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감탄식당

힙함의 경제성

감탄식당 #3 <베르크 로스터스, Werk Roasters>

by 하와이룰즈

힙(hip)함이 사업성을 증명해주지 않는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겉으로 보이는 힙함, 혹은 인스타그래머블한 인테리어가 반드시 매출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인스타그램의 생리는 지루해지면 새로운 것을 갈구한다는 데에 있다. 인싸인증을 했으니 새로운 곳을 찾아 나서는 것이 그들의 미션 아닌 미션이다. 가게의 전략을 겉치레에만 집중한다면 잠시 이슈는 될지라도 그 가게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요즘엔 인테리어로 주목받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게 무엇이 가장 우선되어야 하는지도 모른채 망해가는 곳들이 수없이 많다. 그래서 ROI(투자자본수익률, Return on investment) 승리를 위해서 투자 비용은 최대한 낮출 필요가 있다. 예술에 깊은 조예가 있어 그걸 컨셉으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면 어차피 인테리어는 시간에 따라 가치가 떨어지기에 굳이 돈 들여 비싸게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예술이 아니라 사업이다. 얼마 전 부산 들른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이런 이슈에 대한 좋은 사례를 발견했다.




#오더는 지하에서 드링킹은 2층에서

부산 전포동에 있는 카페인 베르크 로스터스(Werk Roasters)에 들렀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처음 접했는데 컨셉이 하도 특이해서 어떤 곳인지 궁금했던 곳이었다. 카페 입구에서부터 신선함을 마주했다. 오더는 지하에서 드링킹은 2층에서 이루어진다. 들어서기도 전에 임대료를 절감하는 새로운 방식인가 싶어 감복했다. 보통 자신감이 아닌 듯 보였다. 주문을 하러 지하로 들어서니 어두컴컴한 분위기에 마치 매우 조용한 스피키지 바(Speak-easy bar)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내부 바닥, 벽, 천장 그 어디에도 이렇다 할 손 덴 흔적이 없다. 전 임차인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과거의 흔적은 그대로 남겨두되 세련됨을 더한 특유의 음침-세련된 컨셉은 최소한의 투자 비용을 추구한다. 사업적으로도 의미 있는 컨셉이자 트렌드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심지어 여기는 요즘의 과거의 공간을 재생한 카페들이 진부해 보였던 찰나였는데 이곳은 뭔가 달랐다. 인테리어 비용은 평당 50만 원이 채 안 들었을 것 같았다. 정도의 기준을 얘기하자면 일반적인 프랜차이즈 카페 인테리어 비용이 평당 150만 원에서 200만 원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한다. 이에 견주어 보면 매우 똑똑한 선택이다.


음악마저 내 스타일이다.


Werk’s vibes


사실 인스타에서 보던 모습과는 약간 달랐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교회에 온 듯한 고요함이 느껴졌다. 실제로 보니 고요함의 종류는 조금 달랐지만 조금 더 날 것 느낌이었다. 아마 바닥이며 벽이며 천장이며 아무런 마감처리가 되어 있지 않아서 인 것 같다. 전국 교회에 수소문하여 모았다는 기다란 의자들이 나란히 정렬되어 있었고 조명은 거의 없었으며 낮고 깊게 울려 퍼지는 사운드는 전반적인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2층의 인테리어를 보니 아마 의자 배송비가 가장 많이 들었을 것 같았다.



힙스터들의 대화



#효율성 보단 고객과의 유대감

접객의 방식도 독특하다. 보통은 운영에 있어 효율성이 우선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부분의 카페에 가 보면 매장 크기에 따라 1대~2대의 POS(Point of sales, 쉽게 말해 계산 단말기)가 설치되어 있어 모든 주문을 한두 사람이 전담하여 주문을 받는다. 직원과 손님 사이에 물리적, 심리적 거리감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베르크는 달랐다. 직원들은 자유분방하게 돌아다니면서 손님이 있으면 먼저 눈을 마주친 직원이 파란색 테이블에서 주문을 받는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주문을 받는데 직원과 손님 간의 물리적 거리도 가깝고 소통을 가로막는 어떤 장애물도 없다. 그러다 보니 대화가 더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유대감도 더 형성되는 듯했다.



