 3가지를 주장합니다.
무작정 빨리 읽다 보면 빨라진다.
속발음을 하지 마라 (속발음: 마음속으로 소리 내어 읽는 것)
시선회귀를 하지 마라 (시선회귀: 방금 읽은 글을 되돌아가 다시 읽는 것)
3가지 전부 큰 의미 없다고 과학적으로 입증되었습니다. 하나씩 살펴볼게요.
속독술 책들이 흔히 하는 얘기가 이겁니다. 일단 빨리 눈을 움직이다 보면, 뇌가 적응해서 점점 빨라진다는 논리입니다. 물론 일부 천천히 읽던 사람들이라면 더 빨리 읽을 수 있지요. 하지만 속독을 배우려는 사람이라면 이미 최선을 다해 일찍 읽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강제로 더 빨리 읽으려고 하면 부작용이 생깁니다. 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속독을 한 사람들은 빨라진 속도만큼 이해력이 떨어집니다.
많은 실험 결과가 말합니다. "속독은 속도와 정확한 이해를 교환한다." 이게 왜 문제인지는 이전 글에서 충분히 설명했습니다. 백날 읽어봐야 결국 내가 이해해서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시간낭비, 에너지낭비입니다.
무작정 빨리 읽는다고 독해능력이 늘지 않습니다. 헛소리입니다. 잠을 점차 줄이면 뇌가 적응해서 하루에 3시간만 자도 충분해진다는 논리랑 같습니다. 현실은 어떨까요? 치매에 걸리고 일찍 죽습니다. 신체의 한계를 인정해야 합니다.
속발음을 하지 않으면 더 빨리 읽을 수 있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속발음은 글을 읽을 때 마음속으로 소리 내서 읽는 행위입니다.) 사람은 말하고 듣는 속도보다 읽는 속도가 2배 빠릅니다. 그래서 많은 속독술 자료는 속발음 하지 않는 연습을 시킵니다.
절반은 틀린 이야기 합니다. 속발음은 어려운 글을 이해하는데 도와주거든요. 쉬운 글은 속발음 없이 빨리 읽으면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어려운 글을 읽을 때는 속발음이 도움이 됩니다. 지난 글에서 설명했듯, 글을 빨리 읽더라도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시간낭비일 뿐입니다.
시선회귀(방금 읽은 글로 되돌아가서 다시 읽는 것)는 나쁜 습관이라고들 얘기합니다. 연습하다 보면 시선회귀를 하지 않고 더 빨리 읽을 수 있다고도 하죠. 실제로 그럴까요? 역시 내용이 쉽고 문장이 단순한 글에서만 맞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어렵고 복잡한 글을 빨리 읽어야 할 때에는 시선회귀를 하지 않으면 오히려 글 읽기가 더 힘들어집니다. 특히 문장구조가 복잡한 글이 그런데요, 어떤 문장은 끝까지 읽어야지 그 구조가 나타납니다. 주어가 맨 뒤에 있거나, 수식절이 겹쳐있는 경우가 그렇죠. 이럴 때에는 시선회귀를 해야지 글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간혹 쉬운 글이나 충분히 이해한 글도 시선회귀를 하는 사람이 있다고도 하는데요, 그런 드문 경우에는 도움이 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화면에 한 단어씩 띄우는 '신속 순차 시각 제시' (Rapid serial visual presentation, RSVP) 기법도 큰 효과가 없다고 하네요. 문장구조가 애매하거나 중의적이어도 되돌아가 읽을 수 없는 문제도 있고요. RSVP를 활용해서 평소보다 빨리 읽으면 역시 잘 이해하지도 기억하지도 못한다고 합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빨리 읽으면 정작 내용을 놓칩니다. 특히 글 여러 곳에 흩어진 내용을 연결하는 일을 더 어려워한다고 합니다. 글을 깊게 이해하는데 방해가 된단 뜻이죠. 좋은 글을 속독했다면, 너무 얕게, 허투루 읽었을지도 모릅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글은 대부분 정보밀도가 높은 어려운 글입니다. 교과서, 논문, 보고서 전부 정보밀도가 높습니다. 하지만 논문에 따르면, 속독은 특히 어려운 글을 읽을 때 이해력이 떨어집니다. 억지로 빨리 읽는다고 뇌가 적응하지도 않습니다. 요약하자면, 제가 검토한 어떤 논문도 속독술로 큰 효과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방법이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알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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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말씀드리자면, 여기서 알려드릴 속독술은 효과는 있지만, 5배 10배 빨라지는 방법은 아닙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1~20% 정도 빨라질 것 같네요.
