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 브랜드 투자 프로그램, Netflix <밀리언 파운드 메뉴> 리뷰
어떻게 하면 음식을 팔아 성공할 수 있을까요? 쉽지 않은 질문이네요. 테크 스타트업의 경우엔 이젠 비즈니스 모델에 따라 단계별로 따라가야 할 성공 가이드라인이 어느 정도 만들어졌습니다. 창업 방법론에서부터 투자받는 것도 단계별로 정해져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생태계가 구축되었습니다. 또한 회사가 목표를 이루고 성공을 하게 되면 어떻게 회사를 팔고 투자받은 자금을 회수할 엑싯(exit) 전략도 미리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업계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상식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테크 기업에 비하면 사실 달성할 수 있는 매출의 한계가 존재하는 게 사실입니다. 심지어 운영 관리하기가 쉽지 않고 외적/내적 리스크 요소가 아주 많습니다. 외식업계에 투자가 좀처럼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꼭 큰 프레임을 바라보는 것에서 벗어나 가게 하나를 운영한다는 관점에서도 장사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하고 나면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음식 장사일 것입니다. 익숙해서 일까요? 그러고 보니 퇴직을 앞두고 열심히 TV에서 나오던 치킨 레시피를 열심히 받아 적으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선하네요. 꼭 은퇴를 앞둔 세대만이 아니라 밀레니얼 세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매일같이 먹는 음식이기에 일반 사람들도 상품(음식)에 대한 이해도가 높습니다. 30~50년을 먹었으니 자신만의 취향이 생기고 주관이 생깁니다. 문제는 여기서 생기죠. 익숙함과 편협된 경험만을 토대로 모든 것을 판단해 버리는 오류를 범하기 일쑵니다. 간혹 매우 허름한 환경에 구석진 곳에 위치한 식당에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들이 있습니다. 유명 노포의 겉모습만 보고 우리들은 맛만 좋으면 장사는 잘 된다는 인식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런 노포들이 지금껏 살아남은 이유가 단순히 맛이 좋아서 일까요? 외형적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수없는 변화와 나아지기 위한 고민과 노력, 그리고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압축된 노하우들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노포들의 성공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들이 왜 성공했는지 얼추 견주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콘텐츠를 찾았습니다. 바로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는 <백만 파운드의 메뉴(MILLION POUND MENU)>라는 영국 프로그램입니다. 그냥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내용을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스타트업 투자 프로그램의 외식업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외식 브랜드로서 성공하기 위한, 혹은 적어도 성공의 발판(take-off)을 마련할 수 있는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뭉칫돈을 투자하기 위해 다양한 측면에서 면밀히 분석해야 이 브랜드가 사업성이 충분한지 판가름할 수 있습니다. 맛이 성공의 유일한 잣대가 아님을, 그리고 외식업에서 사업성을 갖춘다는 의미를 훑어볼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1. 투자자들이 모여 함께 지원자들 중 매주 2팀씩 총 12팀을 선정
2. 사업 피칭 동영상을 보며 투자자들은 관심 있는 팀을 선택
3. 각 팀이 운영할 식당의 인테리어가 완성되면 3일간 운영
4. 그동안 투자자들은 투자 가치가 있는지 신중히 검토
5. 투자자들은 투자 결정이 되면 약속한 시간에 나타나 투자 제안
각 투자자마다 투자 스타일과 투자 철학이 다르지만 그들의 투자 결정을 관통하는 단 한 가지 공통분모에는 ‘확신’이라는 키워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해도 단 한 가지의 부족함을 채우지 못하면 망하는 것이 사업이기에 큰돈을 투자하게 위해선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 프로그램의 묘미는 투자자들의 인사이트뿐만 아니라 미쉐린 가이드의 별을 받은 식당에서의 경험이 풍부한 진행자의 인사이트도 엿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기억에 남는 그들의 인사이트를 몇 가지 뽑아 봤습니다.
