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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ign Sep 01. 2016

2016 여름휴가에 생긴 일 II

오랜만의 등산 San primo

감격스러웠다. 얼마만의 등산이던가!

다인이를 가진 후 거의 일 년 반 동안 트래킹을 하지 못했다. 그 전에는 우리는 나름 자타가 공인하는 다람쥐 부부였다. 처음부터 내가 트래킹을 좋아했던 건 아니었다. 이 모두가 나의 적극적인 희생(?) 정신이 있어서 가능했다. 나는 장난 삼아 사람들에게 내가 스키를 타는 것도 바다를 가는 것도 트래킹을 하는 것도 모두 남편을 위한 희생이라고 한다. 아침잠을 유독 사랑하는 나는 액티브한 활동을 위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을 희생이라 말하고 남편도 그것을 인정해주는 바였다. 그렇게 몇 년의 희생 덕분에 나 역시 여전히 아침잠을 사랑하지만 자연 을 제법 즐기게 되었다. 처음엔 주말에 자연을 접하지 못하면 힘들어하던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나도 서서히 그의 습관에 시나브로 물들어 갔다.


원래 바다로 가기로 했던 일정이었다. 그러나 몇 번 연달아 간 바다가 질려서였는지 일어나자마자 쌈박하게 높은 곳이 올라가 보고 싶어 졌다. 예전에 등산하면서 봐 두었던 Rifugio Martina (마르티나 산장)의 음식도 맛보고 싶어 졌다. 며칠 전 지인의 페이스북에서 그곳에서 식사했던 모습을 우연히 봤는데 은연중에 인상에 남았었나 보다. 두 시간이 넘는 산행 후 정상에서 컵라면을 먹었던 터라 식사를 못했던 것이 이내 아쉬웠기 때문이다. San primo는 Bellagio (얼마나 이쁘면 이름이 '벨라지오'겠는가!. bella는 예쁘다는 뜻이다.) 코무네에 위치해 있다. 산 정상에 오르면 주변에 거치적거리는 것이 없이 360도 뻥 뚫린 시야로 주변을 볼 수 있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꼬모 호수의 장관 역시 일품이다. 그러나 아기띠를 하고 산기슭을 타는 것은 안전상 아직 무리. 우리는 산장 근처에 차를 주차하고 약 20분을 걸어 올라갔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길게 쭉쭉 뻗은 나무들이 마치 예전처럼 우리를 기다렸다는 마냥 반겨주는 듯했다. 계절은 여름 이건만 산 공기는 여전히 청량하다. 2시가 넘었음에도 산장엔 아직 많은 이들이 식사 중이었다. 나는 폴렌따와 돼지 뒷다리 그리고 남편은 폴렌따와 모둠 치즈를 시켰다. 폴렌따는 옥수수가루로 만든 죽보단 질은 음식이다. 가격은 도시보다 저렴했지만 맛은 훌륭했다. 선택에 후회 없었다. 마무리로 디저트와 커피를 마시고 흡족한 마음으로 산을 내려왔다. 


등산이 너무 짧아 아쉬운 마음을 산 밑의 호수를 걸으며 (유모차를 가지고 걸을 수 있는 평지. 아기 가진 부모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달랬다. 워낙에 산책 코스로 잘 조경해놓은 호수라 자유로이 수영도 하고 조깅하는 사람들을 보며 일상의 여유를 느꼈다. 자연을 같이 나눌 동반자와 우리의 사랑의 결실인 다인이와 함께 같은 길을 걷는다는 것. 그냥 이것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배부른데, 배까지 부르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아기를 기다리는 동안 내가 잊고 왔던 트래킹의 기쁨을 오늘 살짝 맛보았다. 기다림의 인고는 썼지만 함께 오게 되니 더 달았다. 한국에서 언니가 보내준 아기 등산 캐리어를 꺼내야겠다. 올 가을부턴 본격적으로 등산에 돌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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