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집을 구하는 위해서는, 먼저 좋은 부동산 중개소를 찾아야 했다. 아파트 주변을 천천히 두 바퀴 돌다 한 곳을 정했다. 가게 앞에 늘어선 많은 화분이 동네 터줏대감임을 내세우는 것 같았다. 전세집을 구해온 짬밥으로 매매도 수월하게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매매는 어나더레벨이었다. 시기가 문제였을까. 집을 보고 와서 고민을 할라치면 다음날 매매가 됐다는 연락이 왔다. 보지도 않고 거래를 한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빨리 결정해야 한다는 부동산 중개사의 독촉이 이어졌다. 추석 연휴 내내 집값이 고공행진 중이라는 기사들이 쏟아졌고,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곧 발표될 거라는 예측 아래 불안감이 더 커지는 때였다. 우리는 여전히 을이었다.
그리고 2025년 10월 15일, 강력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됐다. 서울 전지역과 경기 일부 지역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주택담보대출 역시 더욱 조인다고 했다. 다들 혼란에 빠졌다. 집값이 오를 거다, 떨어질 거다 말도 많았다. 분위기에 휩쓸려 뭐라도 사야할 것 같단 생각도 들었다.
이때 남편이 제동을 걸어왔다. 빨리 집을 사고 싶다던 남편이었기에 의외였다. 한번 결정하면 빨리 끝장을 보려고 하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뭐든 여러 번 곱씹는 성격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말, 무조건 해야한다는 말,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말을 들으면 청개구리처럼 안 하고 싶어진다던 그였다. 정 안 되면 전세집을 구해도 된다던 그의 말 덕에 산다와 못 산다의 갈림길 외에 3번째 선택지가 생겼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배짱도 부릴 수 있었다. 당장 결정하라던 부동산 중개소에 한 주는 집을 보지 않겠다고 연락했다. 생각했던 매매가도 얘기했다. 그 이상으로는 거래 자체를 할 수 없다고도 딱 부러지게 말했다. 세상엔 그 아파트만 있는 건 아니었다. 우선순위를 다시 한 번 곱씹었다.
그렇게 한 주가 지나고 부동산 중개사가 먼저 연락이 왔다. 그동안 을이었던 우리가 주도권을 쥔 순간이었다. 전세역전이었다. 집주인이 해외서 일을 하는 중인데, 이번에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지역을 옮기려 급히 집을 내놓게 됐다는 사정을 들었다. 새 매물이었다. 10년 전 해당 집을 살 때도, 최근까지 세를 놓을 때도 이 부동산 중개소에 도움을 받았더랬다. 급매여서 호가가 아니라 실거래가로 싸게 내놓을거란 귀뜸까지. 한 동네에서 오래 장사를 한 부동산 중개소를 고른 덕에 인터넷에 매물이 올라오기 전에 먼저 들은 정보였다.
새 매물은 우리가 봤던 매물보다 7천만 원이나 쌌다. 집주인을 직접 못 보고 계약할 수 있다는 리스크가 있었지만 우리가 원하던 가격과 평수 모두를 만족시킨 매물이었다. 확신이 있으니 결정은 빨랐다. 일 때문에 지방에 가 있는 남편 대신 홀로 집을 봤다. 부동산 중개사 분께 사고 싶은데 네고가 가능한지 물었다. 다행히 천만 원은 더 낮춰줄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럭키였다. 도합 8천만 원을 낮춰서 집을 구할 수 있었다. 조바심을 내지 않고 한 템포 쉬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간의 신경전. 서로 사겠다는 경쟁자까지 붙게 되면 집값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다행히 우리는 눈치 게임에서 우위를 점한 채 계약까지 갈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운이 따랐던 선택이었다. 돈보다 마음의 속도를 조절하는 게 중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