진행자의 설명을 듣고 처음 듣는 단어 때문인지 뭔가 새로운 문화처럼 느껴졌으나 한국말로는 가오픈을 뜻합니다. 우리나라 식당들은 가오픈을 얼마나 비중 있는 기간으로 여길까요? 단순히 식당의 운영 상태를 최적화하기 위한 의미를 넘어 그 식당의 기획이 맞아떨어지는지 확인하고 영업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정의 기간으로 볼 수 있지도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스타트업으로 치면 정식 오픈 전에 제품시장적합성(Product-market-fit)을 확인하겠다는 것이죠. 그러나 사실 이미 임대 계약을 맺은 자리에서 제품시장적합성을 판단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입니다. 기획이 잘못되었다고 접을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내가 세운 기획이 시장에서 먹힐지는 시장에 직접 뛰어들어봐야 알 텐데 음식 장사는 그냥 가볍게 테스트하기에는 그 기회비용이 너무 큽니다. 전통적 의미의 음식 장사의 가장 큰 문제점이죠. 다행히도 솔루션은 존재합니다. 이제는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를 이용하여 충분히 고객들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전에 브랜드로서 어느 정도의 팬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조건입니다. 또 다른 대안으로 바로 공유 주방 서비스가 그 틈새를 매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매장 하나 개설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사업성을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죠.
*읽어 볼만한 글: Soft Launch Vs. Hard Launch
시그니처 메뉴는 식당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프로그램에 등장한 모든 팀들은 자신들만의 강력한 시그니쳐 메뉴를 가지고 있었죠. 그중 눈에 띈 메뉴 중 하난가 바로 치즈 휠 파스타입니다. 만드는 방식부터 독특합니다. 먼저 더블크림과 함께 익힌 파스타면을 팬에서 익힌 후에 거대한 그라나 파다노 치즈 휠에다 넣고 치즈가 면에 충분히 묻어 나올 때까지 돌려주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양젖 치즈를 얹어 마무리해줍니다. 어떻게 맛이 없을 수가 있을까요. 여기에 더해 치즈 휠이라는 요소 하나만으로도 온라인상에서 바이럴이 될만한 훌륭한 콘텐츠도 가졌으니 더할 나위 없는 기획력과 사업성을 가진 브랜드입니다.
instagram@thewheeluk
푸드트럭에서 팔아서 그런지 가격마저 6.5파운드로 런던의 물가에 비하면 꽤 저렴합니다. 그러나 홀 매장에서는 사정이 달라집니다. 이는 곧 영업이익과 연결되는 문제입니다. 치즈 휠 하나는 꽤 고가입니다. 진행자도 그 부분을 지적했죠. 그나마 푸드트럭에서 수익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홀의 크기에 따른 제약이 없고 홀직원이 없으니 인건비가 절감된다는 것이죠. 그러나 홀 매장은 다릅니다. 매장 크기가 그리 크지 못하다면 빈자리가 나올 때까지 새로 온 손님들은 기다려야 하니 더 많은 매출을 올리고 싶어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인건비 등 추가적으로 들어가는 비용들, 그리고 주방과 홀이 매끄럽게 운영되기 위해선 충분한 경험과 역량을 필요로 합니다. 아쉽게도 ‘더 치즈 휠’은 푸드트럭 창업자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투자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트랩 키친은 출연한 팀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방식으로 자신의 브랜드를 구축했습니다. 100% 배달 전문 매장이지만 매장 근처에서 직접 테이크아웃을 해야 합니다. 사실 매장이라고 말하기에도 좀 애매합니다. 모든 메뉴를 집에서 만들기 때문이죠. 고객들과의 소통 창구는 인스타그램입니다. 방송 당시 팔로워 수는 4만 명이었고 현재는 10만 명에 육박합니다.
