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섬그늘에
어느 날 오후, 오래된 서랍을 정리하다가 낡은 카세트테이프 하나를 발견했다. 먼지가 가득 쌓인 테이프의 라벨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엄마'라고 적혀 있었다. 호기심에 휩싸여 플레이어에 넣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그 순간, 시간은 뒤집혔다.
낡고 거친 음질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 "얘야, 밥은 잘 먹고 다니니?" 그 평범한 한 마디가 내 마음 깊은 곳에 메아리쳤다. 그건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 속에는 무수히 많은 밤을 지새운 걱정과 사랑이 가득했다. 나는 마치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낸 사람처럼 얼어붙었다.
기억 속 엄마는 늘 바빴다. 아침엔 분주히 나를 챙기고, 밤에는 쓸쓸히 책을 읽으며 창밖을 바라보곤 했다. 때로는 잔소리가 많고, 때로는 지나치게 걱정이 많다고 느껴 짜증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인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 모든 순간이 사랑이었다.
테이프 속에서 엄마는 노래도 불렀다. 어릴 적 자장가로 들었던 곡이었다. 음정도 박자도 엉망이었지만, 그 목소리는 그 어떤 음악보다도 아름다웠다. 그 노래를 들으며 눈물이 흘렀다. "왜 그땐 이 목소리의 소중함을 알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엄마가 떠난 후, 나는 기억의 끈을 붙들고 살았다. 생생했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지고, 감정마저 흐릿해졌다. 하지만 이 목소리만은 생생했다. 사랑은 시간이 지나도 퇴색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 목소리가 알려주고 있었다.
저녁이 되자, 나는 테이프를 반복해서 들었다. 엄마의 목소리가 내 마음 깊이 스며들었다. 그 목소리는 내 삶의 균열 사이를 채우고, 그동안 억누르고 살았던 감정들을 어루만졌다.
혹시 당신도 잃어버린 무언가를 떠올릴 용기가 있다면, 잠시 멈추어 그 기억의 조각을 바라보라. 어쩌면 그 조각 속에는 당신을 붙잡아주는 목소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삶은 잊히는 것들의 연속이라고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스며든 사랑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엄마의 목소리는 그것을 내게 알려주었다. 그녀는 떠났지만, 여전히 내 곁에서 속삭이고 있었다.
얘야, 나는 언제나 네 곁에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