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8일(목)은 수능시험일입니다. 이번 주(11월 5일)까지 해서 수시 1차 합격자 발표를 마친 상태입니다. 합격을 했다면 좋은 일이지만, 불합격을 했다면 어수선한 마음을 다잡고 시험 준비를 해야 하는 학생들의 마음이 얼마나 불안할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수능시험을 마친 다음 날부터 합격자 발표를 하면 안 되는 걸까요? 1차 합격 통보를 받은 학생들은 들떠서 멘털 관리가 안 될 것이고, 불합격을 한 학생들은 불안함이 가중되어 멘털 관리가 안될 것입니다. 3년 동안 준비해서 보는 시험인데 시험 직전에 발표를 하면서 학생들 스스로 멘털 관리를 하도록 하는 이 제도가 조금 씁쓸합니다.
금요일 앵글이의 하교. '띠띠띠띠 띠리링~~~'
"엄마~ 공주 왔습니다~"
"네 입으로 '공주'라고 말하는 건 좀 그렇지 않니?"
"왜? 내가 공주면 엄마는 왕비가 되는 건데 좋지 않아?"
싱거운 말로 무심한 듯 인사를 나누는 앵글이는 고2입니다.
"엄마, 그런데 오늘까지 해서 수시 합격 발표가 끝났어. 선배들이 이번 주에 울고 불고 난리가 났었어."
"그래? 이번 주가 시험 발표였어?"
"응, 그런데 수능 시험 직전에 합격자 발표를 하는 건 좀 아니지 않아? 멘털을 다 털어놓고 수능을 보라고 하는 건 좀 잔인하지."
"그러네? 왜 그렇게 할까?"
"나도 내년에 고3이잖아. 아휴~~ 상상만 해도 끔찍해. 나도 불합격되면 멘털 나가서 수능 망칠 것 같은걸?"
"어차피 최종 합격은 12월에 발표 나는데 수능 끝나고 1차 발표하면 안 되는 건가?"
"그러니까... 제도를 만드는 분들은 학생들 생각을 전혀 안 하는 것 같아."
"엄마도 네가 고등학생이 되었으니까 이런 부분까지 세세하게 알게 된 거지 그 전에는 관심이 없었는걸."
"엄마, 생각해봐. 수시 원서 내고 발표 날 때까지 얼마나 조마조마하겠어. 그래도 1차 합격하면 기분이라도 좋지. 지금 떨어진 선배들은 이번 주에 계속 울었어. 이런 기분으로 수능을 어떻게 봐?"
"엄마, 아무리 알고 있어도 떨어진 거 알게 되면 '정시' 밖에 답이 없는 건데 시험공부를 한다 해도 집중이 되겠어? 차라리 수능 다음날 발표를 하던가... 이래서 재수생이 훨씬 유리하다니까? 재학생은 수행평가, 중간고사, 기말고사, 모의고사 보면서 수능 공부까지 해야 하는 거잖아. 그것만 하나? 학종 관리하느라고 동아리도 해야 하고, 학교에서 하는 각종 대회도 나가야 하고, 해야 하는 게 얼마나 많은데... 이러다 나도 재수하게 되는 거 아니야?" "일단 해보는 데까지 해보고도 안되면 그렇게 되겠지. 열심히 준비해도 수능 당일에 아플 수도 있고, 준비한 만큼 성과가 안 나올 수도 있으니까..."
"엄마, 수능이 다가오니까 이제 내 차례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두근두근해. 진짜 올게 왔구나 싶다니까?"
"그래도 1년 남았으니까 너무 불안해하지 마. 대학만이 답은 아니니까 열심히 해 보고 안되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면 돼."
"엄마, 내가 일단 열심히 해서 가급적 재수를 안 하도록 해 볼게. 내가 재수하게 해달라고 하면 엄마가 학원비는 내주겠지만 안 하면 더 좋은 거잖아? 해보는 데까지 해 볼게. 내가..."
"철든 소리만 하니 완전 감동이네... 고맙다. 아주 많이... ㅎㅎㅎㅎㅎ"
앵글이만 힘든 것은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수험생들... 재수생과 고등학생들 모두 같은 마음으로 불안을 품고 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입시를 아이들만 겪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된 우리들도 그 과정을 겪어왔습니다. 제도가 바뀌고, 입시 유형이 바뀌었어도 우리도 그 시절에는 불안했고 힘들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니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잊고 현재를 살아가고 있을 뿐이죠.
부모가 되고 나니, 나도 걸었던 그 길을 아이가 걷고 있으니 왠지 더 안쓰럽고 마음이 쓰입니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이 올 거라고 그 시절 어른들도 말씀하셨고, 저도 역시 그렇게 말을 하고 있지만 세월이 지난다고 입시가 주는 부담이 사라지지는 않겠죠.
앵글이는 학원에 다니지 않고 인강을 들으며 집에서 혼자 공부합니다.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6개월 정도 학원에 다녔습니다. 그런데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는 엄마에게도 미안하고, 학원에 오가는 번거로움과 과목과 과목 사이에 비는 시간을 카페 등에서 기다리며 채우는 것이 힘들다고 하며 스스로 선택했습니다. 혼자 어려운 부분을 찾아 강의를 듣고 공부하는 것에 잘 적응하고 있어서 다행이라 여겨집니다.
입시에 대한 공론은 우리나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달에 읽었던 '공정하다는 착각(마이클 샌델)'에 보면 '학력에 따른 차별'에 관하여 꼬집은 내용이 있습니다. 다른 나라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학부모가 있고, 어쩌면 우리나라보다 더한 입시비리도 있습니다. '평가'의 기준으로 치르게 되는 시험에서 순위를 나누려다 보니 뾰족한 선택지가 없는 것도 현실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하루하루가 안타깝지만 딱히 도와줄 것도 없습니다. 본인들이 짊어지고 있는 스트레스에 엄마까지 더해 부담을 얹어주지 않는 정도가 엄마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자신들의 처지를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안쓰럽지만 그 길은 엄마도 걸었노라고, 엄마도 그 시절이 힘들었었노라고 이야기해 주는 것이 아이와 공감하는 말의 전부인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의 한 자락은,
아이들이 3년을, 혹은 12년을 준비해서 치르는 시험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도록 학생들을 배려한 제도로 다듬는 과정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시험 직전에 아이들의 마음을 어수선하게 흩어 놓고 그 또한 너희들이 이겨내야 할 과정이라고 하는 것은 조금 잔인하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년의 학업을 정리하는 시험에서 자신들이 가진 역량 이상으로 좋은 성과가 나길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수험생들의 좋은 결과를 위해 기도하는 로운입니다.
추신.
앵글이버드
동글이가 누나 마스코트라며 아나바다 장터에서 사 온 선물입니다~^^
'앵글이' 예명으로 궁금해하시는 분들의 질문
● 사춘기라서 '버럭' 화를 내서 앵글인가요?
- 아니요...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앵글이가 조금 작고 체형이 마르고 코가 오뚝해서 친구들이 삐약이, 병아리, 앵글이 버드라고 예명을 지어 불렀어요. 별명이 기분 나쁘냐고 물었더니 귀여워서 맘에 든다고 얘기하더라고요. ㅎㅎ
- 동글이 예명을 먼저 짓다 보니 돌림자로 앵글이가 되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앵글이랑 좀 닮은 듯도 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