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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벤더핑크 Oct 21. 2021

찐모녀의 제주도 오케스트라 여행

[전주곡] 제주 교향곡의 서막

     코로나 뿐 아니라 예전 같지 않은 몸 상태로 휴직기간 해외여행의 한을 풀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쉬워 남은 기간 제주도 여행을 한차례 더 기획 중이었다. 사람들이 한산하고 비용이 비교적 저렴하며 휴직의 여유를 한껏 느낄 수 있는 평일 여행을 떠나고 싶었으나 친구들은 다들 일하고 언니는 세 조카만으로도 분주해서 평일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을 찾기란 하늘에 별따기였다. 제주도는 렌터카가 필수라 혼행은 비용상 효율적이지 않다는 생각에 같이 갈 일행으로 전부터 생각하던 모녀 여행지였던 제주도에 엄마가 먼저 떠올랐다.

 

  

  내가 회사에 휴직서를 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목이 아프다던 엄마가 별생각 없이 찾은 이비인후과에서, 더 큰 병원을 권해 종합병원을 가보니 다시금 상급병원을 권한다. 마음속으로 설마 아닐 거야란 부정을 가볍게 뒤집어엎기라도 한 듯한 청천벽력 같았던 혈액암 판정. 그렇게 추석 연휴 엄마 인생 처음으로 차례상 휴가를 내며 편도에 생긴 혹 제거 수술을 했다. 남동생과 내가 치러할 차례상 걱정에 수술에서 깨어나서도 준비해야 할 목록을 적어 주시며 차례걱정만 하던 엄마는 다행히 암 초기 발견이었으나 혈액암의 재발이 잦은 특성상 5년은 추적검사를 계속해야 되며 독한 항암치료로 인해 몸이 많이 상한 상태시다. 암에 대해 주변에 알아보니, 암이 완치된 사람들의 공통점은 맑은 공기, 식단관리, 휴식이었다. 그래서 휴직 초반 남동생이 마침 나도 휴직이니 휴직 중에 제주도 여행을 한번 가보자 얘기가 나왔던 차였다. 사실 남동생과 엄마와는 이미 나트랑 여행을 한차례 해본 여행 메이트이다.

나트랑 여행시 머드 온천 및 미네랄 온천

    당시 나트랑 여행을 떠났던 원동력은 아빠와 생전 한 번도 가족 해외여행을 같이 가보지 못했던 아쉬움이었다. 아빠는 심근경색이셨다. 아직 같이 보낼 시간이 많이 남은 줄로만 알고, 항상 바쁘다는 핑계로 다음에 좀 더 여유가 생기면 해보리라 미룬 탓에 많은 것을 같이 해보지 못했고 좋은 것을 많이 해드리지 못했던 예상치 못했던 빠른 이별에 대한 후회였다. 아빠 장례식에 오셨던 회사에서 만나면 오며가며 인사 정도만 하고 말도 몇 마디 많이 나눠보지 못했던 다른 부서에서의 차장님께서 아버지께 못했던 효도는 어머니께 해드리면 된다는 그 말 한 마디가 마음을 크게 어루만져 주었다. 또, 본인도 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내는 같은 아픔을 겪었다는 한마디도 큰 위로가 되었다. 크게 수려한 말이 아니더라도 내 상황을 충분히 진심으로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슬픔이 반으로 나눠질 수 있음을 그때 알게 되었다. 공감이란 이렇게 해야 된다는 것을. 그렇지만 엄마께 잘해드려야지 하는 결심도 잠시 뿐, 시간이 흘러 어느덧 일상이 찾아오자 엄마와 다른 라이프 스타일과 가치관에 불만이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올 때마다 나는 아빠의 장례식을 다시금 떠올리며 하루에도 여러 차례 꽤 여러번 결심을 다잡아야만 했다.

나트랑 여행에서의 맛있었던 음식

   그 뒤로, 다음은 없다는 일념으로 당시 TV에서 한창 핫하던 베트남 여행을 기획했다. 하지만, 엄마만 모시고 떠나기에는 방향치이던 내가 나 홀로 헤매는 것은 괜찮지만 나름 첫 가족 해외여행인데 엄마까지 덩달아 헤매 고생이 될까 급 자신이 사라진 나는 비행기와 숙소 비용은 내가 대겠다는 솔깃한 한 마디로 남동생까지 영입한다. 덕분에 만족스럽게 보내고 돌아왔지만, 베트남이더라도 관광지라 한국 물가 못지 않던 나트랑에서 매끼 배 터지게 먹은 풍족한 식사와 디저트, 매일 머드 온천으로 즐긴 힐링에 대한 대가와 자발적인 경제적 부담의 비율로 유럽행 비용에 못지 않았던 다음 달 카드 내역서를 보고 잠시 내가 왜 그랬을까 생각이 스친 적도 있었다. 후에 코로나와 엄마의 발병이 터지자, 건강할 때 기회가 주어졌을 때 적절히 다녀온 것을 내심 무척 잘한 일이라 자부하던 터였다. 엄마는 아빠가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 사원에 가서 너무 좋다며 다음에 우리들 모두 데려오자며 좋아하시던 부부동반 해외여행 며칠 뒤 쓰러지셨다는 안타까운 얘기도 여행지에서 들려주셨다. 그래서 인생에서 다음이란 결코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기회가 주어진 지금 떠나야 한다.