하지만 10% 차이라도 오랫동안 쌓이면 그 차이는 어마어마해집니다.
매일 1%만 발전해도 1년이면 37배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꼭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정리한 방법은 3가지입니다.
속독술이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낸 논문에서도, 의식하며 읽기는 약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정확히는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1) 내가 잘 읽고 있는지 신경 써서 읽으면 더 빨리 읽을 수 있다. 2) 글의 흐름과 주제, 찾는 정보를 의식하며 읽으면 더 효율적으로 읽을 수 있다. 두 방법 모두 정확도를 유지하면서 속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집중해서 읽으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속독은 결국 "속도와 정확도의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쉽거나 익숙한 글은 굳이 정확하게 읽지 않아도 됩니다. 대충 훑듯이 읽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글이 어려워지는 지점에서만 천천히 읽으면 됩니다. 익숙한 분야의 책이라면 절반 정도는 이미 아는 내용이니 이렇게만 해도 30%는 더 빨리 읽을 수 있습니다.
글을 읽는 시간 대부분은 눈에 들어온 글을 이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입니다. 그러면 글을 이해하기 이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먼저 눈알을 움직여 단어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 후, 단어를 인식해서 글을 이해합니다. 이 과정 중, 단어에 초점을 맞추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눈알이 항상 읽어야 할 단어를 한 번에 찾지는 못하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불 꺼진 방에서 더듬더듬 스위치를 찾듯, 눈알도 찾으려는 단어가 있을만한 곳에 초점을 맞춘 후 더듬더듬 읽을 단어를 찾습니다. 특히 한 줄을 다 읽고 다음 줄 첫 단어를 찾을 때 시간이 많이 낭비됩니다.
이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데요, 손가락이나 젓가락으로 내가 읽을 줄을 가리키면 됩니다.
간단하죠?
눈은 멈춘 글자를 읽을 때보다 움직이는 물체를 따라갈 때 훨씬 더 잘 움직입니다. 그래서 내가 읽을 단어나 줄을 가리키기만 해도 훨씬 매끄럽게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처럼 욕심과 호기심이 많은 분이라면 궁금증이 생깁니다. 글을 읽는 시간 대부분이 언어를 이해하고 처리하는 시간이라면, 언어처리능력을 키울 수는 없을까요?
독서 시리즈의 마지막 문제인 언어처리능력을 다뤄봅시다.
언어처리능력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요? 세 가지를 추천드립니다.
질문하기, 많이 읽기, 요약하기
잔뜩 기대하셨는데 너무 단순한 방법인가요?
수많은 방법을 찾아봐도 꼼수는 없었습니다.
정직하게 많이 읽고 요약하는 방법이 가장 확실합니다.
각각 장점이 있습니다.
관심이 있어야 집중해서 읽습니다. 따라서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으면 좋습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싫어도 읽을 문서가 한가득입니다. 이럴 때 내 의지로 관심을 만들기는 어렵죠. 하지만 관심을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 질문입니다. 질문은 호기심을 만드니까요. 저는 '속독은 가능하다'라는 평소라면 지나쳤을 평범한 문장에 관심을 가졌고, 이 때문에 여러 책과 논문을 찾아봤습니다. 호기심이 생긴 순간, 속독이 가능한지는 제 인생에서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질문이 떠오르지 않으면 '저자는 어떤 의도로 이 글을 썼을까?' 혹은 '저자의 주장이 틀리지는 않았나?'를 질문하면 어떤 글이든 꽤 흥미로워집니다.
