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나보고 쪼잔한 사람이라고 했다. 마트에서 장을 보다 첫 부부싸움을 한 뒤부터였다. 육포를 먹고 싶다던 그에게, 나는 “그 돈이면 삼겹살을 사서 구워먹자” 했는데 그게 도화선이 됐다. 어떻게 삼겹살과 육포가 같냐면서, 결혼하고 나니 자기는 육포 하나도 마음대로 못 사는 사람이 되었다고 툴툴거렸다. 그날 이후 남편이 육포를 산다 하면 군말 않고 카트에 담곤 하지만, 그럼 뭐하나. 부채살에, 맥반석 오징어에, 하물며 과자 한 봉지 앞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사네 마네 하며 투닥거리는 걸.
가성비에 집착하고 세일 상품에 먼저 손이 가는 사람이 어디 나뿐이겠냐만은 신기하게도 나는 큰 금액의 돈에는 의외로 무덤덤해진다. 0이 하나둘 늘어날수록 돈이라기보다는 숫자 놀음 같아 별 감흥이 없달까. 용돈 5만 원 인상을 두고도 남편과 힘겨루기를 할 때도 그랬다. 나는 용돈을 늘리는 대신 차를 바꾸는 비용을 생활비와 별도로 모아두는 걸 제안했다. 비용은 매년 1천만 원. 2년을 모으면 2천만 원, 5년을 모으면 5천만 원, 10년이면 자그마치 1억 원이었다. 남편은 흔쾌히 합의했고, 당연히 용돈은 동결됐다. 사실 나는 내 남편이 차에 1억 원을 쏟아부을 만큼 간이 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고로 나의 승리였다.
집값도 마찬가지였다. 11억7천만 원은 어마어마하게 큰 돈이었지만, 나에게는 대출 때문에 매달 빠져나가는 고정비 200여 만 원이 더 큰 걱정이었다. 금리가 조금이라도 저렴한 상품은 없는지, 그 사이 조금이라도 더 돈을 벌어서 대출금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발을 동동거렸던 걸 보면 큰 돈보단 작은 돈에 벌벌거리는 건 분야를 막론하고 발휘되는 나의 성향인가보다.
그렇다고 이미 도장을 찍은 집값을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취득세나 중개수수료, 법무사 비용 같이 정해진 비용도 내 마음대로 깎을 수 없었다. 아낄 수 있는 부분은 이사와 인테리어 정도였다. 견적에 따라 금액이 달라지는 만큼 이 부분에서는 나의 쪼잔한 성향이 십분 발휘됐다.
남편은 나와는 정반대였다. 큰 돈을 쓰는 건 무서워했고, 작은 돈에는 쉽게 지갑을 열었다. 그에게 다이소는 천국이었고, 쇼핑몰 천 원 마트는 참새가 그냥 지나치지 못 하는 방앗간 같은 곳이었다. 그래서일까. 가장 큰 돈인 집값에 도장을 찍은 후엔 비교 대상이 집값이 되어버렸다. ‘집값보다 싼데, 얼마 안 하는데’란 말이 쉽게 나왔다. 그러니, 남편이 봤을 때는 이사비용도, 인테리어도 감수 가능한 금액이었을 터였다.
그렇지만 인테리어 비용은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이었다. 인터넷에서 보고 잡았던 금액을 훨씬 웃도는 견적들이 날아왔다. 구축이어서 난방과 온수배관을 교체해야 한다는 것도 큰 문제였다. 둘이서 계산해보니, 세금이며 여유자금을 제하고 인테리어에 쓸 수 있는 비용은 1억2천만 원이 최대였다.
내가 1억2천 만 원을 상한선으로 생각하고 최대한 돈을 남기자 주의였다면, 남편은 그 돈을 전부 인테리어에 할당하기로 약속한 금액이라고 받아들였다. 게다가 정해둔 금액보다 견적이 넘치는 상황이라 무엇을 뺄지 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남편은 넘치는 비용을 자기 용돈으로라도 충당하겠다고 했고, 나는 안 된다고 했다. 약속한 금액이 있으니 그 안에서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당시, 남편은 자기 의견을 무시했다고 씩씩거렸고, 나는 생활비에서 다시 한 번 조율을 해야지, 우리가 정한 룰을 깨고 남편이 나에게 일방적으로 통보를 했다고 받아들였다.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서로 생채기가 났다. 신혼 초 육포 전쟁에서 몇 백 배는 불어난 사이즈였다.
더 큰 싸움을 막기 위해 오랜만에 가족회의를 소집했다. (우리는 둘이지만 의견이 부딪힐 때는 가족회의를 하곤 한다) 어떻게든 아껴야 한다는 고집과 그동안 참고 살았는데 이번에는 좀 질러보자는 욕심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아갔다. 서로 다르게 받아들인 부분에 있어서도 오해를 풀었다.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역시나 질주하는 나를 진정시키고, 전체를 둘러볼 수 있게 고삐를 쥐어주는 건 남편의 역할이었고, 땅에서 떨어져 둥둥 뜬 남편의 발을 잡아 현실에 단단히 고정시키는 건 아내인 나의 역할이었다.
조금 넘치는 비용은 열심히 일을 해서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른 비용들을 여유있게 잡아둔 만큼 그 정도는 무리해도 괜찮았다. 대신 견적서 항목 중에 뺄 부분은 없는지, 다시 한 번 꼼꼼하게 살폈다. 아낄 수 있는 부분은 아끼고, 쓸 부분은 쓰기로 했다. 이런 조건들을 맞춰줄 수 있는 업체도 잘 골랐다.
작은 돈엔 벌벌 거리고, 큰 돈엔 무덤덤한 아내와 소소한 지출엔 대범하지만 큰 돈 앞에선 작아지는 남편. 우리, 이 공사가 끝날 때까지 무사히 잘해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