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드립으로 커피에 입문한 후 본격적으로 브루잉 머신으로 넘어가기 전, 이케아에서 프렌치 프레스를 구매한 적이 있다. 저렴하게 구매한 기쁨도 잠시, 설명서에 적힌대로 커피를 내려보아도 뭐가 잘못된 것인지 커피가루가 서걱서걱 씹히는 것이 꼭 흙탕물을 마시는 기분이었다. 몇 번의 쓰디 쓴 실패 후, 프렌치 프레스는 손이 잘 닫지 않는 찬장 속 구석 신세가 되어 어쩌다 손님들이 오시면 겨우 차나 우리는 용도로 전락하고 말았다.
얼마 전 알게 된 사실인데 놀랍게도 프렌치 프레스는 스타벅스가 가장 추천하는 커피 추출 방식이라고 한다. 프렌치 프레스는 저온 저압에서 천천히 추출되어 커피 원두의 개성이 가장 잘 드러나고, 바리스타의 실력을 타지 않으며, 커피 추출이 쉽고 빠르다. 또한 기기가 작고 가볍고 저렴하고, 캡슐이나 종이필터 같은 일회용 쓰레기를 발생시키지 않는 것도 큰 장점이다. 다만 추출 방식의 특성상 몇 가지 유의할 점이 있는데 커피 원두를 굵게 갈고, 오래 내리지 않으며, 마지막 한 두 모금은 남기는 것이 좋단다. 역시 내 커피가 흙탕물이 되었던 것은 원두를 정성껏 곱게도 갈고 오래 두었다가 바닥에 가라앉은 찌꺼기까지 흡입한 나의 철저한 무지 때문이었다. 프렌치 프레스를 잘만 사용한다면 스타벅스의 CEO 하워드 슐츠가 말한 것처럼 '인류에게 알려진 최상의 커피'를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집 찬장 속에서 원망의 탄식이 들리는 듯 하다.
우리 시어머니 이야기를 해 볼까. 우리 시어머니는 1980년대 초, 해외지사로 발령받은 남편을 따라 캐나다에 오셨다가 이민까지 하게 된, 올해로 해외 거주 35년차인 이민 생활계의 베테랑이시다. 내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어머니를 처음 만났을 때, 나의 상상과는 달리 어눌한 버터 발음이 아닌 유창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시는 것을 보고 나는 적잖이 당황했었다. 전라도 출신답게 요리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솜씨가 좋으시고, 손도 무척 크시다. 토론토 시부모님 댁에 처음으로 식사 초대를 받았을 때, 다른 손님이 여러 분 더 오시는가 착각할 정도로 푸짐한 상차림에 나는 또 한 번 당황했다. 모든 요리는 대접에 수북이 담는 것은 기본이고, 끼니마다 육해공군이 한꺼번에 출동한다. 대식가 남편과 연년생 아들만 둘을 키운 어머니의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밥상이었다. 어머니는 숫자에도 상당히 밝으신데 한인 마트에서 과일 한 박스에 23.99 달러인지 24.99 달러인지, 젊은 나보다 항상 더 잘 꾀고 계신다. 똑같은 24.99 달라도 어느 마트는 열 개 들었고 어느 마트는 열 두 개 들었는까지 다 알고 계신다.
사실 이민 생활이라는 게 여간 고된 것이 아니다. 특히 영어가 안 되고 운전이 안 되면 한인 사회나 집 안에서 고립 아닌 고립을 겪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는 어디 나가고 싶으면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그만이지만 캐나다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운전을 못하면 늘 누군가에게 라이드를 부탁해야 하고 나가도 말이 안 되니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부부가 함께 이민을 와서 한 쪽이 경제 활동을 도맡게 되면 당사자는 좋든 싫든 어떻게든 현지 사회와 부딪히며 배우는 기술들이 늘어나게 마련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상대편과 점점 격차가 벌어진다. 처음엔 둘 다 몰랐던 것도 점점 '안 하니까' 못하다가 나중엔 '못 해서' 못 하는 상황이 되고 만다.
