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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처세술'이 주목받는 시대가 온다

- 한류 문화, 세계를 주도하다

by Miracle Park


우즈베키스탄에서 한류는 2000년대 초 <겨울연가>가 60%라는 기록적인 시청률을 기록한 후, 연이어 <대장금>, <주몽> 등의 한국 드라마가 우즈베키스탄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면서 시작되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이러한 한류를 주도하는 일등공신은 바로 고려인이다. 그들은 스탈린의 정책으로 인해 중앙아시아 각 지역으로 흩어졌는데, 현재 우즈베키스탄에는 약 18만 명의 고려인이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한국 드라마의 인기는 곧 한국어 학습 열기로 이어져서, 타슈켄트 한국교육원, 세종학당과 각급 학교, 대학교 등에서는 한국어 강좌를 개설하고 있다.


또한, 한국 산업인력공단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취업하고 돌아온 청년들은 한국계 회사와 공장 등에서 ‘한국 스타일’을 몸으로 체득한 세대이다. 이들은 중심으로 우즈베키스탄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발전하고 있다. 저개발국가에서 흔히 나타나는 ‘시간 보내기’나 ‘게으른 성품’ 등의 악습은 한류의 확산과 한국을 방문하는 유학생, 노동자 등 ‘한국 스타일’을 하는 계층에 의해 점차 개선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우즈베키스탄의 변화는 다분히 ‘한국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이러한 ‘한국식 처세법’은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한국을 경험하지 못한 현지인들에게는 ‘학습해야 알 수 있는’ 새로운 교양으로 자리 잡고 있다.

중국 하면 ‘만만디’([중국어], 慢慢的)가 떠오를 것이다. 이는 ‘행동이 굼뜨거나 일의 진척이 느림’을 이르는 말이다. 이와 비슷한 표현으로 ‘sekin sekin(세 큰 세 큰: 천천히)’이라는 우즈베크어가 있다. ‘만만디’ 못지않은 이 단어는 현지에 장기간 거주해야만 알 수 있는 현지 문화이기도 하다. 단 며칠을 여행한다면 절대로 알 수 없는 우즈베키스탄의 독특한 문화다. 현지 진출하려는 분들에게는 ‘적합한 조언’이 될 것이며, 이를 잘 활용한다면 분명 남보다 한 걸음 앞서갈 수 있는 비결이 될 것이다.


쉽게 말해서 한국은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 밥도 ‘빨리빨리’ 먹고 일도 ‘빨리빨리’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결혼과 취업도 ‘빨리빨리’ 해야 사회에서 인정받는다. 자동차나 집을 구매할 때도 ‘빨리빨리’ 해야 능력 있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식당에 가면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빨리빨리’ 되는 메뉴가 최고다. 택배를 주문해도 ‘빨리빨리’ 와야 다음에 다시 이용한다. 배달음식도 ‘빨리빨리’ , 대중교통도 ‘빨리빨리’ 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해방 이후 경제성장도 ‘빨리빨리’ 한 것인지도 모른다.


반대로 ‘빨리빨리’ 증후군의 부작용을 겪기도 했다. ‘빨리빨리’ 건물과 다리를 짓다 보니까,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무너지기도 했다. 그 이후에 사람들은 ‘빨리빨리’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요즘 들어서야 ‘빨리빨리’ 보다 ‘천천히’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직장에 ‘빨리빨리’ 취업했는데 정년도 되기 전에 ‘빨리빨리’ 명예퇴직을 시킨다. 멋모르고 ‘빨리빨리’ 결혼했는데 성격 차이로 ‘빨리빨리’ 이혼하는 커플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과연 ‘빨리빨리’ 문화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우즈베키스탄이 한국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한 가지 염려되는 점은 한국의 모든 면을 ‘컨트롤+ A(모두 선택)’ 한 후에 이를 ‘컨트롤 + V(붙여 넣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에 체류한 경험이 있는 청년층들은 벌써 ‘빨리빨리’ 문화에 젖어있다. 물로 한국에 ‘빨리빨리’ 적응해서 ‘빨리빨리’ 졸업해서 ‘빨리빨리’ 취업을 해야 ‘빨리빨리’ 돈을 모아서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 한국인>이라는 책을 낸 푸른 눈의 영국 기자 마이클 브린은 한국에 30년을 살면서 기자생활을 했다. 한국의 현대사를 몸소 체험한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기적의 나라 대한민국! 불과 수십 년 전 한국이라는 국가는 말할 수 없이 가난한 나라였다. 한 세대만에 그들은 농업국가에서 첨단 제조업 국가로 탈바꿈했고, 다시 수십 년 만에 2차 대전 이후 신생국 중에서 유일한 민주국가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는 한국이 이룬 성취를 3가지로 말했다. 경제적 성취, 민주화, 그리고 최근에 불고 있는 한류에 대한 성취이다. 마이클 브린이 말한 대로 한국은 짧은 기간 안에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한 시행착오를 있는 그대로 배우려는 나라가 있다. 무엇이 이토록 우즈베키스탄을 변하게 하였는가. 그리고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한국화’하려고 하는가. 이 대목은 앞으로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이라는 두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그들은 이제 ‘김치의 맛'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나라에 정착하려면 제일 먼저 적응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음식 문화이다. 원래 중앙아시아 국가는 사방이 대륙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주로 빵과 양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민족이다. 수 천 년 이어온 이들의 전통이 단 몇 년 만에 바뀔 수 있을까. 특히 어렸을 때부터 먹어오던 식습관을 단숨에 바꾸기는 매우 어렵다. 마찬가지로 한국 사람들이 해외에 나가면 제일 먼저 김치와 라면 국물을 찾는 것이 그 좋은 예이다. 특히 유럽의 느끼한 음식에 쉽게 질려, 결국 현지 한국식당에서 김치전골에 밥을 말아먹고 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의 입맛이 갑자기 바뀐 걸까. 타슈켄트에서 만났던 학생들 대부분은 ‘김치’의 묘한 냄새에 한동안 적응을 못 했다. 우리가 밥을 찾는 것처럼 그들은 끼니마다 빵을 먹어야 했다. 우리는 매콤한 국물을 먹어야 사는 것처럼, 그들은 ‘양고기 수프’를 먹어야 한 끼 식사를 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음식문화가 완전히 다른 데 그 차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빵과 밥, 얼큰한 국물과 양고기 수프를 아우를 수 있는 중간 지점을 찾고 싶었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시도였다.


