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살 필 의무
건강한 신체가 롱런하는 직장인을 만든다
경력단절을 딛고, 다시 회사원이 되었을 때 나는 여전히 30대였습니다.
이제 막 돌 지난 딸아이를 놀이방에 맡기고, 아이가 낯선 상황에 익숙해지기 전 출근을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오랜 시간 재취업을 위해 뛰어다녀도 그 흔한 인터뷰 기회조차 얻기 어려워 취업에 대한 희망을 내려놓을 즈음, 갑자기 1주일 뒤에 출근할 수 있겠느냐는 전화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재취업으로 몇 번의 이직과 관계사 전출을 하며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됐습니다.
경단녀- 경력단절여성, 박근혜 정부 시절 이 '경단녀'가 화두가 되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주목을 받게 된 경력단절 여성을 기업들이 앞 다투어 일자리를 만들어 채용했습니다. 경력단절을 경험한 내게 '일을 한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주었습니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자립은 물론이고,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즉, 사회인으로서의 존재를 증명하게 된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하는 동안 남들보다는 몇 배로 몸에 힘이 들어간 듯합니다. 모두 함께 사회생활을 시작한 동기들이 있는 첫 직장의 공채와는 다른, 일명 경단녀의 경력직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신분은 어느 조직에서나 있을법한 적당한 불공정과 불합리함에 무뎌져야 했고, 그만큼 더 열심히 달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일을 더 잘하면, 그 정도의 불공정과 불합리는 가뿐히 뛰어넘을 수 있다고 여겼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일이 모두 나의 계획과 뜻대로 되지 않는 거처럼, 좌절할 일은 더 많았고, 내게 온 기회조차 알아보지 못했던 무지함은 점점 더 나를 지치게 했으며, 한 번도 건강에 대해 걱정해 본 적 없던 내게도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어른들의 이야기처럼, 컨디션의 적신호가 오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무슨 의식처럼 출근하자마자 사약처럼 한 사발 들이키는 아메리카노를 시작으로, 나른한 오후의 졸음을 이겨내기 위해 마시는 달콤한 믹스커피까지 하루에도 몇 잔씩 마셨던 커피와 불규칙한 식사, 끝없이 이어지던 회식과 저녁자리, 운동과는 담을 쌓은 생활습관 탓이었습니다. 그런 일상을 30대에는 어찌 감당했을지 몰라도, 40대 중반을 넘어서니 더 이상은 감당하기 어려운, 정말 무리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무엇보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불굴의 의지가 예전처럼 타오르지 않는 날이 많아졌고, 더 이상의 최선은 없을 거 같은 상황에서도 한번 더 타진해 보고, 방법을 찾기 위해 뛰어다니던 노력과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예전만 하지 못했습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처럼, 여기저기 아픈 곳이 생기고, 먹는 약들이 늘어나는 것에 비례하여 의욕과 에너지는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나 영원할 거 같은 젊음이 찰나와 같이 짧은 순간에 사라지는 찬란한 아름다움인 거처럼 건강 역시 영원히 우리에게 허락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건강은 우리가 노력하는 만큼 그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내 삶의 우선순위를 점검해 우선순위 맨 앞에 있던 회사를 지우고, 나를 채워 넣었습니다. 그런 우선순위에 맞춰 내가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운동이었습니다. 지난 3년간 등록만 연장하고 있던 피트니스, 1년에 몇 번 나가지도 않았던 그곳에 지금 나는 주 3회 출석합니다. 평소 운동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내게 1시간 이상 근력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하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은 피트니스에서 무료로 운영하고 있는 GX(그룹수업)에 참여하는 것이었습니다. 퇴근하고는 무조건 피트니스로 가서 요가와 필라테스를 결합한 유연성 운동과 근력운동과 유산소를 프로그램에 맞춰하고 있습니다. 처음 한 달은 온몸이 아프고, 뻣뻣한 내 몸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부자연스럽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고 나니, 점차 몸은 가벼워지고, 유연해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다음은 아침을 챙겨 먹기 시작했습니다. 값비싼 재료를 사용해 대단한 것을 만들어 먹는 게 아닙니다. 전체적으로 소식하면서, 탄수화물을 줄이고, 아침을 거르지 않는 것이 기본입니다. 주로 내가 선호하는 것은 메뉴는 사과와 요구르트, 두부, 삶은 달걀 정도입니다. 아주 간단하지만, 거르지 않고, 루틴으로 만들어 가니 출근 길이 든든하고, 뭔가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을 먹고, 출근하기 전 비타민과 영양제도 잊지 않고, 꼬박꼬박 챙겨 먹습니다. 예전에는 몸에 좋다는 비타민이나 영양제가 유행하면, 집에다 한두 개쯤은 늘 사다 두고 유통기간이 지나서 먹지 못했던 적도 많았습니다. 결국 이 또한 우선순위의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보다는 급한 일들에 치여 정작 중요한 것들을 간과한 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글을 씁니다. 나를 잊고, 숨 막히게 열심히 달려오기만 하면서 살아온 시간이 갑자기 억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는 살았는데,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고, 갑자기 훌쩍 나이만 먹은 것 같아 나의 소중한 하루하루의 일상을 복기하고, 기록하며, 앞으로 나갈 힘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미뤄오기만 했던 브런치 작가에 지원을 하고, 브런치 작가로 그동안 내가 쓰고 싶었던 글들을 엮어 정기적으로 발행할 계획입니다.
더불어 지인들과의 북클럽을 통해 인문학 공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나 자신을 돌아보며 글을 쓰고, 고단한 삶을 나눌 벗들과 함께 책을 읽으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일은 동지애를 바탕으로 한 큰 위로와 공감, 그리고 서로가 주는 긍정의 에너지를 통해 삶에 활력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루하루 늙어가고 있고, 내일은 오늘보다 젊지 않습니다. 기본은 늘 그렇듯 단순합니다. 직장에서 오래도록 롱런 하고 싶다면, 건강해야 합니다. 행복한 가정을 잘 만들어 가고 싶은가요? 그렇다면 그러한 가정의 토대가 되는 내가 건강해야 합니다. 잘 자고, 잘 먹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삶, 결국은 오늘 하루가 성공적인 회사생활은 물론 행복한 가정과 행복한 우리들의 인생을 만들어 가기 때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