글은 대체로 구조가 비슷합니다. 마찬가지로, 같은 분야의 글은 내용도 대부분 겹칩니다. 즉,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용과 구조에 익숙해지고,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좋은 예시로, 프로 체스선수들은 일반인과 달리 체스판에 말이 배치된 모습을 쉽게 외웁니다. 그동안 공부해 온 몇백 가지 전략과 게임 흐름에 익숙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실제 체스 게임에 나올 일 없는 무작위 말 배치를 보면, 프로 선수의 암기 능력도 일반인과 비슷합니다. 체스 선수의 암기 능력은 그동안 접해온 말 배치의 익숙함에 의존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글을 접할수록 다양한 문장구조와 글의 전개방식, 그리고 내용에 익숙해집니다. 위에서 얘기했듯, 느리게 읽거나 다시 읽는 이유는 내용과 단어, 문장구조가 어색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는 많이 읽으면 해결됩니다. 그러면 새로 만나는 글도 익숙한 글처럼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약하는 연습을 하면 글에서 어떤 부분이 중요하고, 어떤 부분은 대충 읽어도 되는 지엽적인 부분인지 판단할 수 있게 됩니다. 중요한 부분은 집중해서 읽고, 나머지는 힘을 빼고 빨리 읽으면 더 효율적으로 텍스트를 소화할 수 있습니다. 또한, 책은 내용이 이어지기 때문에, 요약으로 읽은 내용을 정리하면 뒤의 내용도 빠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 언급했듯, 읽은 내용을 기억하려면 출력해야 합니다. 요약이 가장 좋은 출력입니다. 요약하며 읽어야 헷갈리지 않고 빠르게 읽고, 기억에도 남길 수 있습니다.
이런 내용을 통합해서 루틴으로 만들면, 지난 글에서 소개드린 '기록-요약-연결-반복' 독서법이 됩니다. 결국 깊고 탄탄하게 읽는 방법이 가장 빠르게 읽는 방법이에요. '기록-요약-연결-반복' 독서법은 여기서 설명드렸어요.
이것으로 독서 시리즈 3부작을 마무리했습니다.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부터 시작해서, 읽는 목표와 기술, 속독법까지 다뤘죠. 책을 잘 읽는 방법인 기록-요약-연결-반복, 그리고 더 잘 읽는 방법인 다독과 요약까지 배웠습니다.
그럼 이제 실천해야죠!
그런데... 어떤 책을 읽으실지 결정하셨나요?
분명 좋은 책 한 권을 10번 읽는 것이 평범한 책 10권을 읽는 것보다 나은데, 그 좋은 책은 어떻게 찾나요?
매주 몇십 권씩 새 책이 나오는데, 바쁜 우리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요?
어떤 책을 읽을지는 단순한 접근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지요. 어떤 출판사 책만 읽거나, 하버드 교수 글만 읽거나, 표지가 어두운 책을 읽어서 될 문제는 아닙니다. (단순한 접근법은 이전에 다루기도 했고요!)
"어떤 책을 읽을까"라는 질문은 근본적으로 "어떤 지식을 얻어야 할까?"와 같기 때문입니다.
책 한 권 읽을 시간 내기도 어려운 현대인은 어떤 지식을 배워야 할까요?
AI가 직업을 없애고, 평생직장이라는 개념도 희미해지는, 폭풍처럼 급변하는 요즘 세상에
우리는 어떤 지식을 얻어야 가장 잘 살 수 있을까요?
워렌 버핏의 파트너이자 천재 투자자인 찰리 멍거의 인터뷰 기록에서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세 개의 바구니, 격자틀, 그리고 플랑크의 운전기사 일화에서 답을 구했습니다.
다음 글에서 "가치 있는 지식을 고르는 법"을 알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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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한 논문 (둘 다 훑어볼만해요)
Rayner, K., Schotter, E. R., Masson, M. E. J., Potter, M. C., & Treiman, R. (2016). So Much to Read, So Little Time: How Do We Read, and Can Speed Reading Help? Psychological Science in the Public Interest, 17(1), 4-34. https://doi.org/10.1177/1529100615623267
Klimovich, M., Tiffin-Richards, S. P., and Richter, T. (2023) Does speed-reading training work, and if so, why? Effects of speed-reading training and metacognitive training on reading speed, comprehension and eye movements. Journal of Research in Reading, 46: 123–142. https://doi.org/10.1111/1467-9817.12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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