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캐나다는 이른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황사 먼지를 씻겨줄 반가운 봄비도 아니고, 아스팔트의 열기를 식혀줄 시원한 소낙비도 아니고, 그토록 높고 맑던 하늘을 무심하게 뒤덮은 채 속절없이 내리는 부슬비다. 또. 흔히 캐나다를 생각할 때 떠올리는 그 환상적인 날씨는 일 년 중 겨우 5월부터 8월까지이고 나머지는 거의 매일 이런 으슬으슬 시린 비가 내린다고 보면 된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전화할 때 오늘 날씨가 너어무 좋다고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그만큼 이 지긋지긋한 비로부터의 해방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비가 자주 와서 좋은 점 하나는 커피를 더 즐기게 되었다는 것인데, 한국에서 출근 직후나 점심 식사 후에 습관적으로 들이키던 커피와는 사뭇 다른 맛이다. 또 비가 내리는 아침을 시작하는 체념 한 모금이자 위로 한 모금. 그것은 무심한 빗소리와 어울려 오늘을 살아갈 용기를 준다.
오늘처럼 비 오는 날에는 내 인생 첫 커피를 생각한다. 요즘은 커피 종류도 워낙 많은데다, 거리마다 즐비한 커피 전문점에, 집집마다 커피 머신 한두 개 정도는 구비하고 있는 바야흐로 커피의 시대다. 우리 집만 해도 작년에 더 큰 용량으로 장만한 커피 브루잉 머신과 갈색 도자기 느낌의 핸드드립 브루어, 남편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에스프레소 머신, 형님네가 주신 콜드 브루 머신까지, 커피 관련 장비가 꽤 된다. 이런 풍요로운 커피의 시절 속에서도 절대 없으면 안 되는 커피가 하나 있다. 좀처럼 포기가 안 되고 가끔 미친 듯이 땡기는 내 피곤한 영혼의 동반자, 바로 '삼박자'다.
삼박자는 노란색 포장에 담긴 맥심 모카골드 커피믹스의 별칭인데 누가 언제부터 이렇게 불렀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내 추측으로는 '블랙커피', '설탕 한 스푼' 이런 식으로 커피를 타 마시던 시절에 커피, 프림, 설탕 세 가지가 들어간 커피라서 삼박자라고 불리지 않았을까 싶다. (잘 아시는 분은 제보를 부탁드립니다.) 어떤 이들은 삼박자를 다방 커피니 자판기 커피니 싸구려 커피라고 놀릴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그 어떤 커피 향보다 더 진하고 오래된 추억이 스며있다.
내 인생에서 처음 맛본 커피는 엄마가 남겨준 삼박자 한 모금이었다. 내가 어릴 때 엄마는 일주일에 한 번 우리 집에서 교회 구역모임을 했다. 구역모임이 있는 날이면 엄마는 늘 다과를 준비했는데 어떤 날은 떡, 어떤 날은 과일, 또 어떤 날은 롤케이크이었지만, 항상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삼박자였다. 초등학생이던 나는 엄마가 나를 위해 남겨주던 삼박자 한 모금을 맛보기 위해 방에서 구역모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어린이는 커피를 마시면 안 되었지만 커피 맛을 궁금해하는 나를 위해 엄마는 꼭 마지막 한 두 모금을 남겨줬다. 그때 맛본 커피 맛은 얼마나 아쉽고 달콤하던지, 꿈에 그리던 으른의 세계를 맛본 기분이었다. 교회 봉사를 열심히 하시던 엄마가 일이 끝나고 집사님들과 주방에서 삼박자를 나눠 마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때 그 시절 아메리카노가 있길 했나, 라떼가 있길 했나, 이름도 생소하던 시절이지만, 종이컵에 탄 삼박자 한 잔이면 시골 마을 교회 주방도 지금의 스타벅스 안 부러웠다.
어린 나에게 마지막 한두 모금만 허용했던 엄마의 커피 철학은 에이스 앞에서 무너졌다. 어린이가 커피를 마시는 것은 안 되지만 이상하게 에이스에 찍어먹는 것은 허용이 됐다. 학교가 끝난 후 오후 두세 시 무렵에 엄마랑 같이 삼박자에 찍어먹는 에이스의 맛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허나 에이스를 삼박자에 너무 오래 찍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자칫 욕심을 부리다가는 에이스 덩어리가 삼박자에 홀랑 빠져 같이 먹는 사람에게 크큰 민폐를 끼치게 되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혼자 서울에 올라와 자취하던 시절에는 동네 슈퍼에서 유통기한이 얼마 안 남은 에이스를 두 개씩 묶어 천 원인가 이천 원인가에 팔았다. 그러면 나는 어김없이 에이스를 쟁여놓고 심심한 날, 우울한 날 혼자 자취방에서 삼박자에 에이스를 찍어먹었다. 엄마랑 같이 먹던 그 때 그 시절을 추억하면서. 어떤 날은 든든한 한 끼가 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외로움을 달래는 안주로 삼아가면서.
그 시절 삼박자는 동네 어디에나 있었다. 부동산이나 미용실에 가면 정수기 옆에 꼭 삼박자가 한 움큼씩 구비되어 있었다. 요즘은 커피 한잔 가격도 만만치 않지만 그 시절 삼박자는 누구나 부담 없이 권하고 얻어 마실 수 있는 넉넉한 인심 같은 거였다. 감히 초코파이의 계보를 잇는 한국인의 정에 비할 수 있으리라. 미용실에서 파마를 말면서, 부동산에서 상담하면서 마시는 삼박자는 없으면 괜히 아쉽고 함께 하면 묘한 연대감 같은 것도 느껴지게 만드는 마법같은 음료였다.
스타벅스나 커피빈 같은 커피 전문점이 한창 붐이 일기 시작하던 대학생 때는 한 때 삼박자를 외면하던 시절도 있었다. 작은 종이컵에 타 먹던 달달한 커피의 추억은 그란데니 벤티니 하는 대용량 컵에 내려주는 지독히 쓴 커피에 밀려 촌스러운 기억으로 잊혀 갔다. 가끔 동아리방에 삼박자가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잘 나가는 서울의 대학생들은 쓰디쓴 아메리카노 정도는 마셔줘야 하는 거였다. 시간이 흘러 직장인이 되었을 때 상무님 책상에서 삼박자를 다시 만났다. 사무실 곳곳에는 언제나 삼박자가 구비되어 있었는데 특히 피곤한 날, 야근 당첨인 날에는 역시 삼박자 만한 것이 없었다. 난생 처음 엄마가 되어서도 삼박자는 생명수 같은 육아템이었다. 밤잠을 설친 갓난아기 엄마에게 삼박자 한 잔이면 정신이 번뜩 나고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활력이 (잠깐이지만) 솟아났다.
요즘 삼박자는 높은 설탕 함량 탓에 뱃살의 주범으로 찍힌 것 같다. 한 때 설탕 조절 기능을 더해 광고를 한 적도 있지만 삼박자는 뭐니 뭐니 해도 달아야 삼박자다. 그동안 스타벅스니 코피루왁이니 네스프레소니 베트남 커피니 이것저것 많이도 먹어봤지만, 피곤하고 당 땡길 때 마시는 삼박자를 대적할 상대는 아직 못 만났다. 삼박자에는 높은 설탕 함량 말고도, 어언 20년 가까이 된 내 커피 인생에서 대체될 수 없는 추억의 맛이 녹아있기 때문일 거다.
앞으로 더 비싸고 건강하고 고급스러운 커피가 나타난다 해도 삼박자를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코.
맛이란 그런 것이다. 추억이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