거기다 우리 시아버지처럼 본인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야 하고 아내를 지나칠 정도로 과잉 보호하는 남편을 둔 경우라면, 점점 본인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드는 건 자연스러운 결과인 듯하다. 결론적으로 우리 시어머니는 마트도, 은행도, 병원도, 교회도 혼자 못 가신다. 예전처럼 주택에서 살고 싶어 하시지만 쓰레기를 직접 버려본 적도 없고 잔디를 깎아본 적도 없는 어머니가 시아버지의 반대를 꺾을 요량이 없다. 한 번은 나에게 "너그 아버지는 나한테 잔디 한~ 번을 못 깎게 한다"라고 푸념인 듯 자랑인 듯 말씀하시는 어머니에게 나는 '"아버님이 애처가라서 그러시지요' 하였지만, 그것이 정말 '애처'의 길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우리 시어머니가 노력을 안 하신 것은 아니다. 남편이 어렸을 때 어머니가 가족들을 태우고 운전 연습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꽤 큰 사고가 났다고 한다. 그 후로 시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운전 연수를 시켜 주는 대신 두 팔 벋고 라이드를 해 주기로 하셨단다. 아직도 그 사고의 순간이 기억난다는 다 큰 우리 남편도 "우리 엄마는 절대로 운전하면 안 돼"라고 한다. 어머니는 이제 가족들이 허락한다 해도 운전 면허를 딸 수 없는 연세가 되셨다.
하지만 내가 본 우리 어머니는 그렇게 과소평가될 사람이 아니다. 비즈니스 영어는 아버님보다 잘 못하실지 몰라고 이제는 듣는 귀가 약해지신 아버님보다 소리도 훨씬 잘 들으시고, 어쩔 땐 젊은 우리도 못 알아듣는 말도 눈치코치 백 단으로 알아 들으신다. 또 특이한 올리브 피클이나 (김치도 여러 종류가 있듯 올리브도 종류가 수십 가지다) 캐비어 같은 생소한 재료도 잘 사용하시고, 텔레비전 요리 프로그램에서 보고 따라 만드셨다는 서양 요리도 수준급이다. 요즘은 유튜브에서 경제 관련 채널을 즐겨 보시는지 투자 시장이나 세계 경제 흐름에 대해서도 줄줄 꾀고 계신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도 아니다. 예전에는 영주권자를 대상으로 한 무료 영어 교실도 열심히 참여하셔서 영어로 발표도 하고 인도, 스리랑카, 중국 등 다른 나라 젊은 친구들도 사귀셨단다. 점심시간에는 만두나 김밥 같은 어머니의 한국 도시락이 인기가 좋았단다 그런데 그마저도 시민권을 딴 후에는 자격이 안 되어 갈 수가 없다고 아쉬워하셨다. 내가 캐나다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시어머니는 지나가는 말로 영어도 처음 왔을 때 남들 배울 때 배워야지, 오래 산다고 느는 게 아니더라, 오래 살았는데도 영어가 안 되니까 점점 자신감이 없어져서 더 안 하게 된다며 덕담인지 하소연인지 모를 말씀을 하셨다. 그게 며느리인 내 영어 공부에 큰 동력이 됐다.
생각해보면 남편을 따라 캐나다에 살고 있는 나도 시어머니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시아버지 성격을 똑 닮은 우리 남편도 남한테 일을 잘 못 맡기고 사사건건 본인이 다 직접 해야 하는 성격이다. 신혼 때부터 지금까지 나도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나 전구를 가는 일, 청소기 돌리는 일이나 자동차에 기름을 넣는 일을 스스로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남들은 그런 남편을 '애처가라고, 자상하다고, 많이 도와준다'고 말했고 나 또한 이런 사소하고 귀찮은 일들을 해 본 적 없는 나의 무능함을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결혼 10년 차 이민 생활에, 육아에, 사는 게 바쁘고 팍팍해지다 보니 본인도 자기가 다 하려니까 힘에 부치나 보더라. 이제는 '왜 너는 아직 이런 것도 못하냐'는 원망의 눈초리가 가끔 매섭다. 그러면 나는 '안 해 봤으니까, 당신이 못 하게 했으니까,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라고 비굴한 변명을 늘어놓을 뿐이다.
지난 며칠 동안 남편이 해외 출장으로 집을 비운 사이 안 하던 일들을 도맡아 하다 보니 묘한 성취감이 차올랐다. '맞아,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나도 할 수 있었는데, 아니 내가 더 잘 할 수도 있었는데' 하는 생각과 함께 자유 독립의 의지가 불타올랐다. 서툴러서, 잘 몰라서, 자신이 없어서 계속 안 하다 보면 결국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살게 된다. 실패할 수 있는 기회, 실패해도 계속 할 수 있는 기회, 그러면서 스스로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기회는 누군가에 의해 '허락'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쟁취'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이제 나는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진짜 능력치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안전하게 길들여지고 말 테니까. 그건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마치 우리 집 찬장 속의 프렌치 프레스처럼 말이다.
다음에 시어머니가 오시면 꼭 프렌치 프레스로 맛있는 커피를 대접해 볼 생각이다. 그깟 흙탕물 커피 좀 한 두번 마신다한들 뭐가 그리 두려운가. 언젠가 우리는 어쩌면, 하워드 슐츠가 말한 '인류에게 알려진 최상의 커피'를 즐겁게 맛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Jun 14,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