instagram@trapkitchen
트랩키친을 운영하는 프린스 대표는 요리를 좋아해 인스타그램에 자신이 만든 요리를 올릴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진을 보고 사 먹고 싶다는 반응들을 보고 사업 기회를 보았습니다. 프린스 대표가 말하는 전략은 단순합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홍보하고 입소문으로 찾아온 손님들은 그의 집 주변에서 주문을 받아 테이크아웃 해가는 방식입니다. 워낙 유명해지다 보니 주거 지역에 차량과 사람들이 많이 몰려 주차요원까지 배치될 정도입니다. 그러나 일주일에 3일만 일하며 주에 10,000파운드(한화로 약 1,500만원) 매출을 올립니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영업 이익이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죠. 혼자서 요리하고 소셜미디어도 관리하며 주문한 메뉴를 집 근처로 찾아온 손님들에게 가져다주는 정도이기에 인건비가 거의 들지 않습니다. 또한 (영국이기에 가능하겠지만) 집에서 메뉴를 만들어 팔기에 임대료가 없습니다. 물론 사업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팀들보다 체계를 잡고 대표의 사업적 역량을 강화하는 데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그의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자신감, 두터운 팬층을 두고 보면 그의 비즈니스 잠재력은 충분함을 느꼈습니다.
트랩 키친도 투자를 받지는 못했지만 투자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사업성이 없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아직 젊고 경험이 부족하기에 사업가로서 배울 점이 많고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드는 만큼 조금 더 정교한 비즈니스를 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할 뿐입니다.
음식 장사이기에 요리만 잘한다는 사실만으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프로그램에 참가한 팀들은 이미 유명하거나 요리 자체를 충분히 훌륭합니다. 그러나 여느 사업과 들과 마찬가지로 제품의 품질이 뛰어나다고 성공할 수 없듯이 성공하기 위한 사업적 자질이 셰프들에게도 필요합니다.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지, 위기 상황에서의 대처 능력, 직원들을 동기 부여하고 리드할 수 있는지 등과 같은 요소들이 똑같이 적용됩니다. 3화의 ‘홀링스’ 팀은 훌륭한 음식과 기획력을 가지고도 창업자들의 사업적 자질 때문에 투자 기회를 놓쳐버립니다. 예를 들어 사업기획서의 예상 수익계산이 부정확하다거나 투자를 받더라도 가게 운영에 100% 집중할 수 없다고 밝힌 부분들은 투자자로 하여금 지속적 사업 영위의 측면에서 의구심을 들게 만들었습니다. 반대로 트랩 키친의 프린스처럼 많은 부분에서 사업가로서의 자질이 주먹구구식이었지만 긍정적 사고방식, 자신감, 태도와 열정, 그리고 PR을 잘한다는 점에서 잠재력이 무궁무진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프로그램에 나온 팀들의 메뉴에서 영국 시장의 트렌드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키워드는 건강과 채식, 그리고 새로움입니다. 건강에 좋은 음식에 대한 니즈는 한국 못지않게 영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국에서는 한식을 포함한 아시아 음식이 트렌드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와 연결해 비건 푸드에 관련된 메뉴를 준비한 팀들도 여럿 보입니다. 또한 기존의 요리를 재해석한다든지 쿠바와 같은 새로운 문화권의 음식도 잘 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한국 음식도 등장합니다. 한식의 색깔을 띠면서도 영국인의 눈으로 현지 시장에 맞게 현지화시켰습니다.
instagram@chefjaymorjaria
한국인의 프레임으로 영국 시장에 들어갔다면 생각해내지 못할 법한 메뉴들이 등장합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한국인의 입맛에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동안 한식 세계화에 실패한 이유는 트렌드 흐름에 제대로 편승하지 못한 부분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로는 그 시장에 맞게 현지화를 시키지 못해서입니다. 현지인의 시각으로 재탄생한 한식 메뉴를 보고 든 생각이었습니다.
아쉬웠던 점은 투자 프레임이 오로지 전통적인 방식의 오프라인 외식에 한정되어 있었다는 점이죠. 프로그램 기획 특성상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업의 경계와 유통 및 마케팅 채널의 다양화로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은 무시한 듯합니다. 물론 투자자들이 그런 점을 모르고 있진 않겠죠. 단지 다양한 사례를 보지 못했다는 점과 너무 전통적인 프레임에만 갇혀 있다는 느낌을 받은 데에서 오는 아쉬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