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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전: 하이브리드전과 스타트업 경쟁전략

차오량의 초한전 & 그람시의 진지전 & 찰리 멍거

by 프로디

"초한전"으로 중국의 전쟁 전략을 알아보며, 1) 찰리 멍거의 사고방식, 2) 스타트업이 대기업을 이기는 방법도 알아봅시다.


모든 곳이 전쟁터다

세계 2차 대전 초기, 영국은 독일에게 고전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은 영국의 전쟁 의지를 북돋기 위해 연설합니다.

출처: 영화 '다키스트 아워'
우리는 끝까지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프랑스에서 싸울 것이고, 바다와 대양에서 싸울 것이며, 공중에서 더 강한 자신감과 힘으로 싸울 것입니다. (중략) 우리는 해변에서 싸울 것이고, 상륙지점에서 싸울 것이며, 들판과 거리에서 싸울 것이고, 언덕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계 2차 대전 때에는 도시와 시골, 해변과 바다, 하늘과 심해, 모든 물리적인 공간이 전쟁터였습니다.


이제는 다릅니다.

현대에는 정신적인 공간도 전쟁터입니다.


경제, 방송, 문화, 통신, 종교까지 모든 분야에서 전쟁해야 한다는 주장은 100년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리고 20년 전 중국군 장교는 24가지 전쟁을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지요.


오늘은 중국의 전략서인 초한전(超限戰)과 그람시의 진지전(陣地戰)을 통해,

우리가 앞으로 겪을 전쟁을 알아봅시다.


초한전: 중국의 24가지 전쟁계획

초한전은 1999년 중국 인민해방군 장교 차오량과 왕샹수이가 쓴 책입니다. 초한(超限)은 한계가 없다는 뜻으로, 초한전은 한계 없는 전쟁이라는 뜻입니다.


2021년에 드디어 한국에도 번역본이 출간되었습니다.

초한전의 목적은 상대적으로 약한 중국이 세계 패권국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그 결과, 모든 윤리와 규범과 제한을 초월하여 테러를 비롯한 온갖 방법으로 혼란과 공포를 일으키는 초한전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총과 미사일로만 싸운 기존 전쟁과 달리, 앞으로는 테러, 언론, 사이버전을 포함한 제한 없는 전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 책의 주장입니다. 그 과정에서 빈 라덴을 직접 호명하며 9.11 테러를 예측한 덕분에 유명해졌죠. 미 육군사관학교의 필독서이자, 미국 해군사관학교 교재로도 채택되었습니다.


한계를 넘는다는 말은 국제법도 규범도 윤리도 개의치 않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인 합동공격으로 전쟁을 한다는 뜻입니다.


초한전: 적의 상상을 초월해라

이 책이 9/11 테러를 예측했다고 하는 대목은 이렇습니다.


슈워츠코프(군사 전) + 빈 라덴(테러전) +
조지 소로스(금융전) + 로버트 모리스(사이버전)
가 합쳐진 전쟁을 상상해 본 적 있는가?
- 초한전


'초한전'은 도덕과 관습도 초월합니다. "중국의 초한전: 새로운 전쟁의 도래"의 저자인 이지용 교수에 따르면, "중국 국내에서 열린 '초한전' 북토크에서 한 중국인 학생이 '중국인의 도덕과 관습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라고 묻자, 챠오량과 왕샹수이는 '초한전을 이해하지 못한 질문이다. 도덕과 관습을 뛰어넘어야 한다. 적의 상상을 초월하는 가장 악질적 악마가 돼야 적을 패배시킬 수 있다'라고 답했다"라고 합니다. (출처)


작년 4월, 미국 하원은 중국 정부가 펜타닐 원료 및 합성 마약을 공개적으로 밀매하는 기업들에 금전적 보조금과 포상을 제공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출처: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42020

이런 뉴스를 보면, 이 전략대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초한전은 총과 폭탄은 물론이고, 마약과 금융, 미디어와 이념까지도 전쟁에 활용하는 '24전법'을 제시합니다.

출처: https://kookbang.dema.mil.kr/newsWeb/20200504/1/BBSMSTR_000000100097/view.do

24가지 전법을 혼합해서 활용해야 미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입니다.


