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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승 Dec 09. 2020

말, 말, 말, 말.

하고 싶은 말, 해도 되는 말, 할 수 있는 말, 해야만 하는 말.

 기쁘고 감격스러울 때, 하지만 역시 분하거나, 억울하거나, 슬프거나, 우울하거나, 외로울 때, 그런 순간일 때. 할 말이 너무도 많은 탓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할 때가 있다. 어떤 말이라도 토해내야 할 순간에 정작 헛구역질처럼 올라오는 것은 깊고 뭉툭한 한숨 뿐이다. 트림처럼 개운하지도, 하물며 딸꾹질처럼 신경질적이지도 않은 그 뭉툭한 것은 뱉고, 뱉고, 또 뱉고, 또 뱉어낼 수록 후련해지기는 커녕 체증처럼 되려 속에 쌓여만 간다. 폐부를 압박하는 그 깊은 숨에 곧 질식되어 스러질 것만 같다. 숨통을 좀 틀까 싶어 사람을 만나도, 내가 하고 싶은 말과 상대에게 해도 되는 말, 그 간극 사이에 서서 남몰래 줄타기를 한다. 상대가 듣고 싶어하지 않을 수도 있고, 엉클고 어그러진 이 심정을 적절한 단어와 문장으로 정연하게 풀어낼 재간도 없다. 언변이 미천해 차마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면, 그것은 아직 내게 안착하지 못한 것이기에 꼭 해야만 하는 말이 아닐 수도 있다. 하물며 그런 수고를 들여봤자 돌아오는 것은 뻔한 애잔함과 뻔한 측은함, 뻔뻔하게 담담한 척하는 내 모습과 뻔한 소주 한 잔뿐이다. 소설 <설국>의 주인공 시마무라의 말처럼, 모든 게 다 헛수고, 한바탕 거대한 헛수고다. 결국 아무 말도 내뱉지 못하고, 취기만을 몸에 동동 두른 채 무력히 집으로 돌아갈 뿐이다. 길거리를 비틀비틀, 어설프게 걸어가며 생각한다. 생각이 너무도 많은 탓에 어떤 생각도 할 수가 없고, 할 말이 너무도 많은 탓에 어떤 말도 할 수가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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