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보글보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운 Sep 05. 2022

명절 음식, 아직도 만드세요?

"슬기로운 한가위 생활"

아버지는 8남매의 장남이시다. 스물셋 어리다면 어린 나이에 시집 온 어머니는 층층 시야 종갓집 맏며느리로 50년 넘게 가족을 섬기며 살아오셨다. 너무 열심히만 살아오셔서 회한이 많으신 어머니와 2주째 동거 중이다. 살면서 엄마와 이렇게 오랜 시간 붙어 지냈던 적이 있었나? 싶은 생각에 머무르니 이래저래 짠하다. 사는 게 바빠 돌보지 못한 아쉬움이 가득 담긴 엄마의 푸념도, 엄마의 손길이 절실할 때 홀로 서느라 고군분투한 나의 외로운 설움도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희석되고 있음이 느껴졌다.


명절이면 작은집 식구들이 아이들과 함께 하나둘씩 집을 채우고, 누구랄 것도 없이 여자들은 짐을 내려놓기 바쁘게 주방으로 들어왔다.


"형님, 늦어서 미안해요. 준비하시느라 힘드셨죠?"


인사치레임을 알면서도


"무슨, 별로 한 거 없어. 거의 다 됐어. 적당히 챙겨서 밥 먹자!"


주고받는 인사에 진심이 묻어있었는지 그 속까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오랜만에 만나 서로 쉰소리하지 않고 반갑게 맞아주는 것이 맞이하는 이도, 찾아오는 이에게도 좋은 일이다.


전라도 밥상은 '적당히'가 없다. 말만 적당히일 뿐 차려놓고 나면 밥그릇, 국그릇 놓을 곳 없을 만큼 밥상이 빼곡하다. 한 젓가락씩만 집어 먹어도 다 먹지 못할 만큼 차려놓고서도 늘 '차린 것이 없다' 말하는 엄마는, 사실 그 많은 음식을 준비하느라 한 달 전부터 쎄가 빠졌다. 어릴 때 나는 그런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다. 종갓집 외딸 인생에서 젤로 이해되지 않는 말이 '차린 것이 없다'는 말이다. 엄마를 돕느라 국민학교 때부터 명절 증후군이 생겼던 나다. 도대체 얼마나 더 차려야 진수성찬인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우리 집 명절 상차림은 오빠와 나의 결혼과 오빠 가족의 해외 진출로 멈춰졌다. 며느리, 딸 없이 엄마 혼자 준비하던 명절은 한 두 해 정도 버텨내셨지만 조금씩 간소화되었다. 그나마도 작은 집 아이들이 하나둘씩 결혼을 하면서 발걸음이 뜸해졌고, 개개의 가정에서 명절을 나고 잠시 인사차 들르는 정도로 명절을 보내다 보니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지던 음식상은 다과상으로 변하게 되었다. 먹거리가 귀한 시절에는 맛난 음식이 가득한 명절을 손꼽아 기다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눈 돌리면 먹거리 천지인 요즘, 맛난 것 가득 차려진 밥상에도 달려드는 아이들이 별로 없다. 그러다 보니 명절 음식에 허리 꼬부라지도록 애를 쓸 이유도 다. 제사마저 없는 우리 집 명절은 더더욱 그렇다.


종갓집에서 자란 나와 달리 단출하게 자란 남편을 만나며 우리의 생활도 조율이 필요해졌다. 명절에 며느리만 힘들겠는가... 객식구인 것은 사위도 마찬가지일 테니 서로서로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각자의 집을 커버하고, 의논해서 맞출 수 있는 부분만 함께하기로 규칙을 정했다. 낯선 우리의 규칙은 처음 몇 해, 모두가 낯설어했지만 점차 적응되어 지금은 되려 우리 부부의 방법대로 명절을 나고 있다. 하루아침 단박에 변화를 줄 수는 없으나 세월의 흐름 따라 우리네 관습도 각 가정의 사정에 따라 점차 바꿔나가는 것도 지혜인 듯하다.


 1단계. 명절 음식 간소화하기

-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정해서 한 끼에 메인 음식 한 두 가지와 밑반찬 정도로 상 차리기

- 이렇게 하면 매 끼 새로운 음식을 함께 먹고, 잔반이 없으니 다음 끼니에 같은 음식을 올리지 않게 되어 좋다.


2단계. 외식하기

- 매 월 회비를 조금씩 모아 (명절 두 번, 어버이날, 부모님 생신 등) 평소 자주 이용하지 못했던 고급 음식점에서 근사하게 밥 먹기

- 집에서는 차와 다과, 그리고 수다만 가득하게 되니 주로 주방을 지키던 여성들도 참여할 수 있어서 참 좋다.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 중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함께 이야기하며 윷놀이, 보드게임 등을 하며 즐기니 아이들도 좋아한다. 놀이하며 게임비를 모아 배달음식을 시켜먹기도 하고, 노래방, 볼링장 등으로 2차를 나가기도 한다.


3단계. 가족 여행하기

- 미리 연휴 앞 뒤로 휴가를 맞추고 제주도, 강원도 등으로 여행 가기.

- 조식 필수, 외식 필수! 잔 일 금지! 최고의 여행은 식도락!!


9월 2주 "슬기로운 한가위 생활"


해마다 형편에 맞게 명절 연휴를 보내봅니다. 어떤 가정은 함께 조리하며 음식을 나누는 것이 기쁨일 수 있고, 어떤 가정은 산으로 들로 여행 다니며 추억을 만들 수도 있겠죠. 그 모든 과정에서 모두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좋은 일입니다. 그래도 한 번 둘러보세요. 우리 집 며느리가, 사위가 혹시 소외되고 있지는 않은지, 가족들의 캐캐 묵은 옛이야기에 참여하지 못하고 어색한 웃음으로 묻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고 배려해주세요. 이왕이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현재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참, 자녀들에게 말을 건넬 때는,


"학교 잘 다니니?"

"담임 선생님은 좋은 분이시니?"


와 같이 의례적인 말은 가급적 피하고,


"공부 잘하니? 몇 등이야?"

"이번에 좋은 대학 갈 수 있겠니?"

"너 어느 대학 다닌다고 했지?"

"시집(장가) 안 가니? 사람은 있고?"


와 같이 아이들의 발끝에 놓인 절실한 문제에 대한 민감하고 신상을 캐는 질문은 피해 주시는 센스~ 잊지 마세요. 좋은 결과가 생긴다면 질문하지 않으셔도 들려올 거예요. 사랑이 담긴 걱정 어린 조언도 여러 분이 같은 질문을 던지시면 부담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럼 어떤 질문을 하느냐고요? 질문 말고, 정성과 사랑이 가득 담긴 용돈은 어떠세요?

집집마다 관심사가 다르겠지만,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눈높이에 맞는 대화를 나누고, 아이들의 수다를 그저 들어주심도 좋을 것 같아요. 이왕이면 즐거운 놀이와 편안한 휴식이 함께하면 더욱 좋지 않을까요?


금번 명절은 엄마의 수술로 병원에서 보내게 될 거예요. 엄마가 건강하게 잘 회복되셔서 산으로 들로 좋아하는 사진 많이 찍으러 다니셨으면 좋겠어요. 여러분께서도 즐거운 한가위 보내세요~


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보글보글과 함께하고픈 재미난 주제가 있으시면 언제든지 댓글로 제안해주세요.

참여를 원하시는 작가님들은 매주 일요일 주제가 나간 이후, 댓글로 [제안] 해 주시면 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쉼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