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이 잠식한 섬, 새로운 식민지의 풍경
"제주 가서 살고 싶다."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법한 말이다.
탁 트인 바다, 따뜻한 바람, 여유로운 삶.
그러나 이 아름다운 섬에서, 지금 원래 제주에 살던 사람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애월 바닷가의 어느 동네에서는 이런 말이 들린다.
“이 마을에서 제일 오래 산 사람이, 3년 된 카페 사장님이에요.”
어느새 이방인이 정착민이 되고, 토박이는 손님이 되어버린 섬.
이것은 관광지의 자연스러운 진화가 아니다.
이건 자본에 의해 만들어진, 현대판 식민지다.
# 관광의 천국에서 자본의 낙원으로
2000년대 후반부터 제주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육지에서 제주로 이사 오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아파트를 팔고 제주에 전원주택을 짓거나,
디지털 노마드가 ‘한 달 살기’를 하며 리모트 워크를 꿈꾸는 이들이 몰려들었다.
문제는 이들이 꿈을 좇아 내려오는 동안,
제주의 현실은 악몽이 되어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외지인들이 제주에 몰려들며 부동산 수요는 급증했고,
그에 따라 땅값과 집값은 미친 듯이 치솟았다.
농촌이었던 마을에 외제차와 감성 카페가 들어서고,
이웃은 이웃이 아니라 투자 경쟁자가 되었다.
# 밀려난 토박이들, 떠나는 제주사람들
가장 먼저 변화의 직격탄을 맞은 건,
제주의 원주민, 특히 고령층과 청년들이었다.
예를 들어보자. 애월읍의 한 감귤 농가는
30년간 감귤을 재배하며 생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어느 날, 그 옆 농지가 뷰 좋은 카페 부지로 팔렸다.
이후 그 일대는 ‘카페 거리’로 재편되었고,
갑자기 임대료는 3배 가까이 올랐다.
결국 농가는 포기하고, 도심 외곽으로 밀려났다.
서귀포시 성산읍의 경우도 비슷하다. 관광객들은 일출봉만 보러 가지만, 그 주변 마을에서는 주택이 에어비앤비로 전환되고, 청년들은 주거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타지로 이주한다.
섬에서 태어났지만, 섬에서 살 수 없는 현실.
이건 농담이 아니라 통계다.
# 새로운 식민주의, 현대의 방식으로 오다
이 상황은 단순한 인구 이동이나 관광산업의 확장이 아니다. 좀 더 본질적인 문제, 자본의 구조적인 침투가 작동하고 있다.
예전의 식민주의가 총칼과 제국을 앞세워 땅과 자원을 약탈했다면, 지금의 식민주의는 투자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침투한다.
관광이란 포장지 속에 투기, 인프라 독점, 문화의 전유가 숨어 있다.
외지인은 땅을 사고, 사업을 열고, 이윤을 챙긴다.
지역 주민은 그 땅에서 노동력이나 장식물이 된다.
본래의 문화는 ‘제주 감성’이라는 이름으로 리패키징되어 팔리고, 정작 진짜 제주다움은 설 자리를 잃는다.
관광은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지만, 자본은 터를 잡고 박힌다. 그리고 그 자본은 지역 공동체를 분해하고,
그 빈자리에 돈이 움직이는 시스템을 심는다.
# 문화 충돌, 지역 소멸로 이어지는 현장
제주의 할머니는 말한다.
“요새 젊은이들은 전부 카페만 하지, 농사는 아무도 안 져.”
그 말에는 단순한 세대 차이를 넘는 삶의 무너짐이 담겨 있다.
마을회관은 비었고, 카페에는 노트북 든 사람들만 가득하다.
전통시장은 줄어들고, 감성 편집숍이 들어섰다.
제주 방언은 사라지고, 대신 아이패드와 우유크림라테가 그 자리를 채운다.
그들은 나름의 꿈을 안고 제주에 왔지만,
그들의 정착은 어쩌면 기존 삶을 대체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 대안은 없는가?
그렇다고 “제주에 오지 마세요”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문제는 여행이 아니라, 여행의 방식, 소비의 방향이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건 다음과 같다:
핫플 위주의 소비 대신, 마을 기반 가게나 로컬 장터를 방문하자.
감귤밭 배경 사진만 찍지 말고, 그 밭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어보자.
대형 리조트보다 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숙소에 머물러보자.
제주가 가진 고유한 역사, 특히 4·3 사건 같은 아픈 기억도 함께 공부하자.
작은 선택 하나가 그 지역의 지속 가능성을 살릴 수 있다. 관광은 단순한 레저가 아니라, 누군가의 일상 속을 통과하는 일이라는 걸 기억하자.
# 마지막 질문: 이 섬은 누구의 것인가?
제주는 아직도 아름답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라면, 우리는 그 풍경을 얼마나 기쁘게 바라볼 수 있을까?
“제주도에 제주도민은 없다”는 말은,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 경고다. 이 섬이 진짜 낙원이 되기 위해선, 돈이 아닌 삶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당신이 제주를 방문할 때, 그 섬에 여전히 제주의 사람들이 살고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들이 그 섬을 '소유'하고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