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와 명상으로서의 ‘요가 그리고 산책’
아침 7시 30분.
평일 같으면 벌써 사무실에 출근해서 이메일을 체크하고 있을 시간이지만, 일요일의 특권으로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을 시작한다.
발가락을 꼬물꼬물, 손가락을 꼼지락꼼지락. 목도 좌우로 살살 움직여보면서 몸을 깨워낸다.
새로 마련한 요가 매트를 거실에 펼쳐놓고 부진 선생님의 유튜브 영상을 따라 모닝 요가를 시작한다.
많은 동작(Asana)을 하지 않았는데도 몸이 슬슬 풀린다. 뭉쳐있던 어깨와 목, 허벅지 앞쪽 근육과 옆구리가 부드러워진다. 막 피어나는 꽃 한 송이가 된 느낌이랄까? ㅎㅎ
조급함으로 내달리는 마음에게도 반 박자 템포의 여유를 선사한다. 불안함에서 시작되는 조급한 마음에 깊은 호흡을 보내준다.
이 상쾌함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에, 양말을 신고 신발끈을 조인다. 집 앞 공원 산책로를 따라 한걸음 한걸음 발을 내딛는다.
오랫동안 세워둔 자동차는 어딘가 고장이 날 가능성이 크다. 윤활 계통에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엔진이나 변속기 같은 파워트레인 계열 부품에서 말썽이 일어나기도 한다.
마치 자동차처럼 몸도 가만히 두면 안된다. 부지런히 써야 탈이 없다. 최근 몇 년 간 내 몸을 적극적으로 다뤄오면서 관찰한 결과다.
공원 산책로를 따라 한 바퀴, 두 바퀴.. 여덟 바퀴를 돌았더니 발목이 유연하게 풀리고 기분도 상쾌해지고 이 시간을 온전히 누리고 있다는 행복감이 올라온다.
지난 목요일에 온라인으로 들었던 세미나 강연이 생각난다.
인간은 이동하도록, 달리도록 변화해왔다. 한편, 게으름을 더 피울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해왔다.
(진화론을 믿지 않는 터라, 진화심리학자 교수님이 표현하신 ‘진화’를 ‘변화’로 바꾸어봤다. ^^)
수렵 채집 생활에서 먹이를 찾아 이동하고 먹잇감을 발견하면 ‘지구력 달리기 (endurance running)’을 통해 사냥을 했던 인류.
요즘 표현으로 바꾸면 ‘일로서의 이동, 일로서의 걷기와 달리기’를 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던 인류가 도구를 발명하고 기술을 발전시키면서 좀 더 편하게, 좀 더 쉬는 방향을 선호하면서 ‘일로서의 이동’을 지양하게 된다.
반면, ‘놀이로서의 이동, 즐거움으로서의 걷기와 달리기’를 경험하면서 현대사회에서 걷기와 달리기는 유희 활동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된다.
내가 즐겨하는 ‘산책’ 역시 그러한 맥락의 유희이자 명상이다.
한 때 심한 발목 부상으로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했을 때 그 답답함은 몸에서 마음으로 이어졌다. 회복기에 접어들어, 요가와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오늘의 내가 좋다.
난 호모 루덴스이자, 호모 메디테이션(Meditation) 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