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집
집이 조용하다. 너무 조용해서 이상하다. 예전엔 냉장고 문을 여는 소리에도 “그만 좀 먹어라!” 하는 잔소리가 날아왔는데, 이제는 내가 부엌을 뒤져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TV 소리도,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수다도, 아침마다 부르던 내 이름도 사라졌다. 엄마의 목소리가 사라진 집은, 살아있는 것 같으면서도 죽어 있다.
엄마가 떠난 후, 이 집은 박제가 되었다. 시간도 함께 멈춘 것만 같다. 거실에 놓인 엄마의 슬리퍼는 여전히 어제의 자리에 있고, 식탁 위에는 마지막으로 마셨던 커피잔이 남아 있다. 마치 언제든 돌아와 다시 신고, 다시 마실 것처럼.
하지만 안다.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사람은 떠나도, 소리는 한동안 남는다. 세탁기를 돌릴 때, 창밖에서 바람이 불 때, 나는 문득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것만 같다.
"밖에 추우니 따뜻하게 입어라"
"밥은 먹었냐?"
"무슨 걱정 있어?"
아무리 조용한 공간이라도, 엄마의 목소리는 내 기억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그런데도 참 이상하다. 그렇게 시끄럽게 잔소리를 하던 엄마가, 정작 떠날 땐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다.
“잘 있어라” 한마디라도 해주고 가지.
아니, 잔소리라도 해주고 가지.
침묵의 집에 남겨진 나는, 그 잔소리가 그리워 견딜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