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프티 피플>에게 바치는 헌사
아무도 죽지 않았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정말 아무도 죽지 않고 살아주길 바랬다.
소설의 마지막 장,
영화관 건물의 화재로 모두가 옥상으로 대피했을 때,
알 수 없는 불안과 초조함이 다가왔다.
초를 다투는 비상상황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천천히 구조되면서도
끝까지 불안한 마음을 추스를 수 없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제발 아무도 죽지 마라. 다 살아야 돼. 전부 다.”
‘아무도 죽지 않았다.’
라고 쓰여 있는 문장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50명의 사람들과 만나
나도 모르게 그들과 가까워진 것 같다.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이해하게 되고 공감을 느끼며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삶에 애착을 갖게 된 것 같다.
신기하게도.
좋은 소설을 만난 것 같다.
가슴에 묵직하면서도 잔잔히 남은 여운이 좋았다.
명료한 메시지로 풀어낼 순 없지만
분명 존재하는, 아름답지만 슬픈 그런 여운이.
주인공이 없지만,
모두가 주인공인 소설이란 말이 좋았다.
미색 밖에 띠지 않지만,
세상은 분명 그런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나처럼.
소설이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보여주진 않지만,
누군가의 삶의 한 단면에서도
내 가깝고도 먼 친구와 지인,
내 부모님, 내 배우자
그리고 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내가 속한 곳에서
가까우면서도 멀리 있는
또 다른 나의 사람들이자 나 자신이었다.
50가지 인생에, 잘 녹아들어 있는 한 사회를 보았다.
저마다 자신들의 목표를 이루고,
욕구를 해소하며,
의문을 품고 살아가고 있었다.
저마다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가 있었다.
사람은 모두 다르지만,
결국 똑같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나 살고 죽는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이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사는
누군가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해보는 것이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단 걸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중요하지 않은 삶이란 없었다.
모든 이의 시간이 소중했다.
내 인생이 소중한 것처럼.
소설이라 소설 속 이 모든 이야기가 그저 아름다웠다.
아무도 죽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깨달았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가
슬픈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자,
현실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