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 시 반, 눈을 뜨자 서늘한 공기가 뺨을 감싼다. 몸은 여전히 찌뿌둥하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는 동안 밤새 뭉쳤던 근육들이 서서히 풀리는 듯했다. 하지만 어제 무리했는지 어깨에 불편감이 느껴졌다. 짐을 어떻게 싸느냐가 배낭의 무게만큼이나 중요하다는 말이 떠올라서 배낭을 다시 쌌다. 맨 위에 있던 침낭을 배낭 아래쪽으로 옮겼다. 배낭 정리를 마치고 1층 카페로 내려가자 주인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준다. 커피와 빵, 각종 잼과 오믈렛으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작별 인사를 하고 카페를 나섰다. 프랑스의 아침은 생각보다 쌀쌀하다.
순례자 안내소를 지나치는데, 어제 뵌 할아버지가 “봉쥬르” 손짓을 하신다. 할머니 봉사자는 교회와 다리, 주요 건물들을 짚어주며 갈림길에서 왼쪽은 절대 안 된다고 지도까지 보여주며 신신당부했다. 덕분에 길을 잃지 않고 카미노 표식을 찾을 수 있었다. 말씀해 주신 대로 성당과 다리를 지나, 가게들이 늘어선 길을 따라 곧장 걸어갔다. 물 1.5리터, 사과, 에너지바, 빵, 버터 등 며칠 치 식량과 가이드 북이 어깨를 짓누른다. 허리를 펴야지! 유리창에 배낭을 멘 내 모습이 왠지 어색해 보인다. 이 여행이 끝나면 나는 어떻게 변해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도시의 골목길이 끝나고, 드문드문 집이 보이더니 본격적인 숲길이 나타났다. 왼쪽에는 토마토가 오른쪽에는 옥수수가 익어가고 있다.
경쾌한 리듬의 탁, 탁, 탁 소리가 뒤에서 가까워진다. 구릿빛 피부의 건장한 남자가 옆을 지나간다. 어느덧 내 앞을 걷는 남자, 키는 나보다 20센티 이상 큰데 내 것의 반 정도 되는 배낭을 메고 걷고 있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시야에서 사라져 갔다. 다시 혼자 길을 걷는다. 서울의 바쁜 삶을 뒤로하고, 피레네 언저리에 있다는 사실에 행복감이 밀려든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난생처음 써보는 스틱에 의지해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서울에서는 왜 그렇게 쫓기듯 살았을까? 하늘을 올려다볼 틈도, 가로수의 변화를 느낄 여유도 없었다. 물리적인 바쁨 때문만은 아니었다. 길가에 핀 이름 모를 풀꽃, 담벼락에 핀 나팔꽃을 천천히 보고 음미해 본다. 산들로 둘러싸인 길을 걷고 있으니 코엘료의 책 [연금술사]의 양치기가 저 앞 언덕 위 집에서 문을 열고 나올 것 같다.
얼마쯤 걸었을까? 나는 평소에 걷기를 좋아하지만 10킬로 배낭을 메고 가는 길은 훨씬 더 힘들게 느껴졌다. 등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앞 쪽 길은 경사가 더 가팔라 보였다. 내가 이 길을 완주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지난 몇 년간 내가 이런 경사진 길을 오르고 있었던 듯하다. 아마 그 길이 힘들었던 것은 그 길이 나에게 맞는 길인지, 왜 그 길을 가고 있는지 확신이 없어서였던 것 같다.
시멘트 길이 끝나고 흙 길 위를 걷기 시작하니 속도가 조금 더 붙는 것 같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것 같다.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는데 자갈길 한 구석에 돌무덤이 있다. 가이드 북에서 보았던 브라질 순례자의 무덤인 듯했다. 순례길 초입의 무덤을 보며 이 사람은 산티아고에 도착하지는 못하지만 영원히 순례길의 일부가 된 듯했다.
오리손 1킬로 미터 표지판이 보인다. 다리에 쌓여오는 피로 때문인지 나는 점점 느려졌고 앞에서 걷던 순례자들은 벌써 저만치 가 있다. 거북이처럼 걷고 있는데 저 멀리 카페가 보였다. 집 뒤에 텐트가 있는 것을 보니 텐트 숙소를 운영한다는 오리손 알베르게가 맞는 것 같다. 카페에 들어가서 에스프레소를 한 잔 시켰다. 나는 정말 기진맥진한 상태였고 옷은 땀으로 다 젖어 방금 사우나에서 나온 몰골이었다. 피레네 산중턱에서 마시는 에스프레소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달콤하다. 몸이 무거울 때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진하게 타서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서빙을 하는 페치카에게 오늘 숙소 예약을 했다고 말했다. 페치카는 장부를 확인하더니 나에게 확인 전화 요청을 했는데 전화가 없어서 예약이 취소되었다고 한다. 전화라니? 무슨 전화를 말하는 것인가? 나는 전화 요청을 받은 적이 없었다. 지금 이 상태로 피레네를 넘어서 스페인 론세스바예스까지 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페치카는 하던 일을 마치고 나서야 다시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바스크 말이라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전화를 마친 페치카는 건물 안 침대 칸에는 자리가 없고 원하면 밖에 텐트에서 잘 수 있다고 한다.
카페 뒤 텐트에는 누군가 이미 낮잠을 자고 있었다. “Where are you from?”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한국인 악센트였다. 그녀도 몹시 지친 표정이었는데 오자마자 골아떨어졌다고 한다. 여름이었지만 산 위라서 그런지 날씨가 조금 쌀쌀했다. 하늘을 보니 비가 내릴 듯했다. 샤워 동전을 넣는 샤워기는 따뜻한 물이 5분 동안 밖에 나오지 않았다. 대충 샤워를 하고 빨래를 널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카페 앞을 통과해 걷는 순례자들이 있다.
저녁은 8시에 모여 순례자들이 함께 저녁을 먹는데 바스크 지역 음식들이 나왔다. 수프, 고기류와 감자가 나왔다. 따뜻한 수프 한 입에 하루의 피로가 가시는 느낌이다. 굴라쉬 같기도 하고 어딘가 한국의 맛이 느껴졌다. 우리 테이블에는 캐나다인 네 명, 독일에서 온 세바스찬이 앉았다. 왜 카미노를 걷게 되었는지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오리손에 머무는 순례자들 대부분은 오십 대 후반, 육십대로 보였다. 캐나다에서 온 크리스티안 아줌마는 탁월한 유머 감각의 소유자로 그녀 덕분에 저녁 식사 내내 모두들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세바스찬은 덩치는 산만한데 이제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앞둔 십 대 소년이었다. 식사가 끝날 때쯤 누군가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영어, 불어, 스페인어가 중구난방으로 섞인 채 말들이 오갔다. 혼자 온 사람들도 많았는데 순례길을 걷는 동지애 때문인지 사람들은 곧 친해졌다. 피레네 산속 텐트에서 별을 보고 밤의 소리를 듣는 시간, 순례길에서 맞이하는 피레네의 밤이 저물고 있다. 8월이지만 산 중은 꽤 쌀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