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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벤더핑크 Oct 24. 2021

제주도 다섯째 날, 천국의 땅 우도

[5악장] 말러 교향곡 제4번 '천상의 삶'

  눈 떠보니 아침 6시다. 제주도 일출이 6시 반쯤인데, 바깥 풍경을 힐끔 보니 거리는 새벽 어스름에 붉은빛이 감 싸돌며, 위로 펼쳐진 맑은 하늘에 오늘은 일출이 제대로 보일 것 같았다. 성산 일출봉에서 5분 거리인 숙소를 잡았던 터라 세수만 하고 나와 다시 일출봉으로 향한다.

  태양의 부재로 고요한 연 보랏빛 하늘과 맞닿아 밤새 내려앉은 어둠으로 짙은 남색으로 변한 바다와의 경계가 어디라는 것을 햇님이 알려주기라도 하려는 듯, 실오라기 같던 붉은 실선이 점점 굵게 짙어지기 시작한다.

    '오늘의 주인공은 나, 내가 뽐낼 차례!'라고 얘기라도 하듯, 구름마저 물러 세우며 등장한 햇님의 동그란 실루엣이 도드라지기 시작한다.

랜선 일출, 소원을 말해봐!


  해가 떠오르자,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질 우도 가기 딱 알맞은 날씨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잔뜩 심술부리던 하늘이 오늘은 딱 예쁜 하늘빛 옷감에 눈부시게 반짝이는 햇빛 브로치에 하얀 구름 깃털로 포인트를 준 옷을 차려 입고 한껏 멋을 뽐낸다. 변덕스러운 날씨 덕에 제주도 일주하려던 완벽한 동선이 마구 꼬여 버려 서쪽 제주도는 포기해야 했지만, 오늘과 같은 날씨라면 왠지 용서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불협화음을 이루던 우리 모녀는 이제 몇차례 악기 조율이 끝내고 환상의 화모니를 연주한다.

맑은 하늘에 힘입어 오늘은 우도에서의 교향곡 연주이다.

   렌터카는 차량 승선이 금지시킨 것은 아니나 대부분 우도로 차를 들고 가는 것을 권하지는 않는다. 우도에서 차량에 사고나 문제가 생겼을 때, 보험 호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전기 오토바이 렌트도 많았지만, 엄마가 타기에는 불편할 것 같았고, 작은 섬이니 크게 사고가 날 것 같지 않아, 특별히 조심해서 운전해야지 싶어 차량을 승선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결심만 한다고 아무나 승선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임산부, 65세 이상 노약자, 장애인, 7세 미만 영유아, 업무용 차량, 우도에서 1박 이상의 숙박 등 일정 조건을 갖추어야 가능하다. 우도에서 숙박할 필요 없이 65세 이상의 조건을 갖춘 엄마와 함께라면 언제든지 차량 승선도 허용되니 좋았다.


  난 우도의 한산함이 첫눈에 마음에 들었다.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가보고 싶었던 서빈백사로 달려간다. '이게 바로 제주지'하고 뽐내는 듯한, 대조적인 색채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찰지게 어우러는 조화를 이루는 까만 현무암, 하얀 모래사장, 에메랄드 물빛, 금빛 물결과 푸른 잔디... 어디선가 밀려오는 진한 미역 내음까지도 사랑스러운 우도.

   지나가는 길 보고 차를 세운, 정말 내 마음을 콕 집어 대신 표현한 듯한 '오늘 우도 오길 잘했다.'라 쓰인 포토존과 전기 오토바이의 '우리는 지금 우도 힐링 중'이란 문구.

   반나절이면 돌아볼 수 있다는 작은 섬 우도에서 지나가는 길에 마음에 드는 곳이 나타나면 그냥 차를 세워야지 하는 마음으로 여유롭게 드라이브 중인데, 옆자리에 앉은 엄마가 우도 배편에서 들고 온 우도 8경 안내서를 보시더니, 8경 중 첫 번째 주간명월이 10시에서 11시 사이 임을 가리킨다. 그때가 9시 반쯤 되었던 것 같다.

   원래는 해변길을 따라 여유를 만끽하다 천천히 들르려던, 검멀레 해수욕장으로 혹시 몰라 육로로 가로지르며 서둘러 이동한다. 섬 반대편이라 한들 우도는 크지 않아서 10분 내외면 도착이 가능했다. 차를 주차를 하는 동안 엄마는 미리 내려 보트를 타는 곳을 먼저 발견해 이리로 가면 된다고 안내판 가리키며 서있다. 어제 한라봉 아이스크림부터 엄마의 여행력이 한껏 물이 오른 듯하다. 내려가 보니, 우리가 이번 타임의 첫 손님인 듯했다. 일찍 도착한 자의 특권으로, 첫 번째로 배에 올라타 어느 좌석이든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졌는데, 맨 앞자리는 혹시 물이 많이 튈까 건너뛰고 그래도 두 번째로 전망이 탁 트인 둘째 줄에 앉았다.

   보트 투어로 주간명월, 후해석벽, 동안경굴의 우도 8경을 한 번에 볼 수 있고, 마지막에 놀이 기구 타듯 배를 빙글빙글 돌리는데 재미있고 신이 나 다들 환호성을 지른다. 우도에서 보트 투어는 강추 코스 중 하나!

무지개와 여의주를 문 용이 보이시나요?

   10시와 11시 사이, 햇빛이 동굴 안으로 살포시 들어와 동굴 천장의 달 모양 바위를 비추면, 우도판 해를 품은 달이 된다.

