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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필 Jul 16. 2023

B급 간호사 유미 씨 (1)

윤필의 주변인 인터뷰 프로젝트

나의 소울 메이트, 친구 유미를 만났다. 서울 모처에서 만난 우리는 늘 그렇듯이 밥을 먹고 카페에서 수다를 떨었다. 몇 시간 동안 이야기해도 지치지 않고 똑같은 얘기를 해도 즐겁다. 수다를 사랑하는 유미는 자신이 겪은 일을 재미지게 전달하는 재주를 지녔다. 같은 일화도 유미가 말하면 말맛이 산다. 또 이놈의 사건은 유미에게만 일어나는지 늘 이야깃거리가 넘쳐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많던 대화 주제가 점점 좁혀지기 시작했다. 아마 유미의 입사 이후부터인 것 같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녀의 직장 에피소드는 우리의 주요 화제로 자리 잡았다. 유미의 이야기에 자지러지던 나는 이제 그녀의 직장 분투기에 웃픈 감상을 내놓고 있다.     





유미는 상급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다. 이제 입사한 지 1년 된 사회초년생이기도 하다. 1년도 됐으니 어느 정도 일이 손에 익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2년 차에 접어든 지금도 어리바리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혼나는 것이 익숙해질 만큼은 적응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에 혼난 기억을 말해주는 유미 씨. 사연은 꽤 슬펐다. 교수로부터 B급 간호사라는 말을 들은 것.

     


"오더를 제대로 거를 수 있는 사람이 A급이고 하라는 대로 하는 사람이 B급 간호사야."          



이 발언에는 여러 가지 속사정이 숨어있다. 유미는 전담의의 지시대로 일을 처리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해당 환자에게는 불필요한 절차였고 이에 대한 화살은 오직 유미에게 향한 것이었다. 의사가 내린 지시는 유미가 어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누구보다 이를 잘 아는 건 교수일 것이다. 그런데도 드라마에 나올 법한 대사가 등장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당시 유미의 뒤에서 듣고 있던 전담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교수와 전담의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을 유미에게 괜찮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쿨하게 반응했다.                


"그냥 웃고 말았지. 별 개소리하는 사람도 다 있네?"     



대범하게 넘기는 유미의 모습에 괜히 내가 위로받았다. 이 친구가 단단한 사람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에게 유미는 또 다른 고민거리를 내보였다.          



"넌 삶의 낙이 뭐야? 난 낙이 없어."          



밥 잘 먹다가 갑자기 낙을 찾는 유미 씨. 이야기가 다소 생뚱맞고 철학적이고 센티하다고 생각할 법도 한데 난 공감해버렸다. 그 질문에서 방황의 기운을 읽었기 때문이다. 이미 방황 중인 나는 역시나 유미의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생각보다 삶의 낙을 답하는 건 쉽지 않다.               


대범하고 무던한 유미도 미래에 대한 고민은 끝이 없나 보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내로라하는 병원에 입사한 유미 씨. 백수였던 나의 눈에는 제 몫을 하고 사는 멋쟁이 직장인으로 보였다. 하지만 여느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미래에 대한 계획, 삶의 즐거움에 대한 고민으로 마음이 복잡해 보였다.


고등학생 땐 대학 가면 괜찮을 줄 알았고 대학생 때는 취업하면 무언가 해결될 것처럼 보였지만 여전히, 우리의 고민은 끝이 없다. 어떻게 살아야 좋을까?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내리고 어떻게 인생을 꾸려나가나? 우리의 대화 내내 이 질문들이 둥둥 떠다녔다.           


그렇게 돌고 돌아 나는 유미에게 물었다.           



"너의 얘기를 한 번 해보는 건 어때?"     

      


고등학생 때는 간호사의 '간'자도 모르던 네가 어떻게 간호사가 되었느냐고. 그렇게 간호사가 되어서 넌 어떻게 살고 있냐고. 너의 인생에 대해서 쭉 말하고 또 듣다 보면 우린 좀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탕한 유미는 흔쾌히 자신의 삶을 보여주기로 했다. 사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당최 알 수 없어서,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뭔가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에 시작해보기로 했다. 남들이 사는 이야기, 이제 그 첫 번째 이야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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