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에서 사는 것은 불편함 투성이었다. 특히 오래된 구옥은 더 그렇다. 연탄보일러일 때는 수시로 꺼지는 연탄 때문에 심심찮게 냉골이 되었다. 기름보일러로 개조한 후에도 보일러실이 추워지면 물탱크가 얼어붙어 보일러관이 터졌다. 그래서 수리하는 동안 또 냉골에 살아야 했다.
여름이면 비가 새서 밖은 가랑비인데 집 안은 장대비가 내렸다. 곳곳에 양동이며 세숫대야, 국냄비까지 온갖 살림살이가 비받이로 사용되었고 물이 차오르기 전에 비우지 않으면 금세 온 방이 한강이 되었다. 한강변 근처의 구옥들은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마다 하수가 역류 해 집안으로 물길이 덮쳐 수해 피해를 입는 집들이 많았다. 그 시절 내 꿈은 겨울에는 보일러가 안 터지고, 여름에는 비가 새지 않는 집에 사는 것이었다.
사람 마음 간사해서 어딜 가나 불평 거리가 넘나 든다. 아파트는 편리한데 이 또한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랫집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 꼰지발로 걷거나 층간소음 방지용 두터운 스펀지 슬리퍼를 신어야 한다. 아이들이 제법 자라서 층간소음방지용 매트는 걷어냈다. 아래층에 민폐만 조심 거리가 아니다.
우리집 지붕 위로 쌍무지개가 떴네요.
윗집의 소음도 만만찮다. 우리 윗집에는 젊은 부부가 사는데 가끔 요란하게 부부싸움을 한다. 창문을 열어두는 계절이라 그 소리가 고스란히 들려오고 온 가족이 숨죽이며 속삭인다.
"어쩌지? 신고해야 하나?"
"그렇지? 물건 던지는 소리가 너무 요란한데?"
"엄마, 거실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뛰어다니는 것 같지 않아?"
"우리 집에서 하는 얘기 소리가 위층까지 들리지도 않을 텐데 우리 왜 속삭이며 말하는 거야?"
"그러게... 근데, 조용히 있어야 할 것 같지?"
비밀이 없는 공동주택의 생활에는 나름 예의가 필요하다. 나의 편리함을 조금 내려놓고 적어도 위, 아래층을 배려하며 살아야 하고, 조금 불편해도 참아야 하는 무언의 약속 같은 것 말이다.
늦은 저녁 열린 창으로 고소고소 전부 치는 냄새가 솔~솔~ 들어오더니 순식간에 집안 전체를 명절 전날 집안 공기처럼 기름 냄새로 뒤덮었다.
"엄마, 맛있는 냄새나지 않아?"
"그러네? 아래층에서 전 부치나 보다."
(아래층에는 의자매 동생이 산다.)
"전, 하면 또 이모가 부친 전이 최고지."
"그렇지? 기름 냄새가 정말 맛있게 올라오는데 물어볼까?"
"혹시 전 부쳐?" "아니? 안 그래도 냄새나길래 언니가 부치나 했지." "밥 먹기 귀찮아서 저녁 패스했는데, 와~~~ 냄새가 장난 아냐. 너무 맛있게 나네." "안 그래도 울 남편이 언니랑 같은 말을 해서 부칠까 말까 생각 중이었어." ㅋㅋㅋㅋㅋ "생각 다 하면 얘기해."
그렇게 까똑으로 한 참 수다를 떨고는 물 한잔 마시고 꼬르륵 거리는 배를 토닥토닥 달래며 글을 읽고 있는데 까똑이 들어왔다.
"쫌만 기다려. 못 참고 부치고 있어. 금방 돼."
10분쯤 지나니 동생의 전이 올라왔다.
감자채를 듬뿍 넣고, 부추를 송송 썰어 향을 더한 '부추 감자전'이었다.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더니 아래층에 사는 동생이 최고다. 매일 얼굴 마주하며 산 지 7년이 넘어간다. 때로는 얼굴 붉힐 일도 있었을 텐데 한 번도 감정적으로 부딪친 적이 없다. 4남매 장녀인 동생은 생각도 마음도 넓어 나보다 어른스럽고 심성이 온화하다. 위아래층에 살며 서로 보듬어 가는 세월이 하루하루 더해질수록 형제와 다른 정이 깊어가는 것 같다.
'전'하면 역시 동생의 전 맛이 일품이다. 오래도록 시어머니를 모셔서 전 부치기 달인이 다 되었다. 입 짧은 앵글이가 동생의 '전'은 '찜'해 두고 먹을 정도다.
모두 달겨들어 젓가락 공격 "아 놔~ 사진 찍어야한다고...!"
채소를 듬뿍 넣고 튀기듯 구워 낸 부추 감자전이 올라왔다. 식탁 위에 놓기가 무섭게 순식간에 식구들이 한판씩 걷어갔다. 이래서 내가 사진을 못 찍는 거다. 인별 그램을 못하는 이유가 여기서 나온다. 음식이 나오면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찰칵찰칵' 찍어줘야 아주 이쁜 사진을 담을 수 있는데 고 이쁜 순간을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뺏길 대로 뺏긴 후 남은 '부추 감자전'을 쓸쓸히 찍어보았다.
웬만한 음식은 대체로 만드는데, 돈가스, 오징어튀김처럼 기름에 튀기는 음식과 전은 1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하다.
8남매 장남이신 아버지 덕에 명절마다 집에 모이는 가족들이 아버지의 직계형제와 사촌들의 인원만 38명이다. 전라도가 고향이신 부모님의 명절 준비는 휘황찬란하다. 상다리가 버티지 못할 만큼 음식 종류가 많아서 밥과 국은 땅에 내려놓고 먹어야 할 정도였다. 전 종류만 무려 15가지가 족히 넘고, 가족들에게 싸줄 몫까지 만드시니 전부 치는 시간만도 10시간이 넘게 걸렸다. 명절마다 전 담당이었던 종갓집 외딸인 나는 기름 냄새만 맡아도 기절각이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엄마가 만든 전 음식은 맛보기 어렵다. 결혼 후 시가에서 명절상을 준비할 때도 사정 얘기 들어주시고 전 부치기에서 열외 시켜주셨다. 그도 그럴 것이 전을 부치고 나면 입덧 증상처럼 속이 울렁거려 명절 연휴 내내 밥을 못 먹는다. 다행인 것은 4남매 중 막내아들에게 시집을 와서 잘 못해도 그러려니 이해해 주시는 듯하다.
'바삭바삭' 음성지원이 되었으면...
전 요리 잘 못하는 날 위해 가끔씩 부침을 할 때마다 식구들 나눠먹을 양만큼 부쳐서 가져다주는 고마운 동생이 아래층에 산다. 전에 살던 집 아래층에 소음에 유난히 민감한 이웃이 살아서 하루에도 몇 번씩 인터폰을 울리고 찾아오는 통에 이사를 하게 됐다. 어쩔 때는 집에 홀로 있는데도 아이들 뛰는 소리가 난다며 인터폰을 했고, 오래간만에 이웃이라도 놀러 오면 익숙하지 않은 발소리가 난다며 인터폰을 했다. 도저히 맞추고 살 엄두가 나지 않아 이사할 집을 알아보는데 마침 위, 아래층 모두 공실인 집을 찾게 되어 동생과 함께 이사를 했다. 공동주택이지만 서로 품앗이하며 살아가니 전원주택 부럽잖다.
오늘도 동생 덕을 톡톡히 봤다. 냄새 폭격으로 부러워만 하고 기름 요리 못하는 날 배려한 동생의 마음이 느껴져 뭉클한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