영롱한 낮달, 주간명원의 자태. 동굴 안 한 줄기 빛이 비춰 달 모양의 둥근 바위를 비추니 마치 천국의 느낌!
우도의 해를 품은 달
동굴로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빛이 비치는 동굴을 바라보는 모습도 신비로웠다
보트투어가 거의 끝나고 선착장에 다다를 쯔음 크게 8자를 그리며 마지막 클라이막스쇼가 펼쳐진다.


   동굴 속에 뜬 달을 보셨냐는 질문에 신이나 크게 호응했더니, 딱 이 시간대에만 볼 수 있어 행운아만 볼 수 있는 거라며 가는 손님의 기분마저도 좋게 만드신다. 어제도 날씨가 좋았으나 파도가 세서 운행을 하지 않고 며칠 째 계속되는 비에 이번 주는 오늘이 처음 연 거란 말씀도 들었다.

그 말을 들으며 든 생각, 어제 오지 않고,

 

오늘 우도에 오길 참 잘했다.



  다음은 검멀레 해안에서 보이는 맞은편 쇠머리 오름 정상에서 우도 8경 중 하나 지두청사를 보기 위해 갔던 길을 되돌아간다.

  한참 펼쳐진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검붉은 암석, 푸른 바다, 아이보리빛 갈대와 초록빛 초원... 펼쳐진 절경이 아름답고, 깨끗한 공기에 기분이 상쾌하다. 나는 마지막 날, 폐에 우도의 맑은 공기라도 잔뜩 담아가기라도 하려는 듯 깊은 숨을 들이쉰다.

   말을 타고 달리는 여행객들도 꽤 많았는데, 한 명의 가이드가 같이 동행해 다른 말들을 이끌며 이리저리 말을 달리기도 걷기도 하며 여러 뷰를 보여주고 계신다. 검게 탄 피부에, 흩날리는 머릿결, "이랴핫!" 멀리서도 귀에 내리 꽂히는 우렁차고 호탕한 목소리에 쾌걸 조로가 떠오른다.

 "우도 와보신 적 있으세요?"

큰 우렁찬 외침에 손님도 홀린 듯 덩달아 확성기를 찬듯한 외치는 목소리로 우렁차게 대답한다, "아니요!"

우도의 쾌걸 조로가 말머리를 돌려 지두청사의 뷰를 보여주며 외친다,

"여기가 천국이야!"


    그리고 손님이 매번 바뀔 때마다 이 호탕한 목소리로 뮤지컬 대사와도 같은 이 멘트를 외치는데, 이 길을 따라 오르며 이런 대화들을 도돌이표처럼 계속 듣게 된다. 그러나 자칫 호탕한 이 풍경에 사로잡혀, 오르면서 한눈팔다 밟을 수 있는 말똥 주의! 말을 타고 오르면 다리가 좀 더 편할 것 같고, 제주도에서 유명한 말도 타보아 제주도의 감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듯해 좋아 보였다.

옆길로 걸어 우도 등대 공원도 구경한다.

멀리 8자를 그리며 돌고 있는 검머레 동굴 보트도 보인다


  점심으로 들른 핫플 돈가스. 유명 맛집의 명성답게 바깥 좌석은 대기가 길고, 옆자리에서는 오백 만뷰를 찍었다는 유튜브의 대화 소리도 들려온다. 바다 풍경 한 모금, 바싹한 돈가스 한 입으로 어느새 접시의 바닥을 비워낸다. 앉은 자리 앞 도로에는 관광객들의 전기 오토바이 행렬이 줄을 잇는데, 우리는 오토바이를, 오토바이에 탄 사람들은 맛집을 바라보며 서로가 서로를 구경하듯 지나간다.

눈으로 먹어도 배부른 듯한 비주얼의 돈가츠와 우도 명물 땅콩 아이스크림. 개인적 취향으로는 땅콩 아이스크림은 땅콩 토핑이, 아이스크림은 천혜향 아이스크림이 더 상큼하니 맛있었다.


제주도처럼 밭도 바다의 바위도 온통 검정이던 우도

    소박한 크기의 우도에 꽉 찬 코스의 유명한 곳을 제법 많이 둘러보았지만, 선착장으로 가야 할 시간까지 아직 여유시간이 좀 남아 이 마저도 아까운 마음에 급하게 검색으로 가본 우도 정원. 사실 이미 예쁜 핑크 뮬리를 많이 봐서 큰 감흥을 덜 했지만 우도 정원의 명물은 야자수였다. 서쪽 제주도의 야자수를 보지 못한 아쉬움을 우도 정원에서 달래고 왔다. 덩치 큰 야자수 길에 들어서면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고 무엇보다 여름철 같은 날씨에 시원해서 좋았다.


   앞서가는 모녀 일행이 사진을 찍어 주며 '우아 예쁘다'란 소녀 감성 톤을 발산하는 어머니가 부럽기도 했는데, "엄마, 이게 머야? 하트 포즈 한 거 하나도 안 나왔잖아." 하고 곧바로 투덜대는 딸의 찐 모녀 대화에서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진다. 오늘 점심때 식당에서도 대기 순서를 특이하게 옷차림이나 손님의 특징으로 메모해 두셨는데 바로 앞 팀의 특징은 바로 "모녀"였다. 평탄하면서도 예쁜 여행 코스를 가진 제주도는 확실히 모녀 단위로도 많이 찾는 것 같았고, 아름다운 우도에서 유독 더 눈에 띄었다. 모녀 여행지의 천국, 우도!

우도에서 제주도로 넘어오는 배편에서의 풍경

아름다웠던 우도의 풍경은 흡사 천상의 삶과 같았다.

한 달 살기를 해도 좋을 것 같았던 우도의 천국과도 같은 여행!


말러 교향곡 4번 천상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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