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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Jun 29. 2022

'시누이' 지칭은 '시누이'도 싫어요.

'시누이' 말고 '동네 친한 언니' 정도는 어때요?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

시누이가 얼마나 싫었으면 이런 속담이 생겼을까요? '시누이'의 입장이 되고 보니, '시누이'도 '시누이'라는 지칭이 싫습니다.


요즘 말로 '빡쎈' 시집살이를 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딸들은 어릴 때부터 '시집살이의 고충'을 듣고 자랍니다. 어머니도 하소연할 곳이 필요하셨을 테니까요. 요즘처럼 다양한 소통의 기구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만만한 '딸 하나'는 말벗도 되고, 샌드백도 되어주었을 테지요. 어머니들은 시집살이를 시키는 시어머니보다 시어머니 뒤에 병풍처럼 선 시누이들의 '간교한 이간질'에 더 학을 떼십니다. 시어머니는 부모이기에 잘 섬기고, 노력하면 이쁨 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라도 있는데, 또래인 '시누이'와 평행선에서 친해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나 봅니다. 살랑살랑한 새 며느리에게 딸 자리까지 빼앗길까 형제의 난을 치를 만반의 준비를 하며 맞은 며느리였기에 마냥 곱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요?


'시누이'라는 지칭을 달게 된 20년 전, 우리 집에도 외며느리가 생겼습니다. 소개팅으로 만난 예비 올케를 소개하며 배우 '명세빈'을 닮았다며 오빠 입이 귀에 걸렸던 그날, 그 표정이 생각납니다. 오빠가 좋아하던 배우와 닮은 그 여인은 지금 우리 집 외며느리로 오빠의 사랑을 듬뿍 받고 아이 셋을 키우며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올케가 우리 집 호적에 올라선 그날부터 저는 약간의 거리두기를 하며 지냅니다. 저보다 나이 어린 손위 올케의 마음이 불편할까 염려되어 올케가 연락을 줄 때만 반갑게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시'자가 앞에 붙는 순간부터 잘해도 불편하고, 잘못하면 더 불편한 관계가 되어버립니다. 정말 잘 지내고픈 마음인데 서로가 서로에게 '솔직하게' 다가가기가 어렵습니다. 나는 말을 하고 있는데 상대방은 '꿍꿍이'가 있는 것처럼 들어버릴 수 있으니까 말이죠.


타국에 사는 오빠 가족이 3주 전에 한국에 들어왔다가 돌아갔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 마음을 전해주려고 애를 써 보았습니다. 이번에 나왔다 들어가면 짧으면 3년, 길면 언제 또 오빠 내외와 조카들을 만날 수 있을지 기약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심이 전달되었는지 새언니가 보내 준 톡에 마음이 시큰해집니다.



톡방도 이번에 만들었습니다. 타국에 사는 오빠 내외가 궁금하긴 하지만 시누이와 함께 톡방을 꾸려가고픈 며느리가 얼마나 있을까요? 다행히 새언니가 먼저 톡방을 만들어 말을 건네주었습니다. 덕분에 가끔씩 안부도 전하고 아이들 커가는 사진도 오가며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마음을 건네 준 새언니가 참 고맙습니다.


종갓집 맏딸이자 외 딸로 자라 많은 사촌들이 있습니다. 사촌들도 나이가 들며 가정을 꾸리고 며느리들을 새 가족으로 맞이하게 되니 '시누이'라 불릴 일이 많아졌습니다. 가족도 제각각이라 마음이 더 가고, 더 많이 정 주고픈 새 가족도 있습니다. 최근 사촌형제 모임에서 제가 예뻐하는 동생의 아내가 함께 자리했습니다. 늘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게 되는 동생의 예쁜 아내입니다. 친하게 지내며 잘 대해주고 싶은데 그냥 '시누이'도 아니고, 큰집 '시누이'라 멈칫하게 됩니다. 어쩌면 더 살갑게 다가갈 수도 있겠지만 나이차가 좀 나다 보니 어려워할까 염려되어 그저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어릴 때 같이 자랐던 사촌 남동생이라 동생이 없는 제게는 친동생이나 진배없지만 서로 한참 커야 할 사춘기 이후부터는 명절 두 번 만나는 것이 전부였고, 이후에는 대소사가 있을 때나 마주 보게 됩니다. 어릴 때부터 효자였던 남동생은 엄마의 기대를 꽉 채울 만큼 성실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로 한 번도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으며 잘 자라주었고, 얼굴만큼 마음도 고운 아내를 맞아 깨가 쏟아지는 가정도 이루었습니다. 결혼식 때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어쩜 그리 예쁘던지요. 이후에도 대소사에서만 마주 보고 인사하며 지내지만 왠지 모르게 친해지고픈 동생의 아내가 있습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며느리 건 사위건 새 식구들은 태어나 서른이 넘는 시간 동안 남으로 살다가 사랑하는 이를 만나 가족이 됩니다. 가족이 되지 않고 동네 친구로 만났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면, 제 호감도를 반영했을 때 아마도 아주 친한 동네 언니, 동생쯤으로는 지낼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함께 만나 커피를 마시며 사는 얘기, 아이들 자라는 얘기, 가끔 남편 얘기도 나누고, 맛있는 음식이 생길 때마다 품앗이도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하필 며느리, 시누이로 만나 보이지 않는 선 하나를 드리우고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으로 지내게 되는 것이 아쉽고 섭섭합니다.


입장 바꿔서 생각해 보면, 시집살이 전혀 시키지 않는, 아니 오히려 막내라고 너무 이뻐하시는 시누이가 있는 저 또한 '시누이'에게 살갑게 다가가지 못합니다. 어쩌면 '시누이'도 제 마음처럼 먼저 다가와주기를 기다리고 계실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제가 좋아하는 동생의 고운 아내가 어제는 먼저 문자를 주었습니다. 얼마나 반갑던지요. '시누이'라는 지칭 떼고, '남동생의 아내'라는 위치도 떼고, 그렇다고 '가족 같은'이라는 명분도 붙이지 말고, 그냥 한 동네에 사는 '언니, 동생' 정도의 거리로 만나면 어떨까 상상해보았습니다.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더 낫다."는 옛말처럼,

가까운 이웃의 거리에서 생각날 때 커피 한 잔 나눌 수 있는 관계로, '시'자 떼고 그냥 '언니'로 살아가고 싶은 저는,


'시누이' 말고 '좋은 언니'면 어떨까요?




덧.

킴가다 작가님께서 알려주셔서 새롭게 배운 [가정 내에서의 호칭어와 지칭어]에 대하여 덧붙임을 추가하였습니다.


참고자료 : 호칭어와 지칭어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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