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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ign Nov 11. 2016

남편의 소중함, 부모의 소중함

몸살이 난 날

어제는 하루 종일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 전날 새벽부터 시작된 으슬으슬함. 일주일 정도 어깨 근육이 뭉쳐있더니 몸살로 그 종지부를 찍나 보다. 침대에 누워 한참을 바슬바슬 떨고 있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화장실로 달려가 뜨거운 물로 한참 몸을 맡겼다. 몸 안의 한기가 조금 쓸려나가는 느낌. 다시 침대로 돌아가 끙끙댄다. 적어도 한기는 없어졌으니 다행이다. 새벽 다인이의 찡얼거림으로 하루 시작의 새벽이 열린다. 남편은 그제야 내가 아픈 것을 눈치챈다. 그에게 물 한잔을 부탁해 본다. 그러나 물을 마시고 난 후 나의 체력은 말 그대로 방전. 오늘은 남편 혼자서 모든 준비를 해야 한다. 다인이를 씻기고 옷을 입히고 보육원에 보내고... 또 본인의 출근 준비도. 여자들은 그런 것을 자기 일처럼 자연스럽게 다 하겠지만(내 생각에 그렇다는 거다. 집마다 다를 것이고 남자들도 부담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집의 경우 보통 다인이 보육원 준비는 내가 한다. 그러나 나의 몸 상태가 허락하지 않았고, 회사에 통보하는 것조차 힘겨웠다. 그렇게 그 둘은 일상을 살러 나갔다. 나는 혼자 침대에 남겨져 지쳐 잠들었다. 오후에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인이를 픽업하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겠다고. 엎어지면 코 닳을 거리에 있는 보육원이지만 움직이기 힘든 나로선 얼마나 고마웠는지. 일부러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가장으로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그렇게 하는 그가 고맙다. 물론 상황이 허락하는 근무 환경에 있기 때문에 더더더 감사하다. 어떤 아빠라도 상황이 허락한다면 그렇게 하고 싶으리라. (한국에 사는 아빠들은 얼마나 회사에 목숨 걸어야 하는지 알아서 하는 말이다.) 다인이가 돌아올 때까지 나는 침대에 누웠있었고 상태는 그 전보다 나아져 있었다. 남편의 도움으로 바나나와 물을 먹었다. 이제 배가 조금씩 고파오는 것을 보니 나아지려나보다. 그렇게 남편은 다시 회사로 출근했다. 다시 6시가 넘어 퇴근한 그는 저녁을 준비했다. 우리 집의 보일러가 부엌 쪽이 고장이 나 추운 것을 고려해 저녁까지 차린 것이다. 국물을 떠먹고 기운을 추슬렀다. 밥을 다 먹고 감을 깎아 먹었다. 다인이가 손뼉 치며 감을 먹는 모습을 보니 아이가 귀엽고 사랑스럽다. 


왜 자꾸 몸살이 날까. 육아휴직이 끝나기 전, 된통 앓았던 몸살을 한 달 후 다시 앓았다. 근본적인 이유가 뭘까. 뭉친 근육통, 넘쳐나는 집안일, 돌봐야 하는 다인이, 신경 쓰이는 잡다 비용관리... 아무리 남편이 마사지를 해준다 하더라도 일의 양이 어마하게 많다. 기계라면 기름칠이라도 해줄 텐데 난 사람이니 그럴 수도 없다. 그나마 다인이가 엄마따라 아프지 않아 다행이다. 한 달 전 어떤 집사님이 포스트잇에 써준 메시지가 마음에 와 닿는다. 

"한참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길이 필요할 텐데, 두 분 참 힘드시죠? 부모라는 훈장이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닌가 봅니다."

정말 그렇다. 나도 우리 엄마 아빠의 도움을 받고 싶다. 이렇게 우리의 거리가 멀지 않다면 오늘 하루 도와달라고 어리광도 피우며 늙은 부모의 힘에 기대여도 보겠는데 그럴 수가 없다. 내가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 보육원뿐이라니. (그러나 이 또한 감사한 일이다. 심신의 약함으로 긍정의 마인드가 좀 느슨해졌다.)

다인이가 보육원에 다녀오면 젖을 물리고 과자를 준다. 과자를 먹는 모습이 예뻐 바라보고 있다. 아이를 보며 입을 벌려보았다. 그러자 급하게 과자를 먹으려 하더니 잠시 추춤거리다 내 입으로 과자를 가져다준다. 그러면서 자기 한번 나 한번 과자를 나눠먹는다. 눈물이 난다. 나를 과자를 줄 만큼 소중한 존재로 여기는 다인이. 나도 우리 엄마에겐 저런 딸일 건데. 엄마도 내가 보고프겠다. 남편의 페이스북을 보니 어떤 분이 공자 말씀을 해석해놓았다. 내용이 이러했다. "부모가 살아계실 땐 멀리 떠나지 말고, 나갈 땐 항상 언제 돌아오지 보고하며 보고한 시각에 돌아와야 한다." 완벽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나는 벌써 부모에게 불효하고 있구나. 부모에게 멀리 떠나와 다인이도 맘껏 보시게 못 해 드리는구나. 이제 이렇게 삶을 셋업 했기 때문에 어떻게 바꾸기 힘들겠지만 몸이 아프니 날 위해주는 부모가 그리워진다. 아프다 정신이 들면 생각나는 나의 엄마 아빠. 비록 효녀는 아니지만 우리 엄마 아빠가 있어 내가 이렇게 사람 구실 하며 살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안다. 오늘 이렇게 누워 하루를 몸살에 다 받치고 나면 그다음 날은 두배로 일해야 할지 모르지만 오늘은 이렇게 감상에 젖어 누워있어 보자. 저녁을 먹고 다시 씻고 다시 시들은 배추처럼 침대 속에 푹 꺼져 잠이 든다.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한 나. 친구는 내 얼굴이 안 좋다며 더 쉬어야 하는 것 아니냐 한다. 더 이상 누울 인내심도 없다. 움직일 수 있을 때 움직이는 게 낫다. 근본적인 해결법이 필요하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친구가 내게 조언을 한다. 아기가 기어 다닌다 하더라도 매일 집을 닦을 순 없다. 청소를 줄이고 몸이 쉬게 해야 한다. 친구의 말에 동감이다. 집이 깨끗한 것보다도 건강하게 잘 놀아주는 엄마를 다인이는 더 원할 것이다. 나는 환상에 빠졌던 것 같다. 완벽한 엄마, 완벽한 아내가 되겠다는. 어쩌면 완벽해지려고 노력하면 가장 중요한 부분이 망가져 버리는 것을 잊고 사는 것 같다. 마음을 바꿔야겠다. "완벽"보다는 "할 수 있는 것"을 하자고. 그것이 어쩌면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마음 가짐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 나도 남편에게 덜 화내고 다인이게도 더 웃어줄 수 있고 무엇보다도 내 몸에게 미안한 일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일 테니.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그 정도의 차이는 이제부터 차차 알아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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