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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Mar 18. 2022

아내 없이 장인, 장모만 모시고 여행 가는 사위

지난 1월, 친정아버지의 78세 되는 생신날이었습니다. 부모님께서 건강하게 해로하는 것은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부지런한 아버지께서는 한 시도 가만히 쉬는 법 없이 77년을 살아오셨습니다. 그래서일까요? 78세의 연세에도 지병 없이 건강하십니다. 하루 세 번에서 다섯 번의 끼니를 챙겨 드시며 부지런히 움직이시니 어르신들의 흔하디 흔한 당뇨, 고혈압도 없으시고, 시력도 좋으십니다.


아버지의 생신을 맞아 잔치상은 준비 못해도 맛난 음식을 대접해 드리고픈 마음이었지만, 방역 강화로 식당에도 갈 수 없고, 수술 후 회복 중이라 팔을 쓸 수 없으니 음식을 만들 수도 없었습니다. 남편은 마음이 분주할 아내를 위해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사고, 유명 맛집에서 음식을 포장해 왔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조촐하지만 정이 가득 넘치는 한상 차림으로 점심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차와 다과를 함께 나누며 두런두런 대화의 장이 펼쳐졌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대화의 소재가 계속해서 바뀌고, 어쩌다 보니 여행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코로나 이전에 함께 제주도에 가자고 했던 약속이 코로나가 길어지며 미뤄지고 미뤄져 못 간 것이 아쉬우셨던 어머니께서는 '덕유산 설경'을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의 표정을 보니 꼭 가고 싶은 의지가 번쩍번쩍 보였습니다. 방역 강화로 4인 이하만 숙박이 가능하고, 식당에도 4인 이하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6명이 함께 여행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오른팔 재활치료로 주 3회 병원을 오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함께 여행을 가도 짐덩어리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미적거리며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남편이,


"어머니! 저랑 아버지랑 셋이 여행 가시죠! 마침 저도 오늘 급한 일 하나가 마무리됐고, 내일과 모레 좀 여유로워서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라고 했습니다. 사위의 말을 듣자마자 어머니의 얼굴에는 꽃 같은 미소가 번졌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온몸으로 좋아하시는 그 표정은 어머니에게서 자주 보기 어려운 모습입니다. 어머니께서는,


"진짜? 자네 진짜 갈 텐가? 나야 자네가 같이 가주면 너무 좋지. 취소하면 안 되네... 나 정말 가고 싶었어!"

"진짜로 가요. 제가 두 분 모시고 가죠. 로운이 빼고, 아이들도 빼고 셋이 가요. 가서 우리 신나게 놀고, 맛있는 거 먹고 그러죠 뭐..."


두 분 쿵짝으로 급 여행이 결정되고, 순식간에 덕유산 산채 예약을 했습니다.


"엄마, 딸 없이 사위랑만 여행 가는데 그렇게 좋아요?"

"좋지. 너보다 사위가 훨씬 좋지."


사위를 워낙 좋아하셔서 가끔 아들이라 착각하시는 친정 부모님이십니다. 그래서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합니다. 너무 편하게 대하시니 제 마음 한 구석 부채감 같은 것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남편은 진심으로 부모님을 섬기고 챙기는데 제 마음은 어딘가 모를 미안함에 분주합니다. 아내 없이 장인, 장모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남편이 있는 저는 참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다음날 새벽 6시.

사부작사부작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가봅니다. 남편 홀로 여행 짐을 챙기느라 분주합니다. 부모님께서 산에 오르실 때 사용할 등산스틱도 챙기고, 저녁에 함께 놀이할 화투도 챙기고, 본인 짐도 챙기고... 제가 맡은 것은 여행 다음날 아침 거리와 간식입니다. 보냉 가방에 아침 거리를 넣고, 오가는 길 운전하면서 마실 커피와 간식거리도 챙겼습니다. 그리고, 남편을 배웅하며 진심으로 고맙다, 사랑한다 말해주었습니다.



