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운 Sep 12. 2021

 '전' 한번 부쳐 보겠습니다!

 명절에만 '전'부치라는 법 있나요?

일 년에 한 번 부칠까 말까 한 그 '전' 제가 한번 부쳐 보겠습니다!!


지난주부터 창 밖에서 솔~솔~ 기름 냄새가 거실 안을 가득 채웁니다. 추석이 다가와서 일까요? 지난 주말에는 아래층 동생에게 까똑 확인까지 했다가 맛있는 부추 감자전을 선물 받기도 했었죠. 아니, 그런데 이삼일이 멀다 하고 계속해서 고소 고소한 기름 냄새로 공동주택을 가득 메우는 만행(?)을 저지르는 이웃(^^)들이 계십니다. 그렇게 맛있는 냄새로 이웃에게 고통을 주시려면 나눠주시든지요... 어제저녁에도 역시나... 지글지글 고소한 기름 냄새가 거실 한 가득 채우고야 말았습니다. 잠시 후 까똑 알림이 울립니다.


아래층 동생의 까똑 문자



하하하! 기름 냄새의 주범이 자기가 아니랍니다. 뜬금없이 '나 아녀! 예정도 없어!' 하길래 아기 가졌는 줄요... 하하하! 매일 저녁 동생집과 저희 집을 맛있는 냄새로 유혹하는 집은 어디일까요? 기름의 유혹을 뿌리치고 애써 잠을 청했습니다.


그! 러! 나!! a.m.05:45

아이쿠야! 잠이 깨 버렸습니다. 우짤 까나요? 침대에서 뒹굴뒹굴 브런치에 올라온 새 글을 읽으며 마음의 소리를 외면해 봅니다.


"로운아~ 너 전 부치는 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잖니?"
"그래도 내가 부치면 식구들 잘 먹고, 아래층 동생집도 가져다줄 수 있잖아."
"그런데 전 부친다고 몇 시간 서 있으면 기름 냄새 때문에 정작 너는 못 먹을 텐데..."
"그렇지, 난... 기름 냄새 싫어하지."
"그래, 그래. 아주~ 잠깐이야. 잠깐 외면하면 하루가 편해."
"아니야!! 이렇게 침대에서 뒹굴거리느니 뭔가 하는 게 낫지 않겠어?"
"일요일은 짜~빠게티 먹는 날이라고 CM송도 있잖아. 왜 그러겠어. 주말에는 주부들도 좀 여유롭게 보내라는 뜻이잖아."
"어차피 된장국도 끓여야 하는데 채소 다듬는 김에 조금 더 움직이지 뭐."


아무리 생각해도 일을 저지르는 편이 마음이 편하고 좋겠습니다. 그래서 딱! 결심했어요.


"뭐, 명절에만 전 부치라는 법 있어? 아무 때나 먹고 싶을 때 만들어 먹으면 되지. 그래, 그래. 그 편이 낫겠어."


냉장고를 열어보니 기본 채소는 다 있는 것 같습니다. 전으로 부칠만한 것들을 꺼내서 모아봅니다. 가지, 애호박, 양파, 두부, 팽이버섯, 굴비... 그리고 된장찌개용 미나리, 두부, 애호박, 느타리버섯, 양파...


"음... 그래, 동그랑땡 재료가 없는 게 얼마나 다행이야. 손 많이 가는 동그랑땡! 넌 빠지렴. 오늘은 채소전이닷!"




벗기고 씻고 자르고 소금 살짝 간 해서 밀가루 입히고 계란물 적시고 프라이팬에 자글자글 구우면 완성!! 말이 쉽지 하나하나 과정은 장난이 아니에요...


오늘 열 일 할 채소들


일단 뽀드득, 뽀드득 채소를 씻어주었죠. 그리고 썰기 시작!!


채소를 썰어서 밑간까지 솔~솔~
두부는 채에 받쳐 소금간 솔솔~ / 전부치기 채소준비 완료!!






이제 전을 한 번 부쳐볼까요?

 

제가 전을 잘 안부치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종갓집 외딸로 너무 오래 살다 보니 명절 때마다 전 부치는 기름 냄새에 고생을 좀 했거든요. 하지만 오늘은 몇 가지 전만 맛보기로 부칠 거라 괜찮을 거예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호박전이에요.



만들기 쉽고 달큼하니 맛있는 애호박전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예요. 좋아하는데도 잘 안 만드는 것을 보면 전 부치기 어지간히 싫어하긴 하는 것 같죠?


동글동글 가지전


가지가 몸에 좋은 것은 다들 아시죠? 몸에 좋은데 아이들은 나물로 무쳐두면 잘 먹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가끔 전이나 튀김옷을 입혀 튀김으로 만들어줘요. 가지 튀김을 만들어서 탕수소스를 찍어먹으면 맛이 또 일품이거든요.


양파전은 좀 생소하신가요?


제가 좋아하는 채소 중 하나는 양파예요. 양파만 채 썰어 나물을 만들어 먹기도 하는데 아래층 동생은 곁들이는 양파가 아니라 오직 양파만으로 볶아 나물을 만들어먹는 것을 보고 신기해하더라고요. 동글동글 썰어서 한 덩이로 약불에 구우면 달큼하고 아삭한 양파전이 돼요. 양파가 익으면 단맛이 더해지잖아요? 생각보다 아이들도 잘 먹어요. 오늘 동글이는 저렇게 커다란 양파전을 세 개나 먹었습니다.


