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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베이지 Mar 13. 2016

2015 수능 '생명과학Ⅱ' 8번 문항의 오류와 해설

평가원과 학회가 내놓은 함량미달의 해명과 미처 생각되지 못한 것들.







1. 인트로




7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11월 요맘때쯤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삼수를 해서 대학에 들어가게 된 나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수능 시즌만 되면 


괜스레 내가 대신 간절해보곤 했던 것이다.  


특히, 이번엔 나이 터울이 있는 동생의 수능까지 겹쳐져 


온 가족이 수험생 된 마음으로 저마다의 책상에 앉았더랬다.  


멀리서나마 느껴지는 그 에너지들을 이해하고, 마지막까지 그들의 스무 살을 응원한다.            


  










2.   



<2015 수능 생명과학Ⅱ 8번>






첨부한 자료는 이번 수능 생물에 출제되어 수백 건의 논란이 제기된 문제이다. 


(이외에도 영어 과목에서의 25번 문제에서도 오류가 제기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부분은 명백히 복수정답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여름, 흐르는 땀을 수천 번도 닦아내고 펜을 들었을 아이들의 간절함이 문득 뭉클해져, 


그 터널을 지난 전공자로써 조금의 보탬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문제를 풀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2번에 마킹을 하고 정답을 보는데 웬걸. 


평가원에서 공식적으로 공표한 답안은 4번 ㄱ, ㄴ이라 했다.     


      


   










3.   


우선 문제가 되는 문항은,


<ㄱ.젖당이 있을 때, RNA 중합효소는  ㉠ (: 조절유전자) 에 결합한다.> 이다.  


결과적으로, ㄱ 문항은 정답이 맞다.  


사실 유전자에는 당연히 프로모터 부위가 존재하고,


고로 RNA polymerase는 젖당의 유무와 관계없이, 조절 유전자에 결합한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ㄱ문항은 너무나 당연히 맞는 것이다.    










         



  


4.





하지만 이 문제는 복수정답을 인정해야 한다.  



 

그보다 앞서 이 문제는, 지금 이 순간부터 'ㄱ' 문항이 정답이 되는 이유를 짚어야 할 


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함량 미달이다.   


 







첫째는, 문항이 만들어 놓은 맥락 때문이다.








 


프로모터라는 용어를 ㉡으로 따로 지칭한 데서부터 함정은 시작된다. 


거기에다, 젖당이 있을 때 라는 수식어구를 이용해서 프로모터를, 


자연스레 lac operon의 프로모터를 생각하게끔 유도해놓은 것이다.     








 

언어에는 그 문장을 구성하는 낱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맥락이다.

 

같은 낱말도 어떤 분위기에서, 어떤 문투로 쓰였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니곤 한다. 


본래 취지의 밀도와 온도가 완전히 왜곡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평가원과, 출처가 궁금해지는 학회의 일부는 


프로모터를 아주 일반적인 그것으로 봐야 하므로 오류가 없다고 얘기한다.   











 

사실 이러한 해명은 오히려 정반대의 상황에서나 어울린다. 


문맥을 싹둑 잘라내놓고는, 아주 일반적인 차원의 얘기로 환원해버린다거나, 


혹은 돋보기를 막무가내로 들이대, 나무들만 보고는 숲의 상황은 외면해버리거나 하는 식인 것이다. 


이런 식의 접근은 상당히 곤란하다. 


그런데 이번엔 평가원 측에서 이런 식의 해명을 해대는 것이다.   










   

이러한 함정을 의도하고 문제를 출제한 평가원은 조악하고 옹졸하다는 평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문제 출제 시엔 오답률을 3-40%에 맞추는 게 이상적이고,


70%가 넘어가면 잘못 출제된 문제로 보는 게 합당하다. 


90% 이상의 최악의 오답률을 보여준 이번 생명과학 8번 문제는 


복수정답을 인정해야 마땅하다.   













  

단언컨대, 평가원의 의도대로 구조유전자에도 프로모터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여, 


ㄱ문항에 정답을 체킹한 학생은 손으로도 헤아릴 것이다. 


고교 생명과학을 다루는 교과서에서는, 구조유전자의 구조를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차갑게, "객관적 사실이 그러하니 받아들여라"라고 하기엔 


온 1년을 몽땅 걸어, 간절히 공부 해온 아이들의 열정이 너무나 뜨겁다.        















 




  

5. 


 

이 문제는 일반적인 복수정답 논의가 그러했듯, 


아이들이 생각지도 못할 영역의 지엽적인 오류를 트집 잡아 낸 이의 제기가 아니다. 


오히려 이게 정답일 경우, 너무도 지엽적인 영역으로 학생들을 내모는 꼴이다. 


감히 이런 문제로 학생들을 선별해낸다는 건 기만이자, 오만이다.  


 










  

평가원이 지금 취해야 할 스탠스는 자존심이 아니다. 


진정 그들의 위신을 바로 세우고 싶다면, 학생들이 품어온 뜨거움에 고개 숙이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게 교육과정평가원의 참된 교육이자 의무이다.  









이상, 지난 여름 흘린 고3 학생들의 땀들과, 비슷한 추억을 가진 모두에게 진심어린 응원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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