미래에는 사이버 공격으로 혼란을 주고, 언론을 장악해서 여론을 흔들고, 기술을 훔치고, 무역장벽으로 경제를 흔드는 방식의 특수한 공격이 전쟁의 중심축이 된다고 합니다.

https://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1/07/10/2021071000009.html


방송, 언론, 문화와 이념을 전쟁에 포함시킨 개념은 초한전이 발명해 낸 것은 아닙니다.

1910년대 이탈리아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진지전: 여론을 향한 조용한 전쟁

초한전과 비슷한 맥락에서 이탈리아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제시한 '진지전'이란 개념이 있습니다. 그람시는 무력만으로는 사회를 바꿀 수 없다고 봤습니다.


대신, 교육, 문화, 예술, 언론 등 다양한 진지에서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죠.

안토니오 그람시

다양한 진지에서 차츰차츰 사상적 기반을 무너뜨리고, 사회의 상식을 바꿔서 여론을 움직여야 한다는 이론입니다.


그람시는 이러한 사상전을 '진지전'이라고 부릅니다. 교육, 문화, 예술, 언론 등의 조직이 사회의 전쟁터이자 진지라는 것입니다. 각 분야는 피를 흘리는 무력대신, 여론을 바꿔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싸웁니다.


이는 초한전이 말하는 '한계 없는 전쟁터' 개념과 같은 맥락입니다. 두 이론 모두 전쟁을 사회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사회의 여론을 바꾸고 혼란을 유발한 후에, 군사 행동으로 마무리하는 전략입니다.

먼저 이겨놓고 싸운다
(先勝求戰) 『손자병법』


온 세상이 전쟁터다

실제 벌어진 사건들을 보면, 두 이론은 (윤리성과는 별개로) 미래를 정확히 예측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전쟁은 총알과 군사력보다, 정보나 여론, 경제와 법률 등 다양한 사회 장치가 활용될 것입니다.

정치, 유튜브, SNS, 금융시장, 교육기관 등 우리 일상 곳곳이 전쟁터가 될 수 있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52717#home


가장 안전해 보이는 교육기관, 지역사회, 정치제도까지 이미 초한전은 효과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초한전이 출간된 지 25년이 지났습니다.

제목에 '전쟁 계획'이라고 썼지만, 사실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들입니다.


그리고 초한전은 또 다른 쓰임새가 있습니다.


초한전과 찰리 멍거, 그리고 스타트업

초한전을 소개한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24가지 전법을 혼합해 창의적인 전술을 구사하는 전략은 제가 종종 언급한 멘탈 모델을 활용한 사고방법과도 이어집니다. (다음 글에서 다룰) 워런 버핏의 파트너 찰리 멍거도 이런 사고방식을 강조합니다.


찰리 멍거는 격자틀 사고 모형(Latticework of mental models)과 룰라팔루자 효과(Lollapalooza effect)를 자주 얘기하는데요, 둘 다 초한전의 접근 방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격자틀 사고 모형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여러 관점(=프레임)들을 동시에 활용할 때 우리가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24전법이 다양한 방법으로 전쟁을 바라보듯이, 우리 또한 한 현상을 다각도로 접근해야지 그 실체에 더 다가갈 수 있다는 뜻이지요.

여러 관점들이 격자틀처럼 연결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룰라팔루자 효과란, 여러 효과가 합쳐졌을 때 그 결과가 증폭되는 시너지 효과를 말합니다. 24 전법이 각각 따로 실행되면 그렇게 강하지 않지만, 동시에 실행되면 한 사회를 무너뜨릴 수 있는 것 또한 룰라팔루자 효과입니다.


스타트업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상대적 약자인 스타트업이 기존 플레이어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 역시 초한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기존 기업들은 전략이라고 여기지 않는 전략을 채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적당히 효과적인 전략을 여럿 병행하면, 시너지가 발생하는 룰라팔루자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는 드물지만 강력한 방법입니다.


이처럼 여러 관점과 전략을 합치면 폭발적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 드릴게요!


매주 일요일, 똑똑해지는 팁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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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초한전"이 6년간의 번역 끝에 2021년에 한국어로도 출간되었습니다. 이론 중심이라 쉬운 책은 아니라서 유튜브 영상도 추천합니다. (번역서 구매는 지지의 의미도 있습니다.) 저자 북토크, 유튜브, 함께 읽을 기사 1, 기사 2


P.P.S. 초한전이 지적한 문제는 강대국이 비대칭전에 약하다는 점인데요, 그런 면에서 팔란티어 Palantir가 달리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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