재밌는 것은 POS기에 주문 내역을 입력하는 것이 아니라 따로 준비되어 있는 주문서에다 주문 내역을 적는데 아래의 이름 적는 칸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손님의 이름을 직접 물어본다. 고객들에게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가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고객으로서 경험한 그 효과는 생각보다 강력하다. 손님들은 모두 직원들과 자연스레 이야기를 즐기고 있었다. 효율성 보단 고객 경험을 더 소중히 생각하는 진정성 있는 방식이다. 이렇게 직원 모두가 주문을 받고 바로 음료는 뽑을 수 있는 이유는 그들 모두 공동 창업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운영 방식이 유난히 더 눈에 띈 것은 사실 스타벅스와 비교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스타벅스 전 CEO 하워드 슐츠 왈, 스타벅스에서 진동벨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고객들과 소통하기 위한 의도라고 이야기했다. 안타깝게도 스타벅스 리저브 음료를 이용하지 않는 이상 스타벅스에서 직원들과 어떤 유대감을 느낀 적이 없다. 워낙 바쁘다 보니 그럴 여유도 없는 게 사실이다. 조금 더 따지고 보면 문화적인 이유도 있다. 북미권 스타벅스에서 주문을 하면 직원들이 이름을 물어보고 그 이름으로 음료가 나왔음을 알려준다. 이 과정에서 바리스타들과 자연스레 이야기가 오가는데 한국의 경우엔 이름 불리는 것 자체를 꺼려하니 소통이 쉽지가 않다.



주문서는 음료가 나오면 함께 준다. 아마 사진 찍어 인스타에 올리라는 이야기인 것 같다. 종이 한 장으로 훌륭한 고객 경험과 운영, 홍보까지 한 큐에 해결해 버린다. 효자 메뉴판이다.



#컨셉에 실력이 가려져 있지 않았다

주말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일단 평일 오후 시간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카페 주변을 보니 디자인 스튜디오들도 있고 재밌는 컨셉의 식당들도 듬성듬성 보이는 것을 보니 서울로 치면 약간 망원동과 성수동 중간쯤 되는 느낌의 동네인 것 같았다. 일단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는 것으로 보아 매장에서 커피 팔아서는 매출을 올리는 곳은 아닐 것으로 예상된다.

*NYT ‘올해 가봐야 할 52곳’에 부산 전포동 카페거리 선정


내가 방문한 날은 서울 코엑스에서 커피 엑스포가 한창 진행되고 있던 날이었다. 행사에 베르크도 참가했는데 맛에 자신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Today’s Filter를 주문했는데 단숨에 그들의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철저히 나의 취향 기준이지만, 풍부한 과일 향과 적당한 산미, 맛의 풍부함을 채워주는 단 맛과 디펙트(defect, 커피의 결함) 없이 딱 떨어지는 깔끔함과 여운, 그리고 전반적인 맛의 균형이 꽤 훌륭했다. 이들의 커피 맛의 지향점도 클린업(clean-up)과 단맛이라고 하니 정확히 나의 취향에 부합한다.


핵심역량은 제품의 품질에 있었다. 그래서 굳이 사람 많은 상권에 들어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독특한 컨셉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커피 맛을 본 사람들을 타깃으로 원두도 판매할 수 있다. 맛이 좋으니 원두 판매율도 높지 않을까 예상된다. 타 로스팅 베이스 카페처럼 여기도 온라인에서 정기배송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다. 이 정도의 퀄리티면 분명 B2B로도 납품 문의가 많을 것 같다. 실제로 홈페이지 WHOLESALE 페이지에 가면 원두 납품 문의가 상당히 많다. MD도 판매하는데 컨셉이 괜찮아 로고가 박혀 있어도 거부감이 없을 것 같다.


물론 사실 수익구조의 측면에서는 일반적인 로스터리 카페의 전형과 별 다름은 없다. 개인적 바람으로는 품질과 브랜드 컨셉이 받쳐주니 이제 브랜드 경험 컨텐츠 측면에서도 뭔가 힙한 움직임을 기대해 본다.



2019년도 싱글 오리진 원두. 집에서 내려 먹어도 만족스럽다.



+ps.알고 보니 이들 제품이 좋은 이유가 았었다. 원래 '모모스 커피'에서 일하다 독립했다고 한다. 이번에 WBC(World Barista Championship)에서 우승한 전주연 바리스타가 일하는 그 카페 말이다. 모두 이유가 있었다.


상호: 베르크 로스터스

주소: 부산 부산진구 서전로58번길 115

운영시간:

-평일 14:00~21:00

-토요일 11:00~21:00

-일요일 휴무





感歎食堂 | 감탄식당 시리즈

01 <세컨드 키친> 자연스러운 경험의 이동

02 <지구당> 스타벅스 vs. 지구당

03 <베르크 로스터스> 힙함의 경제성(현재글)

keyword
하와이룰즈 경제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셰프 프로필
구독자 1,286
매거진의 이전글지구당 vs. 스타벅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