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인 듯 내 집 아닌 내 집 같은 집

by 고쳐 쓰는 이작가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큰 병 없이 자랐고, 좋아하던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여기까지 왔다.

그래서 첫 집을 사는 과정에서도, 운이 따라주길 은근히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해외에 있어 영사관 위임장을 받아야 한다던 집주인이 생각보다 더 빨리 들어오게 됐다는 소식에, 이번에도 내 운이 작용한 거란 생각을 했다. 집주인 얼굴도 못 보고 계약서를 써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천만다행이었다. 집주인이 입국할 때까지 일주일 남짓. 시세보다 너무 저렴하게 구한 탓에 집주인이 계약을 파기하면 어쩌나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바뀐 부동산 대책도 불안감을 키웠다. 기존에는 계약서를 쓰기 전에 집주인 명의의 계좌로 가계약금을 보내는 게 관례였다. 계약 의사를 확실하게 하는 용도로, 이 집에 미리 침을 발라 뒀다는 ‘찜’의 표시이기도 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의 거래는 허가를 받기 전까지 무효했다. 집을 사는 우리나 집을 파는 집주인의 의사보다 관할 관청의 허가가 먼저였다.


다행인 건 집주인이 변심하지 않았다는 거였다. 그는 아이들 교육을 위해 집을 팔고 강남으로 이사를 갈 계획이라고 했다. 부럽다는 우리의 말에 집주인은 손사래를 치며 월세를 구할 거라고 했다. 집이 있어도, 집이 없어도 저마다의 사정으로 팍팍한 건 매한가지였다.


계약서 대신 매매약정서를 쓰고 집값은 어떻게 충당할 건지 조달계획서도 냈다. 소득금액증명서와 은행의 잔액증명서도 필요했다. 필요한 서류가 많은 만큼 처리 시간도 오래 걸렸다. 허가를 신청하면 15일. 주말을 포함하면 늦어도 20일 안에는 결과를 받아볼 수 있을 거라 했다. 또다시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매매가는 11억 7천만 원. 큰 금액이었지만 남편과 미리 상의한 12억 원의 상한선 안에 들어오는 금액이었다. 자금조달계획서에는 은행의 예금액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부족한 금액은 대출로 채우겠다고 써냈다.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거나 신용대출 한번 받지 않았기에 대출을 받는데 큰 문제는 없을 터였다. 집을 사는 목적 역시 실거주였기에 무난하게 허가가 나리라 생각했다.


이성적인 분석과 달리 감정은 매일, 매 시간 널뛰었다. 양가 부모님도, 형제들도 제 일처럼 걱정하고 있었는데, 집을 계약했다고도, 그렇다고 안 했다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내 집인 듯 내 집 아닌 내 집 같은 기분. 불안감에 남편과 번갈아 악몽을 꾸기도 일쑤였다. 혹시나 구청에서 허가가 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집주인이 변심해 거래를 파기하면 대응 방법은 있는지. 대출이 안 나와 집을 못 사게 되면 당장 손을 벌릴 곳은 어딘지. 쓸데없는 걱정까지 눈덩이 굴리듯 불렸다가 부수기를 반복했다. 하루하루가 더디게만 흘러갔다.


그리고 11월 18일. 토지거래를 허가하겠다는 문서와 함께 허가증이 나왔다. 매매약정서를 쓴 날이 11월 1일, 주말을 넘겨 3일에 서류를 넣었으니 정확하게 15일이 지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아파트 매매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수 있었다.

keyword
이전 04화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눈치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