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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Jun 04. 2021

그리운 나의 할머니

아낌없이 주고 가신 사랑에 감사합니다.

개봉동 할머니 집의 집은 단독주택이다.

 

하얀 대리석 벽돌집에 ㄱ자로 마당이 있고 대문과 마주 보는 위치에 우물이 있었다. 우물 곁에는 우물물을 길어 올리기 전 한 바가지의 마중물을 뿌릴 수 있게 펌프가 있다. 우물물을 길어 올릴 때는 붉은 빨랫줄을 꽁꽁 묶은 우물 바가지에 물을 받아 펌프 붓고 파이프 손잡이를 돌려 지하수를 끌어당기면 주둥이에서 물이 쏟아진다. 마중물을 우물 안에 붓고 펌프를 계속 당기면 우물 속에 물이 가득 차올랐다. 비스듬히 우물 바가지를 던져 물을 채워 올리면 바가지 가득 물이 담겨 올라왔다. 어린 내 눈에는 그 모습이 너무나 신기해서 물이 길어질 때마다 "우와~" 탄성이 나왔다.

 

할머니 집 우물은 물맛이 좋아 동네 사람들이 물을 길어갔다. 할머니는 곡간에 쌀이 말라도 배고픈 이웃을 그냥 보고 넘기지 못하는 분이셨다. 지금 생각하면 참 대책 없는 분이셨다. 제집 식구 먹을 쌀은 남겨두고 나눠줘야 하는데 그러 저런 생각도 없이 무작정 나눠주고 며느리(어머니)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 어머니는 시부모와 시부모의 8명 자식과 남편, 그리고 오빠와 나까지 14명을 부양하는 힘겨운 며느리 가장이었다.

 

할머니 집 마당에서 낮게 세운 담벼락을 넘어 보면 할머니가 일궈놓은 밭이랑이 있었다. 어린 내가 보면 큰 이랑인데 지금 보면 텃밭 정도이겠지…. 밭에는 온갖 채소와 울타리 삼아 심어놓은 옥수수가 자라고 밭의 끝을 알려주는 저 끝에는 어른 키 석 자는 넘을 듯한 흙벽이 비스듬히 있고 그 언덕 위로 철산 아파트가 보였다. 어린 마음에도 “저렇게 높고 좋은 집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하고 부러웠다. 언덕 위와 언덕 아래는 사는 삶은 모양새가 천지 차이였다.




아랫마을 사람들은 푸세식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우물에서 물을 길어 마시며 밭이랑에서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았다. (어린 나는 들어가 보지 않았지만 저렇게 높고 멋진 집에 사는 사람들은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동네 구멍가게 앞에 펼쳐진 평상에는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온 마을 사람들의 숟가락, 젓가락도 셀 양 남의 집 이야기로 꽃 피우셨다. 그러다 심심찮게 싸움이 나기도 하고, 아주머니들이 모여 앉아 화투판을 벌이기도 했다. (그림을 좀 잘 그릴 수 있다면 어릴 적 살던 그 시절을 그려보고 싶다.)

 

할머니 집 현관에 들어서면 체리 색 마루가 있고 마루 우측에는 천정까지 닿을 듯한 창이 있었다. 현관과 마주 보는 면에는 안방이 있고 안방 안에서 부엌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었다. 거실 왼편에 나란히 방이 2개 있었다. 셋째 삼촌 방 1개, 다섯째, 여섯째 삼촌 같이 쓰는 방 1개…. 기억 저편 추억의 집을 닮은 따뜻하고 그리운 집을 지어 사는 것은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되었다.


할머니는 깡마르고 엄청 부지런하시다. 할머니는 물을 쓸 때마다 입으로 물소리를 내는 버릇이 있다. 설거지 한 번 하려면 “쉬~ 쉬~ 싸아~ 싸아~” 입으로 내는 할머니 물소리를 한참 들어야 했다. 안방 왼편에 부엌으로 나가는 한 사람 나갈 폭의 나무문이 있고 할머니는 문을 열어두고 일을 하시며 나를 살펴야 하기에 마주 보는 면에 이불로 탑을 쌓아 가운데 나를 앉히고 앞으로 고꾸라질까 봐 앞에도 이불을 놓아 나를 앉혀두었다. 어린 나를 키우면서도 대식구 식사 준비며 집안일을 하셔야 하기에 혼자 앉지 못하는 손녀딸을 돌보며 일하기에 그만한 아이디어는 없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돌아가시는 날까지 다른 손녀딸들의 이름을 “로운”이라고 부르셨다. 첫 손녀를 키우며 주실 수 있는 사랑을 모두 쏟아 주셨던가 보다. 그런 할머니의 사랑 때문에 나는 엄마의 육아가 아니었어도 할머니의 따뜻한 품성과 아낌없이 나눠주는 오지랖을 닮은 사람으로 잘 자랐다.

 

어쩌다 외출 한 번을 하려면 다 큰 나를 포대기로 업고 밭이랑을 지나 흙 언덕을 낑낑대며 올라가셨다. 동네 어귀로 돌아가면 한 참 걸리는데 언덕을 넘으면 바로 버스정류장으로 갈 수 있었으니 조금 힘들더라도 그 길을 선택하셨던 것 같다. 나를 업고 오르는 할머니는 힘드셨겠지만 나는 할머니 등에 업혀 오르던 그 언덕이 좋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할머니 나이가 지금 내 나이 정도일 듯한데 이상하게도 난 아직도 내 나이가 그 시절 할머니 나이가 된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때 내가 할머니와 살던 그 집터는 지금 광명시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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