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수유기 마지막탄을 쓰고 있는 지금, 아기는 벌써 7개월에 접어들었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왔나 싶을 정도로 7개월의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실감이 잘 나지 않아요.
완모(완전 모유수유)를 꿈꿨지만 완모(완전 모자람) 앞에 좌절했던 순간들,
꼭지가 아파서 남몰래 엉엉 울기도 했던 통곡의 시간들,
아기 비위 맞추느라 젖 찬양 노래까지 지어 불렀던 웃픈 날들,
눈물, 콧물, 젖물 쥐어짜며 조금씩 엄마가 되어갔던 숱한 밤들...
계획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었고 쉬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돌아간다해도 저 모유수유 할래요.
래칭에 성공한 후 수유텀 신경쓰지 않고 아기가 배고플 때마다 젖을 물렸습니다. 간호사 선생님의 도움으로 자세도 많이 안정되었고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만능 젖크림도 꾸준히 바른 덕분에 꼭지도 다 나았어요. (딱지가 여러 번 앉았다 떨어지고를 반복하면서 강철 꼭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으하하하!)
완모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고 아기 몸무게를 정기적으로 체크하면서 성장 곡선을 잘 따라가는 데 집중했어요. 분유 보충을 죄악시? 하거나 좌절감을 느끼지 않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대신 부족한 젖량은 현대 의학과 민간 요법의 힘을 적극 빌렸습니다. 패밀리 닥터를 통해 돔페리돈을 처방받아 약 3개월 간 복용했고 각종 모유촉진 보조식품의 호갱님이 기꺼이 되었습니다.
지난 달 부터는 이유식을 시작했더니 분유 보충량이 자연스럽게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모유수유도 훨씬 안정적으로 자리잡힌 느낌이에요.
모유를 조금이라도 더 주고 싶은 마음에 지속해 왔던 밤중 수유는 끊기 시작한지 이제 일주일 되었어요. 아직 밤에 몇 번 깨서 울기도 하지만 젖은 더 먹지 않고 스스로 그치고 다시 잔답니다.
다만 굽은 등과 어깨, 모유수유 하니까 엄마가 잘 먹어야 한다는 (매우 설득력 있는) 핑계로 늘어난 뱃살은 이제부터 수습할 예정입니다. (저 말리지 마세요...)
이전 에피소드에서 제가 너무 무서운 이야기만 했나요?
초반의 폭풍 같은 시기가 지나고 나니 태풍의 눈처럼 고요한 찐 행복의 순간이 찾아 오더군요.
아기와 살을 맞대고 착붙했을 때 온전히 느껴지는 따뜻함과 부드러움,
숨이 넘어가게 울던 아기가 젖을 물자마자 울음 뚝 그칠 때의 안도감,
조그마한 손을 엄마 가슴에 얹고 쪽쪽 젖을 빨 때의 귀여움과 기특함,
젖을 빨다 말고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는 씨익 웃다가 다시 젖을 빨 때의 행복감...
엄마의 가슴은 로맨틱한 감정을 넘어서는 원초적인 에너지, 즉 지극히 연하고 약한 새 생명을 품고 길러내는 땅의 힘이 깃든 곳이었습니다.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오후, 능숙한 조교처럼 한 손으로 아기를 받쳐안고 다른 한 손으론 스마트폰을 하면서 여유있게 젖을 주는 모습을 보던 남편이 저와 눈을 마주치더니 씩 웃더군요.
생각해 보면 웃통 까고 젖마사지 받는 모습에 당황해 뒷걸음질 친 적도 있고, 아이 젖고문 하냐며 못마땅해 할 때도 있었고, 독립투사처럼 변한 아내의 가슴에 당혹스러워 하기도 한 남편이지만요,
꼭지가 아파 울 때 연고 구하러 동네 약국 다 뒤지고, 젖이 잘 나오려면 잘 먹어야 하는 관계(핑계)로 치킨 사러 뛰어나가고, 제가 모유수유 씨름하고 있을 때 믿음직스럽게 첫째를 잘 돌봐준 사람은 다 남편이었어요.
"나 많이 컸지?" 하자 다시 씩 웃던 그 날 남편의 미소는 그 모든 시간들을 겪어낸 우리들에 대한 대견함과 고마움이었어요.
그것은 분명 사랑한다는 말 보다 더 강력한 언어였습니다.
나의 모유수유기 끝.
그동안 긴 글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