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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피로스 Jul 28. 2020

Ep11. 도축 공장, 블루 마운틴

호주 워킹홀리데이 일지 11화(2019.01)

도축공장을 가다


더보에 위치한 양 도축 공장



호주에 좀 더 체류하기 위한 비자를 위해

제가 구한 직장은 양도축공장이었습니다.

제 호주 생활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시간이죠.

원해서 이 곳을 선택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저 당시 선택지가 이곳뿐이었습니다.


Fletcher라는 이름의 규모가 있는 공장인데,

근로자가 500명은 족히 넘는 곳이었습니다.


일의 종류는 굉장히 다양했습니다.

이주노동자로서 제가 근무할 수 있는 곳은

그중에서도 3곳 정도였는데,

도축부터 육류가공을 진행하는 Slaughter 파트

세척된 양을 상품화시키는 Boning 파트

양털을 가공하는 Felly 파트입니다.


이 밖에도 Office에서 일하는 사무원,

창고 및 장비 관리자, 중장비 드라이버, 여러 엔지니어 등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일이 있었지만

라이센스 혹은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 일이나,

관리직 이상의 업무는 보통 호주사람이 맡았습니다.

유창한 영어와 고급 기술이 없는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단기간 단순 노동을 맡았죠.

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공장 급여표


*원칙적으로 공장 내부시설에선

촬영이 불가하여 찍어놓은 사진이 많이 없지만

몰래몰래 몇 장 찍어뒀던 사진들.


공장에선 레벨 시스템이 존재했습니다.

근무기간과 근로자의 실력에 따라

급여를 차등 지급하는 시스템인데요,

한 마디로 일을 열심히 배워서

실력을 빠르게 키우면 돈을 더 줍니다.

첫 시급은 약 25불(한화로 약 2만원)

여기에 세금이 15% 붙습니다.


보통은 초보 작업자가

Learner(견습생)에서 Level2를 얻기 위해선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립니다.

운이 좋게도 전 4개월 걸렸습니다.

몸 성한 곳 없이 죽어라 하기도 했지만,

다른 외국인 근로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어실력이 괜찮았는지

관리자들에게 곧 잘 점수를 따내곤 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비자 일수만 채우고,

돈을 빨리 벌어 떠날 생각밖에 없었거든요.

일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몸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요.


5시에 출근해서 4시에 퇴근했는데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면

저녁을 해 먹는 것조차 귀찮고 번거로웠습니다.

저녁을 다 먹고 나서 여가시간을 갖는 일도

말처럼 쉽지가 않았습니다.

누워서 숨 쉬는 것 빼고는

정말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거든요.


어느 누구도 도축공장에서 직접 일해보지 않고서는

그곳의 일이 어떠한지 상상하기 어려울 겁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그 따뜻했던 피의 감촉


아직도 첫날

도축라인 내부로 들어갔을 때를 기억합니다.

Slaughter 파트의 작업장은

폭이 좁고 길이는 100m가 넘는 긴 공간입니다.

이곳은 살아있는 양의 숨을 거두고,

양털을 분리하고, 양을 고기 형태로 가공하는 곳입니다.

 

식품이 되는 양의 생살을 만지는 곳이라

위생과 청결 상태가 굉장히 엄격했습니다.

몸과 장신구를 깨끗이 씻는 세척실을 통과하면

거대한 자동화 벨트 라인이 눈에 들어옵니다.

양은 작업장 맨 앞쪽에서부터 끝 구간까지

100m가 넘는 긴 벨트에 거꾸로 매달려 오면서

여러 작업자의 손을 거쳐 깨끗이 손질됩니다.


처음 작업장으로 들어선 순간

태어나서 처음으로 맡아보는 지독한 냄새가 났습니다.

양의 털, 피, 내장, 배설물의 냄새가 모두 섞인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역한 악취였습니다.

아직 작업 시작 시간 전이라

양이 매달려 오기도 전이었지만,

이미 그 냄새는 오랜 기간 동안 건물에 베어버린 듯했습니다.


제가 처음 맡았던 일은

양의 항문을 막는 작업이었습니다.

보통 일을 처음 시작하는 초보자가 하는 일인데,

양이 벨트에 매달려 오는 과정에서 거꾸로 한번 뒤집히는데,

그때 배설물이 나오지 못하게 막는 작업입니다.


다음으로는 양의 콩팥을 떼어내는 일이었습니다.

양은 정말 버리는 게 없을 정도로

콩팥까지 식재료로 쓰이더군요.

몸속이 깨끗하게 정리된 양의 내장지방에 숨어 있는

콩팥을 손으로 떼어내는 작업이었습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선 라텍스 장갑을 낀 손을

양의 몸속에 집어넣어야 합니다.


그때의 충격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아직 양의 몸속은 따뜻했습니다.

피는 뜨거웠습니다.

내 앞에 거꾸로 매달려 지나가고 있는 이 양들이

불과 5분 전만 해도 숨을 쉬고 살아있던 생물이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며, 아무 말 없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묵묵히 일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시 찾은 블루 마운틴


크리스마스 연휴

호주는 여름에 한 번, 겨울에 한 번,

긴 연휴가 있습니다.

호주에서 12월은 여름이지요.

여름에 보내는 크리스마스 상상해본 적 있으실까요.

산타 할아버지가 웃통을 홀라당 까고,

트렁크만 입고 돌아다니는 광경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같이 사는 친구들과 긴 연휴를 맞아

블루 마운틴에 다시 놀러 갔습니다.

시드니에 있을 때 친구들과 갔던 기억이 워낙 강렬해

이 친구들에게도 그 멋진 경험을 선물해주고 싶었어요.



야밤에 이런 무시무시한 동굴들을 지나



목적지에 도달했습니다.


처음 갔을 땐 뒷좌석에 탄 채로

꾸벅꾸벅 졸며 가서 몰랐습니다.

제가 직접 운전을 해서 다시 가보니

보통 험한 산길이 아니더라구요.

제 차 오프로드를 뛸 수 있는 차가 절대 아니었는데,

생각해보니 저 때는 정말 무식해서 용감했습니다.

몇 번 차가 퍼질 뻔한 위험한 상황이 있었어요.



본격적인 동굴 탐험을 위해

준비해둔 간식으로 배를 채우고.

날이 밝기 전에 동굴로 들어갔습니다.

(저 김밥은 한국인이 아니라

대만 친구들이 싸준 김밥이에요.)



Glow Worm Tunnel

즐겁게 구경한 뒤 다시 반대편으로 빠져나왔습니다.

역시 동굴 내부는 너무 어두워

아무 사진도 찍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들 정말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저도 2번째 보는 광경이었지만 정말 예뻤어요.

동굴을 빠져나오니 또 날이 밝았습니다.

정말 완벽한 타이밍.



출구에서 귀엽게 사진도 찍고



중생대 원시우림을 지나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와 한 컷 더.



돌아오는 길에

멋진 진풍경을 감상하며 또 한 컷.




이렇게 같이 사는 식구들과

휴가 때마다 함께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가며

그때의 그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도 이 친구들이 그립고 보고 싶고 그래요.

물론 지금도 연락을 잘하며 지내고 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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