이것은 우즈베키스탄 민족 특유의 처세술로 분석할 수 있다. 역사 속에서 실크로드 무역상이었던 우즈베키스탄은 동서양을 오가는 상인들이 머무는 중심지이기도 했다. 민족적 자긍심이 높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민족의 문화에 대해 폭넓게 수용하는 ‘대륙의 기질’을 가진 민족이다. 정통 이슬람이 지배하는 사회이지만 구약 성서에 나오는 기독교의 다니엘의 묘를 유명한 관광지로 만들어낸 민족이다. 그들의 문화적 포용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태생적으로 충돌보다 조화를 택하면서 나름의 실속을 챙길 줄 아는 지혜를 물려받은 민족이 아닌가 한다..


실리를 위해서는 과감하게 옛 습관을 포기하는 민족이다. 그들은 현명하게 사는 방법을 아는 민족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변화는 누구에게나 불편하고 어렵다. 지금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한국을 배우려고 하고,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심취해 있는 이유는 각자 다를 것이다. 물론 그들만의 전통을 지키면서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맞게 자신들의 생각과 삶의 방향을 수정할 줄 아는 ‘융통성’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른가 하는 논쟁은 여기에서는 불필요하다. 다만 우즈베키스탄이 최근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한국식의 처세술’ 하면 흔히 ‘달콤한 말로 가득한 접대 자리’를 떠올릴 수 있다. 예전과는 달리 지금은 술을 권하거나 촌지를 요구하는 경우는 사라졌지만, 우리는 한때 지하의 밀실에서 은밀하게 거래하는 관행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처세’라는 말을 들으면 주로 ‘어둡고 부정적’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왠지 정당한 방법이 아닌 온갖 권모술수와 편법으로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 각종 이권을 챙기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다행인 것은 우리의 어두운 과거의 관행을 새로 들어선 미르지요예프 정부가 반성하고 개혁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우즈베키스탄은 한국을 배우고 ‘이전과는 현저하게 달라진 체질 개선’을 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그들의 본보기가 바로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걸어왔던 잘못을 그들에게 물려주어서는 안 된다. 형님의 나라답게 그들이 노력하고 개선하려고 할 때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기다려 줄 필요가 있다. 한 번에 완벽하게 바뀔 수는 없다. 어깨를 다독거려주고 진심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을 때,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형제애는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의 처세술은 한 마디로 ‘뼛속까지 한국화’하는 것이다. 그들의 힘겨운 노력을 악용해서는 곤란하다 우리도 한 때 느끼한 치즈와 버터를 바른 빵 맛을 몰랐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살기 위해서 ‘코가 큰 사람’ 들을 따라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숭늉보다 피자와 햄버거, 콜라 등을 찾게 되었다.

지금 우즈베키스탄 사람들도 이와 같다. 한국식 처세술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다. 설령, 그들이 못 따라오더라도 넓은 마음으로 시간을 주자·한국을 배우려는 그들의 열정과 순수함을 인정해주자. 단지 대한민국이 우수한 민족이라서 우리의 모든 것을 배울 것이라는 ‘우쭐함’은 누군가에게 치유되지 못할 상처로 남을지도 모른다. 김치의 깊은 맛을 아는 외국인은 많지 않다. 다만 맛있게 먹으려는 그들의 노력에 손뼉을 쳐주어야 한다. 우리가 서양 음식의 맛을 배우기 위해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였다.


그들은 지금 '김치의 맛'을 배우는 중이다. 그들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약자의 설움'을 한국 사람들은 잘 안다.


'약자의 아픔을 배려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즈베키스탄에 몰려줄 만한 '한국인의 처세술'이다.


2009년 타계한 프랑스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화에 차이는 있어도 우열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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