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숟갈, 눈물 한 방울
병원 복도는 유난히 길었다. 한 걸음, 두 걸음. 발밑에서 기계적으로 울리는 신발 소리만이 나를 현실로 끌어당겼다. 차가운 공기, 텁텁한 소독약 냄새, 그리고 아무 말 없는 사람들. 누군가는 커피를 뽑고 있었고, 누군가는 작은 목소리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세상은 멈춰 있었다.
"어머니가… 많이 힘드셨을 거예요."
의사의 말이 끝나는 순간, 나는 바보같이 시계를 쳐다봤다. 시침과 분침은 계속 움직이는데, 엄마의 시간은 거기서 멈췄다. 거짓말 같았다. 아니, 거짓말이었으면 했다.
나는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엄마,
나 오늘
아무것도 못 들은 걸로
하면 안 돼?
엄마의 침대 옆에 서니,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이었다. 숨을 쉬지 않을 뿐, 엄마는 여전히 엄마였다. 평소처럼 따뜻하게 나를 불러줄 것 같았고, 문득 깨서 "이게 다 꿈이었다"라고 말해줄 것만 같았다. 나는 손을 뻗었지만, 엄마는 더 이상 나를 잡아주지 않았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엄마가 떠났다는 걸. 그리고, 나는 이별의 방식조차 모른다는 걸.
마지막으로
뭐라도 말해주고 가지,
엄마.
하지만 세상은 잔인할 만큼 담담했다. 장례식장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얼굴들이 "힘내"라고 말했고, 누군가는 "이제 편안해지셨을 거야"라며 위로했다. 하지만 나는 듣고 싶지 않았다. 편안해진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엄마가 없는 세상에서 나는 편안할 수 있을까.
엄마는 떠났지만, 냉장고에는 여전히 엄마가 사둔 반찬이 있었다. 식탁 위에는 엄마가 접어 둔 종이쪽지가 있었고, 욕실에는 엄마가 쓰던 샴푸 냄새가 남아 있었다. 그런데, 정작 엄마는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주머니 속 핸드폰을 열어봤다. 최근 통화 목록 1위, ‘엄마’. 클릭하면 통화가 연결될 것 같은데, 이제 그 번호는 영원히 받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나눈 문자를 다시 읽어본다.
"밥 챙겨 먹어라."
짧은 한 줄. 그게 엄마가 내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세상은 계속 돌아갔다. 사람들은 출근했고, 뉴스에서는 어제의 날씨를 떠들었고, 동네 마트에서는 세일을 했다. 웃기지 않나? 내 세상은 박살이 났는데, 세상은 멀쩡하게 돌아간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엄마가 남긴 반찬을 꺼냈다. 따뜻한 밥을 퍼서 조용히 먹기 시작했다.
밥 한 숟갈. 그리고 눈물 한 방울.
그제야 깨달았다.
엄마는 사라진 게 아니라, 나의 일상 속에 남아 있다는 걸. 엄마가 없는 세상에서도, 나는 여전히 엄마가 챙겨준 밥을 먹고, 엄마가 남긴 습관 속에서 살아간다는 걸.
이별은 끝이 아니었다. 엄마는 여전히 나와 함께였다.
"엄마, 안녕. 그리고,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