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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피로스 Jul 16. 2020

Ep5. 황폐함, 눈물의 김치찌개, 나의 서른에게

호주 워킹홀리데이 일지 5화(2018.07)

무너져가는 몸과 마음



7월부터는 몸과 마음의 이상신호가 오기 시작합니다.

세차일은 몸의 피로를 누적시켜갔지만

더 큰 문제는 레스토랑의 정신적 피로였습니다.

스트레스가 정말 엄청났습니다.


저 때만 해도

돈을 버는 것도, 영어 실력이 느는 것도

모두 시간이 지나며 천천히, 아주 자연스럽게

계획대로 이뤄질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영어가 안 되면 좋은 일자리를 못 구하니,

돈을 못 벌게 되고.

돈이 없으면 일을 많이 하게 되어

몸이 피로하고, 시간도 내기 힘들어

영어 공부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가 있단 걸

호주를 오기 전엔 몰랐죠.



물론 전 운이 좋게도

영어실력이 좋지 않았지만, 좋은 직장을 구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더군요.

영어가 안되니, 실수가 잦아졌습니다.

처음엔 좋게만 봐주려고 노력했던 매니저와 스탭들도

반복되는 실수와 개선이 더딘 제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하면서도 약간은 답답해하는 태도를 보였죠.

겉으로는 굉장히 친절하고 좋게 이야기해주지만

그 바닥에 깔린 미세한 그들의 불편한 감정과 

나를 무시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가장 힘들게 만들었던 건.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었습니다.

이것밖에 못하나, 내가 정말 이정도였나.

이런 일도 극복 못하고 이겨내지 못하나.

뭐 이런 말들로 스스로를 계속해서 상처입혔죠.

매일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대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아닌 버티는 게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내년에 여행을 정말 갈 수 있기는 한 걸까...

세계일주를 위한 돈과 영어라는 목표가

생각만큼 쉽게 해결되지 않아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불안감이 

끊임없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눈물의 김치찌개를 먹다


아주 조금이지만

돈이 서서히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매주 주 7일 일을 했는데,

운이 좋게도 쉬는 날이 하루 생겼죠.


그래서 나를 위한 보상을 해주기로 합니다.

한국음식이 너무 그리워

식당에서 처음으로 김치찌개를 사 먹었습니다.



단돈 17불(당시 한화로 약 14000원)

김치찌개 한번 사 먹을 돈이 없어서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지난 3개월 동안 생각도 못했던 외식.


호주는 물가와 인건비가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특히 외식비는 장난이 아니에요.

뭐 나중에는 그런 물가에 익숙해져서

한국에서처럼 자연스럽게 쓸 수 있게 되었지만

저 때만 해도 밖에서 한 끼를 사먹는 게

굉장한 부담이었습니다.


3개월 만에 제대로 된 한국 음식을 먹게 되니

울컥하더라구요.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

먹고 싶은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으면서

내가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떠오르는 오만가지 생각들을 안주 삼아

맛있는 김치찌개와 함께 맥주를 한잔 했던 기억이 납니다.

(소주는 비싸서 엄두도 못 냈어요.)



이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요.

자전거를 분실한 일입니다.


잠깐 식당에 밥을 먹기 위해

저 철문 안 쪽에 자전거를 묶어 놨거든요.

그땐 저기가 경찰서인지도 몰랐죠.

문이 열려있었고, 위에 있는 간판은

미처 보지 못했습니다.


밥을 먹고 나오니 사진에서처럼

문이 굳게 닫혀있더라고요.

거의 2시간은 헤맸습니다.

아무리 안쪽에 소리를 지르고

문을 쿵쾅거려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어요...

(경찰서라 무섭기도 하고...호주 경찰 무서워요.)



인도친구 Pallov


결국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지만

다음날 같이 사는 인도 친구의 도움으로

자전거는 무사히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고맙다 Pallov




너희들이 있어서 행복했어




그런 고된 시간을 보내면서도

꿋꿋이 버티며 나갈 수 있던 건

같이 사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정말 좋은 친구들이었어요.


그럼에도 언제나 제겐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 같은 게 있었죠.

같이 있지만,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지만

모든 의사소통을 완벽히 할 수 없고

내면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려줄 수가 없어서였는지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때 방에서 혼자

찌질하게 눈물 훔치며 봤던 한 편의 영화가 있어요.



서른을 앞두고

타지에서 개고생을 사서 하는 제게

나름 굉장히 위로가 되었던 영화입니다.




서른을 앞둔 내게

작은 위로의 말을 건네준 그 영화.

<나의 서른에게>


"내가 몇 살인지는 아무 상관없더라.

우리는 매일 죽음을 향해 걸어가니까.


남은 시간이 얼마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가고 싶은 곳을 가면 되는 거야."


그렇게 살고 있다 믿으며

하루하루 꾸역꾸역

살아갔던 때가 있었지요.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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