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피로스 Jul 17. 2020

Ep6. 거리의 낭만, 로컬 푸드, 김치 파워

호주 워킹홀리데이 일지 6화(2018.08)

거리 위의 예술가




시드니의 중심가에서

가장 번화한 곳 중에 하나인

Market St와 Pitt St가 만나는 지점

웨스트필드 같은 거대 쇼핑몰이 밀집한

쇼핑타운입니다.


여기엔 항상

거리의 예술가들이 있지요.

시간을 나눠서 1-2시간 단위로 공연을 하는데,

정말 볼만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다가

가만히 넉 놓고 한 시간을 넘게 구경한 적도 있어요.


다양한 예술가들의 퍼포먼스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참 멋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주변에 사람들이 봐주든 말든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는 정신.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제게도

필요한 모습 같아서 가끔씩 배워오곤 했습니다.




반신반의

오리지널 로컬(?) 푸드 체험





제가 머물던 쉐어하우스는 정말 다행히도

친구들끼리 모두 사이가 좋았습니다.

(안 그런 곳도 많더라구요.)

가끔씩 한 친구의 생일이 되면

누군가 먼저 나서서 음식을 대접하려고 하는

아주 훌륭한 친구들이었죠.

그때마다 최선을 다해 자기 나라 음식을

다른 나라 친구들에게 대접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날은 항상 파티였죠.


덕분에 현지인이 만든 다양한 로컬푸드.

중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요리들을

여러 번 맛볼 수 있었어요.

(미안하게도 항상 맛있던 건 아니었어요.)


호주에선 요리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삼시 세끼를 알아서 해결해야 하니까요.

나가서 사 먹는 건 비싸고

보통은 재료를 사 와 집에서 해먹습니다.


또 어떤 곳에서 일을 하든 

도시락을 싸야 했습니다.

(식당에선 주로 밥을 줬지만

밥 먹는 시간은 근무시간으로 쳐주지 않았어요.)

우리나라처럼 배식/급식 문화가 없어요.

대한민국의 사내/구내식당,

혹은 식비를 지원해주는 문화가

특별한 문화였다는 사실을 여기와서 알았습니다.

다른 나라의 경우는 잘 모르겠지만

식사를 회사나 조직에서 제공하는 문화는

아마 우리나라의 전쟁역사와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문득 고민해봤습니다.




언제나 뚝딱



코리안 푸드와

태양초고추장의 위력



저도 한 번은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워낙 많이 얻어먹어서 좀 미안했거든요.

한국에서 요리는 정말 1도 관심 없던 제가

그나마 도전해볼 수 있던 건

삼겹살, 떡볶이, 전이었습니다.

(라면은 워낙 많이 먹여놔서...)


근처에 작은 한국식품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평소엔 자신을 위해 10불 쓰는 것도 아까워하던 제가

이때는 돈 좀 꽤나 썼죠.

그래 봤자 즉석식품이 절반이었습니다.

부랴부랴 인터넷으로 조리법을 찾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지한 요리 도전.

메뉴는 삼겹살, 떡볶이, 김말이 튀김,

만두, 파전, 김치전이었습니다.


열심히 열심히



삼겹살은 반응이 무난했습니다.

삼겹살을 영어로 Pork Belly라고 하는데,

서양에서 주로 선호하는 부위는 아니라고 하더라구요.

그래도 노란머리 영국친구는 맛있다며 다 먹었습니다.

돼지고기를 못 먹는 무슬림친구는

좌절하며 다음 요리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파전과 김치전은 반응이 좋았습니다.

부침가루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친구들이

도대체 이 밀가루의 정체는 뭐냐며 신기해했죠.

파전을 간장에 찍어 먹는 걸 신기해하며

남김없이 다 먹어 치웠습니다.

평소에 접해본 제 김치 맛에 익숙해져서인지

맵다맵다 하면서 김치전도 다들 잘 먹더라구요.


하이라이트는 떡볶이와 김말이였습니다.

김말이는 즉석식품을 기름에 튀겨준 것뿐인데

도대체 이 언빌리버블한 음식 뭐냐며

다들 엄청 좋아하더라구요.

아무리 애써도, 김말이가 어떤 음식이다란 걸

완벽하게 설명하기란 어려웠습니다.

그냥 다들 몰라도 신기해하며 잘 먹더군요.


짧은 영어가 원망스러웠지요. 그냥 믿고 먹으라 했습니다.


떡볶이가 등장했습니다.

다들 떡 하나를 입에 넣는 순간부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호주 놈은 조용히 눈을 감고 울고,

이탈리아 놈은 화장실로 뛰쳐가 입을 헹구고,

프랑스놈은 실성했는지 말없이 낄낄대기만 했습니다.

중국, 일본 친구는 매운 것에 익숙한지

그나마 잘 먹더라구요.


너무 매웠나봐요ㅋㅋㅋㅋㅋ

나름 덜 맵게 했는데도,

태양초고추장의 위력이 너무 강했나봅니다.

그래서 떡볶이는 제가 절반을 먹게 됐습니다.


잘 먹었다며 설거지를 해주는 센스. 역시 설거지는 문화가 아니라 인성이구나.



김치 파워


김치에 대한 재밌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김치의 힘에 관한 것이죠.


호주에서 김치는 주로 사 먹었습니다.

엄마도 없고, 직접 담가먹을 순 없잖아요.

보통 1kg짜리 포기김치를 사서

먹기 좋게 썰어 반찬통에 보관해뒀습니다.


호주 한국식품점. 보통 요렇게 팔아요.
요렇게 보관하고


냉장고는 쉐어했기 때문에

2대를 10명이 나눠 썼습니다.

거의 한 사람당 한 칸씩 썼던 셈이죠.

그래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김치의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죠.


한국인이야 그 냄새가 워낙 아무렇지 않지만,

외국친구들에겐 꽤나 쇼크였나 봅니다.

김치에서 나는 알 수 없는 강렬한 냄새가

모두를 대화의 장으로 불러냈습니다.



(제 영어 이름. 성이 표라 그냥 영어이름도 표)
이 냄새 장난이 아니야. 어떻게든 해야겠어.
도대체 어디서 이 냄새가 나는 거지?



그래서 잘 보관해둔 김치를 꺼내줬습니다.

제 눈엔 그저 먹음직스러워 보였던 김치를

저들은 마치 태어나서 처음 보는

외계생명체를 관찰하듯 살펴봤습니다.


"오우! 이게 말로만 듣던 김치군,
한 번 먹어봐도 될까?"



그리고 다들 한 포크씩 먹기 시작했습니다.

이 친구들은 아직 젓가락을 잘 못 썼거든요.

아삭아삭, 상큼시큼한 김치의 맛에

다들 신선하면서도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더군요.


그 날 이후로 저 놈들이

제 김치를 조금씩 뺏어먹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양은 아니었고, 묘하게 기분이 좋아.

먹고 싶으면 조금씩 덜어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샌가 한 두 명씩

제게 근처의 한국식품점이 어디 있는지 묻고

자기만의 김치를 하나씩 사 오더군요.


그리고 냉장고의 김치냄새 문제는 해결됐습니다.

다들 자기 김치를 하나씩 갖게 됐거든요.

어느 날부터 냉장고는 김치 냄새가 아니라

정말 김치로 가득 차게 됐습니다.


언빌리버블 김치파워

김치는 위대합니다.


끝-



이전 05화 Ep5. 황폐함, 눈물의 김치찌개, 나의 서른에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