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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벤더핑크 Sep 28. 2021

윈드서핑에서 인생을 배우다.

인생책자, 윈드서핑지침서

   윈드서핑은 서핑과 함께 나의 버킷리스트 아이템이었다. 불행히도 교통사고 이후 덩달아 나의 버킷 도전도 중단되어 버렸다. 휴직의 끝자락이 다가오자 마치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처럼 다급한 마음이 앞선 나는, 일어서는 동작을 빠르게 해야 하는 서핑은 자신이 없었지만, 보기에는 세일이 있어 스피드가 있어 보일 뿐 서핑과 달리 내 몸 자체를 바쁘게 움직일 필요는 없을 것 같은 윈드서핑을 한번 도전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설령 몸살이 나더라도, 아파서 일주일씩 앓아누울 수 있는 것도 휴직기가 아니면 하기 힘들 것이고, 내 몸이 회복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갑자기 내 인생에 결혼, 육아가 훅 들어온다면 이제 영영 나의 버킷 리스트는 물 건너 가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마치 불나방이 된 것처럼 타들어 갈 것을 알면서도 나는 바다로 뛰어들었다.

 

   오전은 이론 교육과 지상 훈련이다. 윈드 서핑 장비의 기본 명칭을 알고 있어야 강사님이 '붐을 올리세요, 마스트를 잡으세요. ' 하는 즉각적인 지시라도 알아들을 수 있다. 복잡하게 많이 알 필요는 없고, 필수적으로 알고 있어야 할 붐, 마스트, 업 홀라인 등 몇 가지 용어만 알고 있으면 교육하는데 큰 무리는 없어서 알려주신 대로 기본적인 용어만 적어보았다. 윈드 서핑하면 가장 먼저 떠오를 날개처럼 생긴 부분은 세일이라 칭하는데, 우리가 탔던 초보 장비는 세일의 높이가 4.5밖에 안돼 작지만, 고급자들은 7 등으로 세일의 크기도 크고 더 빠르다고 한다. 


   이론 교육이 끝나자 바다와 맞닿은 데크에서 윈드서핑 보드를 가지고 지상훈련에 돌입한다. 저질 체력답게 장비 세팅에서 이미 힘을 다 소진해버려 지상훈련을 하는 둥 쉬는 둥 했지만, 한편으로 실내인 교육장에서 벗어나 바다에 가깝게 나오자 곧 다가올 시간에 대해 비로소 실감이 나면서, 내심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그리고 마침내 오후가 되자, 기다렸던 우리들은 떨리는 마음으로 보드 위로 올라섰다.


   도전 첫날 과연 일어설 수 있을까란 우리의 우려와 달리 단번에 서기에 성공했고, 내친김에 턴까지 성공했다. 강사분이 처음 탄 거 맞냐 물으시며, 자세가 좋다는 칭찬에 '역시 난 해양 스포츠와 잘 맞아'하고 나의 선택에 으쓱했다. 맑았던 날씨만큼이나 내 기분도 내내 화창했다.




    병원 치료 시에 물리치료사님께서 허리 근육이 있는 사람은 근육이 허리를 지탱해주기에 디스크가 심해도 별 통증을 못 느끼는 반면 근육이 없으면 조그마한 디스크도 심한 통증을 느낄 수 있어 사람들은 저마다 디스크가 있더라도 엑스레이 사진 상의 심한 정도보다 오히려 개인 근육량에 따라 통증은 천차만별로 다르게 느낀다고 한다. 그런데, 만져보시더니 나는 근육이 아예 없다고 말씀하신다. 가뜩이나 없던 근육이 사고 후 운동을 못하고 누워만 지냈더니 그마저도 사라졌는지 나의 근육량 제로인 상태를 겸허히 받아들여, 이제 덜 아프기 위해 허리 근육을 운동을 통해 키워야겠다고 다짐하던 터였다. 


   윈드서핑을 시도하기 전, 이런 근육 거지 내가 세일을 들고 있는 것조차 버겁고 근력을 많이 요할까 내심 걱정 되었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였는지 막상 요령을 터득해 무게 중심만 잘 잡으니, 생각보다 무겁다거나 힘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또, 스노보드 웨이크보드, 패들 보드, 서핑과 균형 잡는 요령은 비슷해 패들 요가와 달리 이번에는 물에 빠지지 조차 않았다. 