덕유산으로 향하는 길 중간중간 궁금할 아내를 위해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줍니다. 휴게실에서도, 차 안에서도, 식사를 할 때도, 산을 오를 때에도, 장소를 옮길 때마다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는 남편입니다. 그때마다 고맙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밤이 되고 부모님과 함께 화투놀이를 하며 또 사진이 올라옵니다. 부모님의 표정에는 행복이 가득 묻어납니다. 오가는 길 부모님을 모시고 교대 없이 계속 운전하며 모르는 길을 찾고, 주변 관광지와 맛집을 검색하며 최선을 다하는 남편이 너무나 고맙습니다.



덕유산에서 내려와 점심식사를 하던 중 어머니께서 '청남대'를 가고 싶다고 하셨나 봅니다. 이동 중이라 검색을 할 수 없으니 관람시간을 알아봐 달라는 카톡이 들어옵니다. 동절기에는 오후 3:30 이전에 입장을 해야 한다고 전해주었습니다. 덕유산에서 청남대까지는 1시간 30분 거리이고 출발 시간이 2시였습니다. 청남대에 들르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여 가까스로 시간에 맞춰 도착한 남편에게서 사진과 함께 카톡이 들어옵니다.


"겨우 도착!"



꽃같이 활짝 웃고 계신 부모님의 사진과 함께 '청남대'라고 적힌 현판이 우람하게 보입니다. 아버지께서 해맑게 웃고 계신 사진을 보니 울컥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저리도 좋아하시는데 자주 못 해 드리고 살았구나... 싶어 가슴이 먹먹합니다. 그리고, 두 분께 추억을 선물해 준 남편의 마음이 고맙습니다.



남편이 친정부모님을 섬기는 모습을 보며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남편의 노력은 '내가 너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적극적인 표현일 것입니다. 제가 시부모님을 어렵게 느끼듯, 남편도 친정부모님이 어렵고 불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부모님을 어려워하는 저와 달리 제게 없는 친근함과 다정함으로 부모님께 애정표현을 아낌없이 전하며 감싸 안아 드립니다.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볼 때마다 참 고맙습니다.



코로나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답답해하시는 부모님을 모시고 아내도 없이 여행을 가는 일은 쉬운 선택이 아님을 압니다. 마음이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더욱 고맙습니다. 어른을 모시고 낯선 길을 찾아가며 운전하고, 맛집과 주변 관광지를 찾아다니며 정성을 쏟았을 것입니다. 여행 후 부모님께서는 흡족해하시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주셨습니다.


"여보~ 우리 다음부터는 같이 다니자. 부모님 모시고 혼자 다니니까 엄청 힘들더라."

"힘들 것 같았어. 여행 이야기가 나왔다고 계획 없이 갑자기 결정을 하니까 그렇지... 안 그래도 걱정이 되더라."

"왔다 갔다 하는 건 괜찮았어. 부모님도 좋아하시고... 그런데 당신이 없으니까 혼자 맛집 찾고, 관광지 찾고,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

"그렇지~ 같이 못 가서 미안해."

"어차피 당신 아파서 갈 수도 없었고, 코로나라 6명이 움직일 수도 없었는데 뭘..."


1박 2일 동안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다녀온 남편은 돌아온 후 하루 꼬박 몸살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좋아하시는 부모님을 뵈며 같이 여행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야기해주니 얼마나 고맙던지요...


"여보~ 그런데 내가 왜 장인, 장모님 모시고 여행 다녀왔는지 알아?"

"왜?"

"장인, 장모님께서 당신을 지금보다 더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서야. 내가 당신을 사랑하니까 부모님께도 잘하고 싶은 거지."


말 한마디를 해도 이렇게 예쁜 말만 골라하는 남편에게 어떻게 바가지를 긁을 수 있을까요... 없던 잔소리도 쏙~ 들어가게 만드는 남편입니다.


가끔 남편과의 에피소드를 글로 남깁니다. 글을 읽은 남편의 말...


"사람들은 너처럼 남편 자랑하는 글을 싫어해. 같이 욕하는 재미가 있어야지... 이런 글은 쓰지 마!"


라고 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예쁜 모습을 보일 때면 욕먹을 각오를 하고 자랑해야지 어쩌겠어요...



고슴도치 엄마에서 팔불출 아내가 된 로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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