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A VIDA_014
학교 행사가 있는 날이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5시 반에 집에서 나왔다. 전날 마리 씨에게 내일 학교 일로 다른 캠퍼스에 가는데 일찍 나가니 아침을 준비해 주시지 않아도 된다고 미리 말해 두었다. 나는 잠을 일찍 자야 했는데 마리 씨가 10시가 다 돼도 안 들어오시기에 그냥 왓츠앱으로 메시지를 보내 놓고 잤다.
5시 반에 나오니 서서히 아침이 밝아 오고 있었다. 코스타리카에 와서 처음으로 이 시간에 일어나 봤다. 약간 쌀쌀하니 공기도 왠지 더 맑은 것 같고 기분이 좋았다.
동료 한 선생님 차를 타고 학교 본 캠퍼스로 이동해서 6시가 조금 넘어 버스를 탔다. 우리는 대형버스로 이동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미니버스였다. 더군다나 같은 버스에 탄 사람들이 거의 나이 드신 분들이셔서 나나 한 선생님이나 어쩔 수 없이 보조 좌석에 앉아서 갔다. 갈 때 3시간 반, 올 때는 러시아워에 걸려 4시간 반이 걸렸다. 힘든 일정이었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간식을 먹기는 했지만 그래도 힘들었다. 도로 상태도 좋지 않아서 버스도 덜커덩거렸다. 의미 있는 행사를 해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정말 짜증이 날 뻔했다.
Cañas(까냐스)라는 지역에 있는 학교의 다른 캠퍼스에 가서 학생들에게 한국을 소개하고 한글로 이름을 써주는 행사였는데, 나는 한복을 입고 하기로 했다. 까냐스가 무척 덥다고 들어서 가기 전부터 걱정이었는데 도착하니 정말 더웠다. 그나마 우리는 실내에서 행사를 진행해서 다행이었다. 한복도 저고리만 조금 덥고 치마는 의외로 붕 떠서 시원했다.
학생들이 기념으로 나와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정작 내 카메라에는 세 장만 찍혀 있다. 행사를 하는 내내 학생들이 줄 지어 기다리고 있어서 화장실에 갈 시간조차 없었다.
학생들에게 먼저 노트에 숫자와 본인의 이름을 적게 하고, 나는 그걸 보고 매직으로 이름을 써주었다. 예시로 각기 다른 글씨체로 똑같은 이름을 네 번 써놓고 학생들이 원하는 걸 선택하도록 했다. 한 선생님은 이름을 받은 학생들에게 홍보물과 학교에서 제작한 연습장을 한 권씩 나눠 주셨다. 총 160명의 학생이 나에게 이름을 받아 갔다. 사실 한 학생이 2개나 3개씩 받아간 경우도 있기에 딱 160명은 아니지만 어쨌든. 보통 여학생들이 본인의 남자친구 이름도 써달라고 했다.
이름을 받은 학생들은 신기해하며 어떻게 읽냐고도 물어보고, 한국어 수업에도 관심을 보였다. 행사 자체는 중간에 점심시간이 끼어서 5시간 정도만 진행됐고 재미도 있어서 힘들지는 않았다. 점심은 학교 총장님과 행사 때문에 온 다른 분들과 함께 코스타리카 전통 음식을 먹었다. 노란색을 띤 밥이었는데 카레 같았다. 맛있게 잘 먹었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니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1시간 반 정도 더 이름을 써주고 3시 반에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오는 길은 차가 막혀 갈 때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도중에 원숭이를 본 건 신기했다. 작고 귀여운 원숭이들이 나무에서 나무로 이동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산에 가도 끽해야 다람쥐나 청설모를 보는 게 전부인데, 여기에서는 원숭이를 볼 수 있다니! 나라 전체가 동물원 같다.
집에 돌아오니 8시였고, 우유를 사러 나갔다 와서 시리얼을 먹고 씻은 후에 바로 곯아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