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무엇이든 잘 배우는 방법

깊은 부호화와 학습 피라미드

by 프로디

갓 대학에 입학한 20살 때, 수학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로 수업을 했습니다.

이런 느낌의 작은 동네 학원이었습니다.

수업을 하면서 정말 이상하다고 느낀 점이 있었습니다.


저는 매 수업을 준비합니다. 여러 교재를 읽어보며 어떻게 설명해야 학생들이 이해하기 가장 쉬울까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해도 학생들은 다 잊어버리더라고요.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저는 다 기억합니다.

저는 제가 다룬 문제 유형들을 기억하고, 각 학교의 시험범위와 특성을 기억합니다.


고생해서 목이 터져라 설명한 저는 기억하는데,

쉽게 정리된 정보를 듣는 학생들은 잊어버리는게 이상했습니다.


왜 이럴까요? 설명을 하는 사람은 기억하고, 들은 사람은 잊어버릴까요?


뇌과학을 공부한 끝에, 그 이유를 찾았습니다.

'인출'과 '깊은 부호화' 때문이었습니다.

두 개념을 이해하면 깊은 지식을 쌓아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어려운 내용도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인출과 깊은 부호화로 무엇이든 잘 배우는 방법을 알아봅시다.



뱉어야 기억난다

사실, 가르치는 사람이 배우는 사람보다 잘 기억하는 것은 연구로도 입증된 사실입니다.


입력보다 출력이 기억을 강화하기 때문이지요.


2006년 뢰디거와 카픽이라는 과학자들이 한 연구에 따르면,

능동적 인출(가르치기)이 수동적 학습(수업듣기)보다 암기에 도움이 됩니다.


연구자들은 실험자를 세 그룹으로 나눈 후, 같은 자료를 주고 각각 다른 방법으로 공부하게 했습니다.

자료 읽으며 공부하기 4회 반복

자료 읽으며 공부하기 3회 + 배운 내용 모의 시험하기 1회

자료 읽으며 공부하기 1회 + 배운 내용 모의 시험하기 3회


어떤 그룹이 가장 공부를 잘했을까요?

결과는 1 < 2 < 3 순이었습니다. 수동적으로 자료를 읽은 학생보다, 배운 내용을 떠올려서 써본 학생들의 성적이 훨씬 높았습니다.


학생들과 제 차이도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편안하게 앉아서 수업을 듣기만 하는 학생들보다 내용을 떠올려서 설명하는 선생이 더 학습을 잘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매주 똑똑해지는 실용적인 팁을 드릴까요?
설득, 마케팅, 글쓰기 등 현대인의 필수 스킬을 알려드려요
지금 구독하고 새 글 알림을 받아보세요!


미국의 심리학 연구소인 NTL에서도 '학습 피라미드'라는 모형으로 이런 현상을 설명합니다.

학습 피라미드에 따르면 공부방법에 따라 기억에 남는 정도가 10~90%까지 차이가 난다고 하는데요, 사람은 읽은 내용의 10%만 기억하지만, 말하고 쓴 것의 70%를 기억한다고 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Learning_pyramid


학원비를 내고 편하게 수업을 들은 학생들보다, 어렵게 수업을 한 제가 9배나 더 기억을 잘 한다니 신기합니다.


그런데, 수업 외에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도 학습에 도움이 된다고 하네요.


아이러니하죠?

그 이유는 '깊은 부호화'를 이해하면 알 수 있습니다.



깊은 부호화: 정리해야 기억난다

부호화(encoding)란, 우리가 보고 듣는 정보를 1) 머릿속에서 정리하고, 2) 이미 알고 있는 지식과 연결하는 과정입니다.


예시를 들자면, 카레 조리법을 보고서 '아, 이건 국 끓이는거랑 비슷한데, 고기를 먼저 볶고, 물을 덜 넣으면 되는구나'라고 생각하는 과정이 부호화입니다.


조리법을 기존에 알고 있는 '국 끓이는 방법'이라는 지식이랑 연결한 다음, '물 조절을 해야 한다'고 의미를 부여해서 정리하는 과정이 부호화입니다.


즉, 부호화란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정리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부호화도 방법에 따라 효과가 다릅니다.

정보의 겉모습에 집중하는 얕은 부호화가 있는 반면, 정보의 의미에 집중하는 깊은 부호화가 있습니다. 얕은 부호화는 레시피가 적힌 책의 모양, 레시피의 폰트나 글씨 색깔에 집중하지만, 깊은 부호화는 레시피의 내용과 특이사항에 집중합니다.


실험에 따르면, 깊은 부호화가 얕은 부호화보다 2배 더 기억에 남습니다.

연구진은 피험자들에게 단어 목록을 주고, 얕은 부호화(대문자인지 소문자인지)와 깊은 부호화(단어의 의미)에 관한 질문을 한 후, 단어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이 때, 깊은 부호화를 유도하는 질문을 받은 피험자들의 성적이 2~4배 더 높았습니다.


즉, 정보의 의미를 재조직하고, 기존 지식과 끈끈하게 연결할수록 잘 기억합니다.


정리하자면, 의미를 재조직하는 깊은 인코딩과 인출이 학습의 핵심입니다. 특히, 어렵고 복잡한 내용을 배울수록 이렇게 학습해야 하죠.


그런데 인출과 깊은 부호화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결국 글쓰기

이 둘을 다 하는 쉬운 방법이 글쓰기입니다. 글쓰기 자체가 인출이며, 내가 배운 내용을 간결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깊은 부호화 활동이니까요.


따라서, 글을 쓸 때에 남이 쓴 글을 내 말로 다시 쓰는 것은 큰 이득이 없습니다. 배운 내용을 내 방식대로 구조화할 때 학습이 이루어지니까요. 고쳐쓰는 과정도 효과적입니다. 내가 쓴 글을 읽으면서 논리적인지 따져보고, 부족한 부분을 다듬다보면 머리속에서 의미를 재구조화하게 되니까요.



결국 학습하려면 머리를 써야 합니다. 강사의 설명을 넋 놓고 들어도 학습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굳이 귀찮게 출력하고 부호화해야 합니다. 굳이 귀찮고 힘들게 머리를 써야 학습이 이루어집니다.


머리를 쓰는만큼 배우게 된다는 사실은 이전에 속독술 시리즈에서도 다룬 내용입니다.

고생했다고 가치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치있는 것은 고생해야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글을 써야 깊이 배울 수 있을까요?

다음 글에서 똑똑해지는 글쓰기 방법인 파인만 테크닉을 알려드릴게요.

매주 똑똑해지는 실용적인 팁을 드릴까요?
설득, 마케팅, 글쓰기 등 현대인의 필수 스킬을 알려드려요
지금 구독하고 새 글 알림을 받아보세요!


참고자료: 학습과 인출 연구논문, 학습 피라미드,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칼럼 1, 칼럼 2



이런 글도 좋아하실 것 같아요!


keyword
이전 03화당신은 과학자인가요, 운전기사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