    초보들이 잔뜩 긴장한 채 온몸에 힘을 주게 되면 세일을 버티기에도 버겁고 다음날 근육통에 시달릴 것 같은데, 오히려 긴장과 몸에 힘을 풀고 무게 중심을 한층 뒤로 두고 편안하게 자신을 내려 놓으면 팔이 아닌 몸 전체로 세일을 받치는 느낌이라 팔이나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가지도 않고 넘어지지 않았다. 코어에만 힘을 주면 균형도 쉽게 잡히고 허리 근육 키우는데도 좋을 것 같다. 실제로도 윈드서핑은 몸의 균형감각을 길러주고, 균형은 팔, 다리, 허리의 힘으로 조절하기에 근력도 기를 수 있는 좋은 운동이라고 한다. 윈드서핑은 내게 가장 부족한 근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신체적인 측면뿐 아니라, 작용원리를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인생의 원리를 깨치게 해 주었던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좋은 가르침을 준 운동이었다.




   그날은 잔잔한 바람 덕에 초보들이 넘어지지 않고 보드 위에 서기는 좋은 날이었으나, 막상 서기에 성공하고 나니 간사한 사람의 마음이란 오히려 바람이 좀 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좀 불어와야 바람을 타고 앞으로 나아가며 윈드서핑을 즐길 수 있고, 9월 말이지만 아직 여름 볕처럼 뜨거운 두시 햇살을 한층 누그러뜨리는 시원한 바람으로 나의 얼굴과 세일을 적시며 속도감을 붙여줘 한층 흥이 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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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도 윈드서핑과 같다. 


   온몸에 잔뜩 힘을 주고 버티면 보드 위에 서있을 순 있지만 얼마 안 가 혹은 다음날 근육통으로 앓아누워야 한다. 하지만 긴장과 몸에 힘을 풀고 뒤로 한층 물러나 세일과 반대방향으로 편안히 바람에 몸을 맡기면 오랫동안 있어도 힘이 들지 않고 앞으로 잘 나아갈 수 있다. 바람이 만약 인생의 시련이라면, 시련의 시기가 찾아왔을 때, 잔뜩 온몸에 힘을 주고 버티어 보았자, 오히려 빨리 녹초가 되는 지름길을 스스로 자초할 뿐이다. 그러나 적당히 힘을 줘야 할 곳, 코어에만 집중해서 힘을 주고 무게 중심을 잘 잡기만 하면, 다른 곳은 몸에 힘을 풀더라도 세일을 잡은 동작이 오히려 힘이 들지 않고, 오랫동안 버틸 수 있으며, 바람을 받은 세일의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며 시원하게 윈드서핑을 즐길 수 있다.


 불어오는 바람은 우리 인생에서 시련과도 같다


   강풍은 우리를 주저앉히지만, 반대로 적당한 시련은 우리를 나아가게 만든다. 바람이 없는 세일을 억지로 붙잡고 있기란 그 자체만으로도 힘도 많이 들고, 동력이 될 만한 받혀 주는 힘이 없으니, 제자리에서 나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방향을 돌려 턴을 하기도 힘들다. 그렇기에 적당한 바람에 편승해야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적당한 시련이 없으면 오히려 인생은 발전이 없고, 평온한 일상도 그저 무감각하기만 했을 것이다. 적당한 시련은 이렇듯 우리를 성장시키고 인생을 보다 감사하고 즐길 수 있도록 만든다. 

 

   또시시때때로 변화하는 바람을 느끼고 읽어야 한다. 난 윈드서핑에서 이 부분이 제일 익숙지 않아 고전해야 했다. 인생에서의 시련도 방향성이란 것이 있다. 시련이 불어닥치는 방향은 시시각각 변한다. 이 방향성을 제대로 읽어야 우리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우리의 삶을 이끌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윈드서핑을 잘하려면 몸에 긴장을 풀고 바람의 방향을 잘 읽어 불어오는 바람에 편승해야 한다. 바람이 다가오면 방향을 잘 읽어 적당한 각도로 바람에 올라타야 하는 것이다. 이론 강의에서 배우기로, 거의 모든 각도로 바람을 탈 수 있지만 유일하게 세일링이 힘든 구간은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마주 보며 향하는 No go zone (Dead zone)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정면으로 맞서는 각도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조차 없다. 따라서 무작정 바람에 대항하기보다 대각선 혹은 옆으로 바람을 타면서 나아갈 수 있는 요령이 필요하다. 우리네 인생의 시련이 찾아오는 순간도 무작정 거세게 맞서고 저항하기보다, 요령 있게 적당한 각도를 잘 찾아 바람을 이용해 앞으로 나아가는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윈드서핑뿐 아니라 인생의 요령을 배운 값진 시간이었다.


윈드서핑에는 우리네 인생이 깃들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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