나트랑 여행에서의 맛있는 디저트와 머드 온천 수영장

   그렇게 우연히 같은 시기 병가로 인생 휴직 중이던 모녀는 기회가 주어진 지금 함께 제주도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울릉도 및 경북 여행을 다녀와 내내 시체처럼 쓰러져 있다보니 검색과 준비할 시간이 많이 없어 치료 받으러 간 병원의 제주도민 물리치료사 선생님께서 넘겨 주신 지도 하나만 믿고 별다른 검색도 많이 해보지 못했다. 숙소도 3일 차까지만 결재해 둔 채, 그렇게 미완성으로 그려진 악보를 들고, 콘트라베이스 같은 중후한 음색을 내는 엄마와 가늘면서 예리한 E현에서 부드러운 A현을 거쳐 다소 거친 G현까지 음색을 지닌 나, 이런 모녀 둘 만의 교향곡 오케스트라 향연을 위한 여정으로 제주도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제주도민 물리치료쌤의 따스한 마음이 느껴지는 직접 그린 지도. 워낙 손님들이 많이 물어보셔서 아예 지도로 그려두었다고 한다. 제주도 여행을 간다니 선뜻 내밀어 주신 지도.




    비가 와도 좋다는 제주도라는 말에 용기를 얻어 일기예보의 흐린 구름과 비 표시 따위는 그저 무시한 채 항공권 예약을 해버렸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도 비가 올 줄 알았더니 새벽에 이미 한차례 내려진 비 덕에 공항으로 가는 길은 비 대신 시원한 청량감이 내려와 있었다. 오랜만에 꺼내 든 캐리어를 끌고 택시 차장 밖으로 오랜만에 만나보는 공항의 모습이 오랜 친구를 만나듯 익숙하면서도 그저 반갑기만 하다.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익숙한 선의 오랜지기 공항을 바라보며, 울릉도 여행은 알레그로(Allegro, 빠르고 경쾌하게)였고, 대구 혼행일 때 안단테(Andante, 걸음걸이 정도 빠르기로 천천히)의 속도였다면, 나보다 더 환자인 엄마와의 여행은 아다지오(Adagio, 느리게)쯤 되리라 살포시 예상해 본다.  


   본디 알레그로(Allegro, 빠르고 경쾌하게)의 속도를 가지고 있던 내가 렌토(Lento, 느리고 무겁게)의 속도인 엄마와 만나면, 높은 음자리표가 마구 발산된다. 중간쯤 모데라토(Moderato, 보통 빠르기로), 못해도 아다지오(Adagio, 느리게)에서 쇼부를 봐야겠다 생각했지만, 운전과 각종 검색의 독박을 쓰다 보니 그만 나의 메트로놈은 그만 고장이 나버렸다.


    어릴 적 열병을 앓고 난 뒤 난청이 생긴 엄마는 보청기를 해도 잘 알아듣지 못한다. 항암치료 후 증상은 더해져서 내 가늘고 작은 목소리로는 잘 들리지 않아 하셔서 목에 핏대를 세우거나 단전에 힘을 가득 실은 발성에서야 말귀를 겨우 알아들으신다. 본디 단조로움을 싫어해 같은 말 반복하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나는 엄마와의 대화에서 무한 도돌이표를 반복해야 할 때면, 나의 연주는 포르테가 될 수밖에 없다. 큰 소리로 얘기해야 알아들으시므로 가뜩이나 싸우는 것 같은 오르내림이 격한 경상도 억양에 목소리까지 한 차례 올리면 마치 화나거나 히스테릭한 말투가 되어버려 모녀간의 우아하고 오붓한 대화는 좀처럼 기대할 수 없다. 평소 내지 않던 큰 소리 화법을 계속하다 보면 목도 아프고, 한층 올라간 톤으로 말을 계속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가끔 진짜 화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따금 목이 아플 때면 끊어치기로 스타카토 화법을 발산한다.

 

   대개 3~4개의 커다란 악장으로 이루어지며 그 가운데 적어도 1악장 이상은 소나타 형식을 취하는 교향곡에 걸맞게 우리의 렌트 차량은 소나타 LPG이다. 소나타 차량 안에서 미리 준비해 온 감성 돋는 음악의 USB를 꽂아 들으며, 나는 스타카토와 도돌이표, 포르티시모, 높은 음자리표와 때때로 쉼표와 피아니시모, 낮은 음자리표를 오가는 넓고도 다양한 음역대의 변화무쌍한 제주도 여행 연주의 운전을 시작한다.


* 혹시 제주도에서 저희 모녀를 보셨다면, 저희 대화는 절대 화남이나 싸움 아님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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