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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sh 직장인 Jun 07. 2022

도둑맞은 ‘아싸’

'아싸'마저 도둑 맞아버린 시대...

 


 ‘아싸’라는 단어는 내가 학교에 들어왔을 때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표현이었다. 그래서 주변의 ‘아싸’였던 사람들은 “아... 아싸말고 나도 인싸하고 싶다.”라는 말을 자주 했고, 그 말을 자주 듣게 됐다.(물론 이때도 자발적 아싸는 있었음.)그런데 군대를 다녀오고 어느 순간부터 ‘아싸’가 아닌 사람들이 “저 아싸에요!”라는 발언을 일삼고 있었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20번 이상 고백을 받고, 연애를 7번 한 여성’, ‘고백을 10번 이상 받고, 연애를 5번 한 남성’ 두 명이 자신들을 ‘아싸’라고 말했다.

 이 짤을 보고 분통이 터졌다. 물론 기존의 ‘아싸’는 훈장과 같은 ‘칭호’가 아니다. 자랑거리도 아니었고, 누구나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인데 누가 미쳤다고 사람도 잘 못 만나고 외로워하는 삶을 사는 ‘아싸’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겠는가?

 정말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해도 만나지 못하는 ‘아싸’들은 존재하는데, ‘20번 이상 고백을 받고, 연애를 7번 한 여성’, ‘고백을 10번 이상 받고, 연애를 5번 한 남성’이 자신을 ‘아싸’라고 명명했다.

 그 두 명이 자신을 ‘아싸’라고 명명했을 때 내가 알고 있는 ‘아싸’는 이상한 것이 됐다. ‘인싸’들은 보통 인간관계가 좋고, 연애도 잘하고, 대개는 성적도 좋기에 ‘아싸’를 생각조차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오산이었다. 그들은 ‘아싸’까지 탐내고 있었다.

 박완서 작가의 <도둑맞은 가난>과 ‘도둑맞은 아싸’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작품 내용은 여자 주인공이 자신의 남자친구와 사귀면서 일어나는 줄거리를 주로 쓴 단편소설이다.

 그녀는 남자친구도 자신처럼 가난할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남자친구는 부잣집 대학생 아들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빈민촌에 보내 가난을 경험시킨 것일 뿐이었다. 그리고 여주인공은 “이제 부자들이 가난마저 훔쳐 간다.”라고 울부짖으며 소설을 끝난다.

 최근 ‘인싸’가 ‘아싸’를 빼앗은 행위 또한 <도둑맞은 가난>과 별반 다른 것이 없다. ‘인싸’들이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싸’까지 훔쳐 가려고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아싸’를 빼앗으려는 이유는, ‘인싸’들에게 ‘아싸’는 ‘“유희적인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이다. ‘인싸’들은 단순히 재미있어 보였고, 뭔가 좀 특별해 보이는 ‘호칭’을 갖고 싶었기에 자신들을 ‘아싸’라고 명명한 것이다.

 원래 ‘아싸’는 벗어나고 싶은 의미가 담긴 단어다. 그들은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or 만날 수 없고, 혼자 있는 생활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존재다. 그래서 아픔의 ‘단어’다. 하지만 ‘인싸’들에게 ‘아싸’는 그저 ‘호칭’일 뿐이었다. 그들이 단순히 ‘호칭’으로만 생각했기에 ‘아싸’를 도둑질 한 것이다.

 부자들이 가난을 도둑질하는 것은 어릴 때부터 봐서 이해했다. (물론 그 행위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파렴치하다.)하지만 ‘인싸’들이 ‘아싸’를 훔치려고 하는 행위는 섬뜩하게 느껴졌다. 남들이 부러울 것을 다 사람들이 ‘유희적인 의미’에서 아래 차원의 것들을 탐한다는 사실이 섬뜩했다. 그것들을 탐하고 훔쳐지게 되는 순간 ‘아싸’는 더 이상 ‘아픔의 단어’가 아니라 ‘호칭’이 된다.

 ‘아픔의 단어’가 ‘호칭’이 되는 순간 ‘가난’은 우리가 아는 가난이 안 될 것이며, ‘아싸’는 우리가 아는 아싸가 아닌 누군가가 자신을 뽐내기 위한 수단밖에 안 될 것이다.


※ 한줄 요약 : 나도 인싸하고 싶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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