고소고소 두부전



두부는 거의 매일 상에 오르다시피 하는 단골손님이죠? 계란옷을 입혀서 구우면 촉촉한 두부 식감을 유지시켜줘서 더 맛있어요. 동글이와 첫눈에 반한 남자는 없어서 못 먹는 두부 부침이예요. 저와 앵글이는 두부를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데 오늘은 신기하게도 앵글이가


"엄마, 내가 두부를 싫어하잖아. 그런데 오늘 두부전은 정말 맛있어. 봐~ 내가 다 먹었지?"


그러네요. 앵글이는 어릴 때부터 두부를 잘 먹지 않았는데 오늘은 밑간이 좀 잘 되었는지 잘 먹네요. 국산콩 초당두부를 샀더니 비싼 값을 하는 걸까요? 재래시장에 가면 직접 만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두부가 있잖아요? 특별한 조리 과정 없이도 양념간장 꾹 찍어 먹으면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지잖아요. 오늘은 두부전을 구우며 일부러 맛 내지 않은 갓 나온 두부가 생각나네요.


신박템 소개합니다. '기름 잡는 만능 프라이캡' 정말 냄새도 잡아주고 사방으로 튀는 기름도 잡아주는 효자템이예요. (내돈내산/광고아님)
짭조롬한 굴비전 / 프라이캡을 씌우면 집 안에 생선굽는 냄새도 잡아주고 기름도 튀지 않아서 좋아요.



마지막으로 짭조름한 굴비전이에요. 앵글이와 동글이는 굴비밖에 먹지 않아서 집에서는 굴비만 구워 먹어요. 다른 생선들은 식당에 갔을 때만 맛보게 되죠. 생선을 구울 때 프라이 캡을 씌우면 집 안에 생선 굽는 냄새도 잡아주고 기름도 튀지 않아서 좋아요. 앞 뒤 노릇노릇 구워질 동안 전을 구웠어요. 생선은 굽는 시간이 좀 오래 걸리잖아요.


노력한 보람이 느껴지는 전을 한 상 차려보았어요.



아침부터 씻고 다듬고 썰고 묻히고 굽느라 애쓴 보람이 느껴지네요. 한 상 가득 차려두니 부자가 부럽지 않아요. 오늘은 뷔페로 먹어보려고 해요. 그래서 식구들을 불렀어요.


"오늘은 먹고 싶은 것 골라서 각자 챙겨 먹기! 먹고 또 먹는 건 되지만 남기는 건 안돼요. 벌금 있습니다. 국은 뜨거우니 필요하신 분만 말씀하세요. 가져다 드릴게요~"

"우와~ 엄마, 오늘 무슨 날이야? 엄청 맛있겠다."

동글이가 접시 가득 욕심을 냅니다.

"그거, 정말 다 먹을 수 있어?"

"그럼. 엄마가 만든 전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


동글이는 전 부칠 때 살짝 와서 이미 맛을 보았거든요. 한 가득 가져가더니 싹싹 접시를 비워냅니다. 키가 크려는지 요즘 식사량이 조금 늘었어요. 남편은 된장찌개까지 곁들여 비워냅니다. 역시 갓 구운 전 맛은 두말하면 잔소리네요.




금번 명절에도 온 가족 모이는 것은 지양하자고 의논이 돼서 올 추석도 네 식구 연휴로 보내게 될 것 같아요. 그렇다면 굳이 추석까지 기다릴 필요 있나요? 먹고 싶을 때 만들어 먹으면 되죠. 지난주 아래층 동생의 고운 마음씨 덕에 부추 감자전을 맛있게 먹었잖아요? 사람살이가 맨입으로 정이 쌓아지나요? 오늘은 제가 품앗이를 해 보렵니다.


동생집으로 내려갈 모둠전



띵동~ 띵동~

"어? 언니~ 아침부터 전 부쳤어? 에너지가 짱이셔."

"응. 지난주 네가 준 부추 감자전 대신 오늘은 모둠전이야. 아침 먹기 전에 주려고 새벽부터 부산 좀 떨었지."

"고마워~ 잘 먹을게."


이웃 간의 정이 그렇잖아요. 지난주 올라온 접시에 뭔가 한 가득 채워 내려주면 마음도 풍성하고 좋죠. 이래서 가끔은 돌려주지 않아도 좋을 용기에 담아서 나눠주기도 해요. 씻어서 빈 그릇을 보면 그냥 주기 민망할 때가 있더라고요. 오늘은 이웃집 어르신 댁에도 한 접시 가져다 드리렵니다. 물론 일회용 접시에 말이죠.




음력 달이 빨라서인지 추석이 너무 일찍 찾아왔어요. 집 앞에 논이 아직도 초록 초록합니다.


창 밖의 풍경

바람과 빗줄기에 쓰러진 벼들도 보이시죠? 저희 집이 뷰 맛집이라 눈 아래는 논이 보이고 눈앞에는 초록 논과 마을, 그리고 푸른 하늘과 저 건너 산까지 훤히 다 보입니다. 작년, 올해 집 안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 답답하지만 그래도 하루 몇 번씩 해가 뜨고 지는 풍경과, 푸른 하늘, 맑은 구름이 보여서 답답함을 잊게 해 주죠. 땅 아래 논두렁은 신기하게도 태풍이 오고 비바람이 몰아쳐도 자연재해를 이겨내며 잘 자랍니다. 자연은 정직해서 애쓰는 농부의 수고도 알아주고, 때가 되면 열매를 주죠.


오늘은 아침부터 분주했지만, 가족들이 맛있게 먹어주고 엄지 척해주니 기분이 아주 좋네요. 일상 속에서의 행복이 뭐 별거 있나요? 무탈하게 잘 지내고 하하호호 웃음 가득하면 그것이 또 사는 기쁨이고 행복이죠. 모두 모두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



오늘도 부지런한 로운입니다.








 

이전 17화 가을 고구마로 바사삭 고구마튀김 만들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